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향산, 묘한 향기에 산도 사람도 취하다
금강산의 아름다움 지리산의 움장함 두루 갖춘
5대 명산의 하나 촉백·향나무 어울려 향기 솔∼솔
평양서 두시간 거리 ‘진달래꽃’ 영변 약산도 만나고 청천강 푸른 물빛에 눈 시리다
이병학 기자
▲ 가을빛 짙어가는 묘향산 만폭동 바위골짜기를 남한 ‘평양·묘향산 시찰단’ 일행이 오르고 있다. 거대한 암반으로 이뤄진 골짜기를 따라 수많은 폭포들이 늘어서 있다 해서 만폭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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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 경내에 모여선 ‘묘향산 참관단’ 일행이 한가슴으로 심호흡을 한다. “정말, 이상한 향내가 나네요.” 절정기를 막 넘긴 단풍잎 쌓이는 숲길에서도, 대웅전 앞 8각13층 석탑 추녀 끝마다 매달린 풍경들을 스치는 바람결에서도 향기가 느껴진다. 가만히 서 있어도, 향기는 이미 가슴으로 머리로 스며들어와 심신이 가뿐해지는 느낌이다.

▲ 묘향산, 묘한 향기에 산도 사람도 취하다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한국관광공사가 북한의 초청을 받아 꾸린, 평양·묘향산 시찰단을 따라 북한을 다녀왔다. 묘향산의 가을은 절정기를 막 지나 짙은 가을색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묘향산은 묘한 향기가 난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묘향산엔 향나무와 측백나무가 많은데, 바로 이 나무들에서 나는 향기입네다.” 늘 한 음계쯤 높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북쪽 여성 안내원의 낭랑한 설명이다.

향기처럼 은근하고도 진한 우리 민족사가 이 산에 얽혀 있다. 묘향산이란 이름은 11세기 초부터 쓰였다. 본디 연주산, 태백산, 서산, 향산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고조선 건국 설화와 관련된 태백산이 바로 묘향산이라는 설도 있다. ‘태백’이란 크고 밝다는 뜻으로 웅장한 산세와, 골마다 절경인 희고 거대한 바위자락들이 자랑인 묘향산에 어울림직한 이름이다.

‘금강수이부장(金剛秀而不壯), 지리장이불수(智異壯而不秀), 구월불수부장(九月不秀不壯), 묘향역수역장(妙香亦秀亦壯).’(금강산은 아름답지만 웅장하지는 않고, 지리산은 웅장하지만 아름답지는 않다. 구월산은 아름답지도 웅장하지도 않은데, 묘향산은 아름답고도 웅장하도다)

▲ 국제친선전람관 건물에서 바라본 묘향산 줄기.
묘향산을 말할 때 흔히 예로 드는, 휴정 서산대사의 ‘조선사산평어(朝鮮四山評語)’란 글에 나오는 시다. 서산대사는 40대 후반 금강산에서 이곳 보현사에 들어와 입적할 때까지 약 40년간을 묘향산에 머물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제자 사명당 등과 승병을 모아 왜적에 맞서 싸웠던 의병장이다. 서산대사의 ‘서산’은 바로 묘향산을 가리킨다.

묘향산(1909m)은 평안북도 향산군과 자강도 희천시, 평안남도 영원군 세개 도와 군의 경계에 있다. 국내 5대 명산의 하나로 꼽는다. 개마고원 서남쪽으로 뻗은 낭림산 산줄기의 중심 산이다. 서해로 흘러드는, 이름처럼 맑고 푸른 청천강 상류의 동남쪽에 솟아 있다.

평양에서, 10년 전 건설한 왕복 4차선 평양~향산 관광도로와 지방도를 쉬지 않고 달려 약 두시간이면 닿는다. 그 전엔 버스로 4시간 이상 걸려 도착했다고 한다. 순안~평원~숙천~안주~개천~구장을 거쳐 향산까지 150여㎞. 개천에서 빠져 왼쪽으로 수십㎞ 달리면, 소월의 ‘진달래 꽃’으로 이름난 영변 약산이다.

산과 들판은 남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농촌의 모습이다. 주민들은 소달구지를 몰며 가을걷이에 바쁘고, 아이들은 추수 끝난 논밭에 들어가 뛰어놀다 차를 향해 손을 흔든다.

▲ 비선폭포 오르는 길에 만나는 장수바위. 바위 밑을 엎드리다시피 하며 통과해야 한다.


감동적인 건 청천강 물빛이다. 갈대숲 사이로 넓지도 좁지도 않게 말끔한 강줄기가 굽이쳐 흐른다. 멀리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들여다봐도 투명한 푸른 빛이다. 옛날 이 물길을 건너 시집 가던 새색시가 물에 옷고름을 적시니, 금세 파란 물이 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관서8경의 하나인 백상루가 있는 안주에서 강줄기를 만나 향산까지 70여㎞를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그 청천강과 함께 간다. 향산읍에서 묘향산까지는 향산천을 따라 7㎞쯤 거리. 작아진 물줄기지만 투명도는 한결 더하다. 향산호텔에 도착해 차를 내리면 벌써 신선한 공기 속에서 묘한 향기가 번져오는 걸 느낄 수 있다.

묘향산은 크게 외향산(구향산)과 내향산(신향산)으로 구분되는데, 절경의 많은 부분이 내향산 쪽에 몰려 있다. 북한에서 관광객들에게 개방하는 지역이 바로, 청천강의 지류인 향산천(묘향천·향암천)으로 수많은 물길을 공급하는 내향산이다. 숱한 폭포들을 거느린 바위 경치들이 묘향산의 주봉인 비로봉과 원만봉·천태봉·향로봉·법왕봉 등으로 뻗은 골짜기에 숨어 있다.

▲ 묘향산, 묘한 향기에 산도 사람도 취하다


등산길은 다섯 코스가 있다. 상원동·만폭동·비로봉·칠성동·천태동 코스인데, 이 가운데 상원동 쪽 코스가 가장 절경으로 꼽힌다. 그 다음으로 만폭동과 비로봉·칠성동 코스 등을 꼽는다. 산의 주요 경치를 전부 다 보려면 사나흘은 걸린다고 한다.

빠듯한 일정으로, 만폭동 주변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둘러보고 나오며 아쉬움을 삭이는데 안내원이 말을 건넨다.

“너무 아쉬워 마시라요. 민족끼리 화해하고 사업을 발전시키면, 상원동에도 가고 비로봉에도 오를 수 있갔지요. 우리 다음엔 칠보산에도 한번 가시자요.” 칠보산은 북녘땅의 또다른 명산. 거기야말로 가을 단풍이 보석 같단다.

묘향산(평북 향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기사등록 : 2005-10-26 오후 06:48:03기사수정 : 2005-10-27 오후 03:4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