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013년 11월7일 오후 10시(한국시간)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에 상륙하고 있다. 이 그림은 ‘블랙 마블’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자료 사진에 일본기상청(JMA)의 ‘MTSat 2’와 유럽기상위성기구(EUMETSAT)의 'Meteosat-7’가 촬영한 위성 영상을 입힌 것이다. Ⓒ2013 JMA/EUMETSAT

 

한 해에 발생하는 태풍은 평균 20개 정도다. 이 중 3개 정도가 한반도에 상륙한다. 태풍은 북태평양 서남부에서 발생한다. 이후 C자 형으로 커브를 그리며 북상한다. 커브의 각도에 따라 남아시아로, 중국으로, 한반도로, 일본 열도로 향한다. 한반도에 상륙하는 태풍은 주로 7~9월에 발생하는 태풍이다. 하지만 우리가 잘 보지 않는 곳에서 태풍은 1년 내내 발생한다.

 

발생하는 장소도 전 세계적이다. 앞서 말했듯 북태평양 서남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태풍(typhoon)이다. 북대서양과 카리브해, 멕시코만, 북태평양 동부 등에서 발생하는 태풍은 허리케인(hurricane)이라고 불린다. 인도양과 아라비아해, 벵골만 등에서 발생하는 것은 사이클론(cyclone)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 해상에서 발생하는 것은 윌리윌리(willy-willy)이고, 필리핀에서는 바기오(baguios)라고 부른다.

 

태풍을 기록하기 위해 태풍마다 이름을 붙인다. 동시에 태풍이 2개 이상 발생할 수도 있어 구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태풍의 이름을 처음 붙인 건 1953년 즈음 호주의 예보관들이었다. 이들은 태풍에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붙였다. 싫어하는 정치인의 이름이 앤더슨이면 "태풍 앤더슨이 북상중입니다. 엄청난 재난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됩니다"라고 예보했다.

 

미국 공군과 해군에선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붙였다. 여성의 이름으로 된 태풍이 많았던 것은 이런 전통(?)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차별적이라는 지적이 나와 1979년부터는 남성과 여성의 이름을 번갈아가며 붙였다.

 

지금은 아시아 태풍위원회에 소속된 나라 중 14개국에서 10개씩 제출한 이름으로 돌아가며 호명한다. 한국이 최근 제출한 태풍 이름은 나비, 개미, 제비, 나리, 너구리, 장미, 고니, 수달, 메기, 노루 등이다. 주로 약한 이미지의 생물 이름을 제출했다. 조금이라도 태풍 피해를 줄여보자는 바람을 담은 이름들이다. 북한이 제출한 태풍 이름은 기러기, 소나무, 도라지, 버들, 갈매기, 봉선화, 매미, 민들레, 메아리, 날개 등이다.

 

≫한국과 북한이 제출한 태풍 이름. 한겨레 자료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그런데 이름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큰 피해를 끼쳤을 때 그렇다. 특정 태풍에 심각한 피해를 입은 회원 국가가 제명을 요청하면, 그 이름은 영원히 태풍의 이름으로 사용할 수 없다. 2005년 일본 열도를 강타해 1만여 가구에 피해를 끼치고, 규슈 지역에 산사태까지 발생시킨 슈퍼 태풍 ‘나비’가 그런 경우다. 일본의 요청에 의해 나비는 영원히 제명됐다. 이 이름을 제출했던 한국은 대신 ‘독수리’라는 이름을 냈다.

 

 

<한겨레> 소셜콘텐츠팀은 인류에 의해 이름 지어졌다 인류에 불행을 안겼다는 이유로 영원히 제명된 이 태풍들을 차곡차곡 모아 글과 인포그래픽으로 기록해봤다. 처음 소개할 태풍은 사상 처음 제명 요청을 당하고 사라진 태풍 ‘와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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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에 1번 확률...'바람 아래 땅' 휩쓸다

와메이(VAMEI,2001년)

 

와메이는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전세계 기상학자들에겐 가장 유명한 태풍이다. ‘적도에서는 태풍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적도 무풍지대’ 법칙을 깨며 충격을 안겼기 때문이다.

