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김연수의 여자 여자 여자

어릴 때부터 뉴욕은 내 동경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뉴욕제과점’에 태어난 까닭에 엉금엉금 기어다닐 때부터 나는 자유의 여신상이 인쇄된 포장지를 더듬거리며 자랐기 때문이다.(빵집에 대한 기사를 다룬 1월31일치를 참고해주세요.) 포장지는 서울 을지로에서 인쇄돼 금호고속 편으로 김천까지 배달됐다. 붉은 기운이 도는 갈색 1도 인쇄였다. 그렇다면 거기에 그려진 자유의 여신상은 또 얼마나 조잡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속 뉴욕마저 조잡해지는 건 아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도 나는 뉴욕에 가보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내 마음의 뉴욕도 그 포장지만큼이나 퇴색했다. 바그다드, 레바논, 카불 같은 도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안 뒤부터 뉴욕을 동경한다는 건 죄악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뉴욕에 가서 자유의 여신상을 실제로 본다고 해도 그게 어릴 적 내가 봤던 조악한 포장지 속의 여신보다 아름다울 것 같진 않다.
그렇지만 동경의 불빛은 쉽게 꺼지지는 않는다. 집 앞에서 빗자루로 아이들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심심할라치면 곗돈을 떼먹고 달아나는 이웃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친구를 잃고,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랐다. 내가 속한 세계가 다른 어떤 세계로 바뀔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반쯤은 맹신하며, 반쯤은 회의했다. 전날의 세계는 오늘의 세계보다 좀더 좋았거나 훨씬 더 나빴다. 세계는 좀더 나빠졌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진실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진실을 말하자.
이 시대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동경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여전히 뉴욕을 동경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뉴욕은 수전 손택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수전 손택은 어떤 글에서 작가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진실을 추구할 때 가능한 가장 끔찍한 일은, 진실을 알게 되는 일이다.” 모든 작가들은 이 문구를 책상머리에 붙여놓아야만 한다고 그이는 제안했다. 나는 자유의 여신상에서 진짜 불꽃이 튀는 건 바로 이런 문구를 실천할 때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9·11 직후에 실제로 수전 손택이 애국주의를 선동하는 미국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글을 쓸 때와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는 진실이라면, 그건 덮어두고 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용주의적이고 정치적인 사람들이다. 이건 명쾌하게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다. 하지만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진실은 (그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마저) 버거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능력과 상관없이 진실은 거기 존재한다. 진실을 위해서라면 나는 지금의 나보다 좀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내 마음에 여전히 남은 뉴욕에 대한 동경은 바로 이런 것이다. 윤리적이어야만 한다는 건,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훌륭해져야만 한다는 뜻이다. 오히려 비실용적인 의미에서.

며칠 전에 수전 손택이 죽고 난 뒤, 아들인 데이비드 리프가 쓴 글을 읽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인용됐다. “스무 해 전부터 죽기 전에 꼭 하겠다고 다짐해 온 일. 마테호른 등정. 하프시코드 연주법 배우기. 중국어 공부.” 또 이런 글도 인용돼 있다. “우리는 써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한번 보라. 로켓, 베니스식 교회, 데이비드 보위, 디드로, 늑맘, 빅맥 햄버거, 선글라스, 오르가슴.” 이제 이런 것들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는 때로 우리는 세상 전부와 맞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전부와 맞서본 사람은 이제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충분하지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수전 손택은 2004년에 죽었고, 그이의 마지막 책은 작년 12월에 출간됐다.
김연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