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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일본

[블로그] 과거 청산 없는 비극

등록 :2009-12-17 18:19

일본이 전쟁에 광분해 있던 1945년3월10일 미명, 도쿄(東京)의 후카가와(深川), 혼조(本所), 아사쿠사(淺草)를 중심으로 하는 서민 주택 밀집지에, 아메리카 합중국(이하, 아메리카 라고 합니다.)의 B29폭격기 약 300대가 대규모 폭격을 했습니다. 이른바,`도쿄 대공습` 입니다.

이때 투하된 소이탄(화재를 일으키는 폭탄, 당시 일본 대부분이 목조 주택으로 한순간에 불바다가 되었습니다.)은 약 33만 발로써 사망자만 약 10만명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체험자의 말에 의하면, 이 지역에 있던 스미다가와(墨田川)라는 강은 화재로 사망하거나, 물로 뛰어들다 사망한 타다 남은 시신들로 채워져 강물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이 문제에 대해 얼마전, 중요한 판결이 도쿄 지방 법원에서 있었습니다. 도쿄 대공습의 피해자와 유가족 131명이, 정부가 전쟁후 그들에 대한 구제 조치를 하지 않은 것등 대해, 국가를 상대로 사죄와 총액 14억 4100만엥 (1인당 1100만엥)의 배상을 요구한 소송의 판결 에서 법원은 그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판결문에 의하면, `전쟁 피해자에게 대한 구제는, 정치적 배려에 근거해 입법 조치를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 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국가가 주도한 전쟁에 의한 피해라고 하는 점에서는, 군인들과 원고들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라는 논의는 성립된다. 원고들의 고통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것에 대해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원고측은, 군인,군속이나 원폭 피해자, 오키나와전 피해자들은 보상을 받으면서, 공습 피해자에 대해, 구제 조치가 없는 것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법 아래 평등 정신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이 판결에 대해 항소할 방침입니다.

일본 군국주의가 일으킨 전쟁은 한/조선 반도를 포함한 근린 아시아 제국(諸國)에 큰 고통을 준 것은 물론이고, 자국민에 대해서도 큰 비극을 안겨 주었습니다. 오키나와의 이른바 `옥쇄`,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 도쿄 대공습에 따른 피해자등,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그들의 일신의 영달과 부귀를 위해 자국민의 목숨 조차 벌레 만큼도 여기지 않았습니다.

병사(兵士)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당시 일본 군부는 병사들을 `1엥 50전짜리` 라고 불렀습니다. 즉, `赤紙(아카가미)`라고 불리던 소집 영장만 보내면 병사들을 얼마든지 충원 할수 있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이었죠. 그 소집영장을 만들어 보내는 비용이 1엥 50전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문제 중의 하나인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에 의해 버려진 자국민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른바 `시베리아 억류` 문제와도 연결 되는 것으로,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악행(惡行)으로 유명합니다. 1945년 8월, 일본 군국주의가 패망하기 직전, 소련은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소련군이 만주로 진격해 옵니다.


당시 만주에는 일본의 허수아비 국가인 만주국이 있었고, 거기에는 만주인을 비롯해, 중국인, 몽골인, 일본인, 조선인등이 살고 있었습니다. 일본인은 일부 계층이 일본 관동군이나 만주국의 고위 관료였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본토에서 이주 온 가난한 농민들이었습니다.

소련군이 진격해 오자, 당시 만주를 마치 자기 나라인양 주무르고 있던 `극동 최강`이라던 관동군은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국민을 방패삼아 도망 할 시간을 벌기 위해 피난 열차를 관동군 장교 하사관, 그리고 일부 병사만 타게 하고, 일반 국민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도리어 소련군과 맞서 전투를 할 예정이니, 다들 임전태세에 들어가라고 선전을 합니다. 그러나 물밀듯이 밀려드는 소련군등에 의해, 사실이 발각되어 일반 국민들이 피난 열차로 몰려들자, 병사들이 총칼로 막고, 열차에 올라 타려는 많은 피난민들을 사살합니다.