 

적도 지역은 태풍 피해가 없다시피 하다. 그 까닭을 알기 위해 먼저 태풍의 생성 원리를 보자. 태풍의 에너지는 애초 태양으로부터 나온다. 태양열로 뜨겁게 달궈진 바닷물의 에너지가 ‘열대성 저기압’이 되는 것이다. 이 저기압에 지구의 자전력이 더해져 북서쪽 방향으로 전진하는 동안 거센 회오리가 발생한다. 이렇게 빨라진 열대성 저기압의 속도가 초당 15m를 넘어야 비로소 ‘태풍’이라 불릴 자격을 얻는다. 즉, 지구의 자전력을 얻을 만큼 충분히 전진하지 못한 상태인 적도 근방에선 회오리를 만들만한 힘을 받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세계 열대성 저기압 발생도. 적도를 중심으로 펼쳐진 '무풍지대'를 볼 수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그런데 와메이는 불과 적도에서 156㎞ 떨어진(북위 1.5도) 곳에서 태풍이 됐다. 태풍 역사상 가장 낮은 위도다. 와메이 전에는 1956년 태풍 ‘사라’(한국에 온 1959년 ‘사라호’가 아니다)가 북위 3.3도로 적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 태풍이었다.

 

와메이의 시작은 미미했다. 2001년 12월19일 보르네오 섬 북서쪽 해안에서 생긴 약하고 거의 정체된 열대성 저기압 기류(vortex)가 있었다. 한국을 비롯한 북아시아는 한겨울인 때다. 그런데 북아시아의 차가운 북동풍이 하필 이때 남중국해를 타고 내려왔다. 이어서 바다 위에서 뜨거운 공기를 감싸며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한번 시작된 회전 기류는 양쪽 대기에서 서로 공을 ‘트래핑’하듯 공명하며 슈퍼 태풍으로 커져 갔다.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기상예보학과의 C.P. 창 교수에 따르면, 보르네오 섬 근해에 형성되는 정체 기류는 보통 불과 며칠 간 지속될 뿐이다. 1951/52년부터 2001/02년까지 51차례의 겨울 가운데 단 여섯 차례만, 나흘 이상 보르네오 섬의 기류가 바다 위에 머문 적이 있었다. 게다가 와메이가 형성된 모든 조건을 고려해, 남중국해를 타고 온 차가운 북동풍의 세력이 열대 지방까지 뚫고 들어올 정도로 강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0.12~0.49%의 확률, 즉 300~400년에 한번 꼴이 된다. 결론은 와메이와 같은 형태의 태풍이 형성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unlikely)는 것이다. (출처 : Chih-Pei Chang (2003). “Typoon Vamei: An equatorial tropical cyclone formation”. Georhysical research letters Vol 30.)

 

적도

싱가포르

태풍 와메이의 경로. 위키미디어 커먼스

 

따라서 태풍의 진로도 평소와 달랐다. 태풍의 단골 상륙지였던 필리핀 대신, 말레이시아 남동부와 싱가포르 북부를 강타했다. 태풍 경로에서 남쪽으로 비켜나 있어 ‘바람 아래 땅’(코타키나발루, 사바 주)이라고까지 불렸던 말레이시아에는 청천벽력이었다.

 

게다가 당시 와메이 ‘태풍의 눈’ 지름은 28㎞에서 50㎞까지로 비교적 규모가 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위성사진만 보고서는 이토록 바람이 강할 것이라고 예측하기 어려웠다. 피해가 컸던 까닭이다. 와메이는 상륙하기도 전, 말레이시아 해안 멀리에 있던 미 해군모함 칼 뱅상(Carl Vinson)호를 87mph(풍속 38.89m/s)의 바람으로 부숴버렸다. 풍속 40m/s면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속도다. 말레이시아의 겨울은 원래 2~3시간 비가 쏟아지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개는 식의 우기(11월~1월)다. 그런데 느닷없는 태풍으로 폭우에 강풍까지 쉴새없이 몰아치면서 남부 곳곳에서 홍수와 산사태가 일어났다. 1만 7000명의 사람들이 대피했고 5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남부 조호르주(州) 세나이(Senai)에서는 한번에 내린 비의 양이, 우기 동안 12월 한 달 내내 내리는 강수량 200㎜(CRU, 2012)에 육박했을 정도였다.

