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지는 종파 갈등과 자고 나면 터지는 유혈충돌. 수많은 이라크인들이 살기 위해 제 나라에서 도망치고 있다. 시리아와 요르단 등 이웃나라를 헤매는 이만 200만명, 고향을 등진 채 이라크내 타지를 떠도는 이도 200만명에 이른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4년은 이렇게 400만명에 이르는 전쟁 난민을 낳았다.
문화방송의 국제 시사 프로그램 〈더블유(W)〉는 23일 이라크전 4돌을 맞아 〈난민 400만-이라크 전쟁 4년의 성적표〉(밤 11시50분·사진)를 50분 동안 내보낸다. 이라크 난민들의 실제 생활상을 들여다보려고 이라크와 시리아, 요르단, 미국 등 4개 나라를 동시 취재했다.
〈난민 400만…〉은 〈시엔엔〉 등을 통해 테러장면이나 정부군 모습 같은 단편적 영상만을 접할 수 있었던 국내 시청자들에게 이라크 내부 난민들의 상황을 생생히 공개할 예정이다. 이라크 현지 취재진과 합작을 통해 버려진 집이나 공공건물 등에서 전전하고 있는 이라크내 난민의 생활상을 그대로 화면에 담았다. 최승호 책임피디는 “서방 취재진들도 바그다드 미군본부가 있는 안전지역(그린존)에서만 머무를 정도로 이라크는 외국 언론 취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이라크 취재진들과 시시각각 의견교환을 통해 이라크내 난민들의 참혹상을 화면에 담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 이라크인 취재진조차도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시아파지역 난민 취재에는 시아파 카메라맨을, 수니파지역에는 수니파 카메라맨이 들어가야 했다고 그는 전했다.
이라크를 뜬 난민들은 참혹한 생활고 속에 남자는 날품팔이, 여자는 성매매로 내몰리고 있다. 인근 시리아만 해도 인구 10%가 난민일 정도로 몰려드는 이라크인들로 몸살을 앓고 있어, 직업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탓이다.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접경지대에 자리한 시리아의 도시 알 탄프를 취재한 임채유 피디는 “취재기간에도 이 도시를 통해 하루에도 수백명씩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넘어오고 있는 걸 목격했다”고 전했다. 알 탄프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자동차로 3시간, 바그다드에서 7~8시간 거리에 자리잡은 곳. “오후 3시쯤 되니까 웬 차량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흔히 국경택시, 국경버스로 불리는 이들 차를 타고 속속 들어오고 있는 거죠.”
임 피디가 그곳의 한 클럽에서 만난 가자 무하메드 가심(18)은 아버지가 미군 총에 맞아 숨진 뒤 동생 다섯과 어머니의 끼니를 책임져야 했다. 무작정 국경버스를 타고 시리아로 넘어왔지만 한달짜리 난민 비자로는 정식 일을 찾을 수 없어 성매매를 시작했다. 이 18살 소녀는 취재진에게 말한다.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성 매매도) 괜찮아요.”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