만일 이들 관동군이 어느 지점까지 일단 후퇴를 해, 전열을 가다듬어 소련군과 대항하기 위해 그런 행위를 했다고 한다면, 억지로라도 이해할 여지가 있다고도 볼수 있습니다만, 그것이 아닌 단순히 자신들만 살아 일본으로 도망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소련군은 만주에서 사로잡은 구일본군, 민간인(조선인 포함) 들을 대거 시베리아 개척수용소로 보냅니다. 그 숫자는 약 60~70만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 중 강제 노역과 혹한, 기아로 약 10%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시베리아 억류` 문제입니다.

그후, 1947년 부터 1956년에 걸쳐 이들 일본인에 대한 귀국 사업이 전개됩니다만, 일본으로 귀국한 이들 앞에는 또다른 비극이 시작됩니다. 즉, 오랫동안의 소련 생활에서 이들이 공산주의자가 되었다는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죠. 일본의 공안 경찰은 시베리아에서 풀려나 귀국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게 됩니다.

즉, 그들 민중은 본토에서는 먹고 살기 어려운 서민, 빈민이었고, 반강제로 만주로 보내어져 농사를 짓고 살다가, 군국주의에 의해 버려지고, 소련군에게 잡혀 강제 노역을 하다가, `고국`에 돌아오니 `사상범`으로 감시를 받는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참담한 생각이 드는 것은, 자국의 서민, 빈민들을 만주로 내 몬것은 일본 군국주의 세력이 었습니다. 군국주의 군대의 보급을 위한 측면도 컷지요. 그리고 사정이 급해지자, 자국민을 버리고 사살까지 합니다. 그리고 강제 노역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을 감시 체계에 넣은것 또한 살아남은 `군국주의` 잔당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린것 처럼 일본의 전후 프레임을 짰던 것은 아메리카 (거의 맥아더)와 살아남은 군국주의 잔당이 었습니다. 당연히 그 죄를 받아야 했던 세력들을 아메리카는 자국의 이익과 `반공`이라는 명목으로 살려 내어 자민당을 만들게 하고 군국주의 잔당 들은 `화려한 복귀` 를 해, 그들의 지배 체제를 굳힌것이었죠.

특히, 만주에서 고급 관료로 음으로 양으로 온갖 추악한 악행을 일삼던 기시노부스케 (전 수상 아베 신조라는 자의 외할아버지)가 만주에서는 자국민들을 죽이도록 하고 자신은 본토로 도망쳐, 그 후, 겨우 살아 귀국한 자국민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경찰이 감시토록 한 것이 상징적입니다. (※기시 노부스케는 한일 국교정상화 작업의 주역이기도 합니다. 전 대통령 박정희씨등과는 만주군 인맥으로 절친한 사이였죠.)

그런 자신들의 목을 죄던 그 군국주의 잔당들에게 경제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약 50년간계속해서 정권을 잡게 해 준 일본 민중들을 저는 어이없어 했습니다. 그것이 올해 8월 겨우 바뀌게 되었지요.

한편, 한국 또한 맥아더,이승만등에 의해 과거 청산이 이루어 지지 않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군국주의 일본에 부역한 자들이 `화려한 복귀`를 했습니다. 이들은 과거 청산에 대해, 「경제 발전이 먼저다.」,「국론 분열을 조장하지 말라.」,「미래를 바라보자.」는등의 의미불명의 언사로 민중을 현혹 내지는 겁박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 입니까? 조선 왕조때 부터의 부패 기득권층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시절에도 한/조선반도에 있어서 기득권 주류였으며, 해방후 현재에 이르기 까지 그 `파트너`만 하나 더해졌을 뿐인 기득권층입니다.

기득권층은 난세가 오더라도 난세를 이용해 더욱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천부적 자질`이 있는것 같습니다. 식민지 지배를 받은 한/조선 반도에서도 제국주의 일본에서도 그 어려움에 신음하며, 권력층의 악의적 장단에 맞춰 생명이 걸린 비극의 춤을 추었던 것은 일반 민중입니다. 기득권층은 조선, 일본 상관 없이 그들끼리의 리그로써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이런 민중들이 자신의 생명과 인간 다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련대, 즉 `계급적 련대` 만이 그 살길 이라는 생각이 이번 도쿄 지방법원의 판결을 보며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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