 

와메이는 싱가포르에도 엄청난 비를 쏟아부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기후학적으로 태풍과 해일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로 오랜 역사를 지닌 것도 그런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하지만 와메이가 쓰러뜨린 나무들로 교통이 마비됐고, 창이 공항에선 비행기 이착륙이 불가능했다.

 

싱가포르에 태풍 와메이가 던진 충격은 오래 갔다. 지난해 일본에 커다란 피해를 끼쳤던 초대형 태풍 ‘위파’가 북상할 즈음, 싱가포르의 한 일간지는 “싱가포르에 태풍이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지금까지 싱가포르를 덮친 싸이클론은 오직 와메이 뿐이고 이 또한 수백 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라는 것이 전문가 분석” 이라며 혹시나 싱가포르로 태풍이 올까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무려 12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와메이는 결국 처음으로 제명되는 태풍이 됐다. 마카오에서는 와메이(개똥지빠귀)라는 이름 대신 페이파(애완용 물고기 중 하나)라는 이름을 제출했다.

 

한반도 남부에 깊은 상처 낸 슈퍼 태풍

매미(MAEMI,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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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때 짧디 짧은 생을 마치는 매미처럼, 단명하라는 바람을 담아 붙인 이름이었을까? 그러나 매미는 그 바람을 저버리고 오랫동안 ‘악명’을 남기게 됐다. 1904년 시작한 한국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거센 바람을 몰고 온 것이다. ‘최대 순간 풍속’ 기록과 ‘한반도 상륙시 중심기압 최저’ 기록을 갈아치웠다. 10분 동안의 평균 풍속을 재는 최대풍속(maximum wind speed, 하루 중 임의의 10분간 평균으로 가장 세게 불었던 풍속)에선 51.1m/s를 기록했다. 초속 50m의 태풍이면 콘크리트 주택이 무너질 정도의 위력이다. 해안가에선 집채만 한 해일이 사람들을 덮쳤다. 132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경로는 1959년 사라와 비슷했다. 다만 매미의 경우 남해안 울진 부근에 상륙해 태풍의 오른쪽에 위치한 부산, 마산, 울산에 역대 최악의 피해를 끼쳤다. 태풍 진로의 오른쪽(‘위험반원’)은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태풍 자체의 소용돌이에다, 편서풍과 무역풍까지 더해지며 바람 피해가 커진다. 반대로 왼쪽(‘가항반원’) 원은 바람이 약한 대신 많은 비가 쏟아진다.

 

 

매미는 2003년 9월4일 괌 부근 해상에서 탄생했다. 애초엔 역시 열대저기압이었다. 그런데 비교적 천천히 커지더니, 10일께엔 중심기압 910㍱(헥토파스칼)에 달하는 엄청난 태풍으로 자랐다. 태풍의 중심기압과 주변 기압(1표준기압 1013.25㍱)과의 차이가 클수록 강력한 태풍이다. 950㍱ 이하이면 강한 태풍으로 분류된다. 매미는 2003년 한 해 발생한 태풍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태풍이었다. 북태평양으로 북상하던 매미는 제주도 해상을 거쳐 경남 사천시에 상륙했을 때까지도 세력이 별로 약해지지 않았다. 950㍱ 중심기압을 유지했다. 1959년 태풍 사라(951㍱)를 능가했다.

 

이같은 ‘슈퍼 태풍’이 생겨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당시 한국 북쪽에선 대륙 고기압이, 동쪽에선 북태평양 고기압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태풍 발생 초기 속도가 느려졌다. 떡잎 때부터 천천히 충분한 에너지를 흡수할 시간을 벌었던 셈이다. 게다가 한국 남해 해수면 온도가 28도로 높았던 때였다. 북쪽으로 올라오는 도중 차가운 바다에서 어느 정도 기운을 빼기 마련인 여느 태풍과 달리 쌩쌩한 힘을 갖고 한국에 도착한 것이다.

 

 

고스란히 힘을 간직한 슈퍼 태풍 매미는 12일 저녁 한반도에 상륙했다. 차가운 가을바람을 머금은 대륙 고기압과 맞대결을 벌였다. 엄청난 기압차로 바람은 더욱 세지고, 폭풍같은 북동풍이 부산ㆍ경남 지역을 휩쓸었다. 강풍을 업은 10m짜리 해일이 해안가를 덮쳤다. 가로수와 가로등이 뽑혀나갔다. 부산 남구 부두와 터미널에 있는 컨테이너 크레인들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부산 영도구에선 주차된 트럭이 해일과 강풍의 빗자루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며 건물을 들이받았다. 영도대교 아래 충돌해 부서진 어선들의 잔해가 수북이 쌓였다.

 

기록적인 바람으로 유명하지만, 집중호우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남해안과 강원 영동지방엔 폭우가 쏟아졌다. 매우 짧은 시간에 양동이로 퍼붓듯 비가 집중됐다. 12일 하루 동안 남해에 내린 비(410㎜)가 3일간(11~13일 낮 1시) 내린 비의 90.6%였다. 태풍이 머물렀던 11일부터 13일 낮 1시까지 남해 452.5㎜, 대관령 397㎜, 강릉 308㎜, 고흥 303㎜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한반도 상공에 머무른 것은 7시간가량의 짧은 시간(12일 저녁 8시~13일 새벽 2시 반)이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전국적으로 4조 7810억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132명이 사망 혹은 실종됐다. 1만 97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하천 급류에 휘말리거나, 강풍을 동반한 호우로 발생한 산사태 혹은 무너진 건물에 깔리는 일 등이 주된 사망 원인이었다. 특히 강원 영동 지역의 경우 바로 전해인 2002년 태풍 루사가 집중호우(일 강수량 870㎜)를 퍼부어 피해가 컸었다. 2년 연속으로 지역 전체가 휘청거릴 정도의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에 ‘국가태풍센터’가 탄생한 것도 태풍 매미의 영향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초 “2002년 루사와 2003년 매미로 인해 인명과 재산피해가 있었다. 국가태풍센터 설립을 위한 비용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또 한국은 ‘매미’를 제명해줄 것을 요청했다. 북한이 매미를 대신해 제시한 이름은 ‘무지개’였다.

 

3

상륙, 재상륙, 재재상륙…악몽의 한 주

파마(PARMA,2009년)

 

헤어지고 만나고 또 헤어졌다 다시 만남을 반복하는 밀당 연애, 지긋지긋하고 치가 떨린다. 태풍 파마가 그랬다. 무려 세 번이나 필리핀을 지나가는 갈짓자 행보를 보였다. 파마는 결국 필리핀에 역대 재산 피해 1위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안겼다.

 

17호 태풍 파마는 2009년 9월 27일 괌 남서쪽 해상에서 발생했다. 10월 1일 기준 최대 중심기압이 920㍱, 최대풍속은 53m/s이었다. 10월 3일 필리핀 루손 섬 북동부에 상륙했다. 앞서 태풍 켓사나(16호)가 필리핀을 관통하며 막대한 피해를 끼친 지 불과 닷새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것이 보통의 태풍이다. 그런데 파마는 발길을 미적거렸다. 10월 9일까지 타이완 남부와 필리핀 북부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소용돌이마저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피해가 엄청났다. 파마가 움직이지 않고 북상하지 못한 것은 일본 남부 바다로 북상하던 18호 태풍 멜로르(Melorㆍ재스민꽃/말레이시아)의 영향이었다. 멜로르가 강하게 자리를 잡으며 파마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후지와라 효과’를 일으켰다. ‘후지와라 효과’는 근접한 두 열대저기압이 영향을 주고받아 세력이 변화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파마는 원래 경로에서 벗어나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했다. 북서진하던 방향을 남서진으로 바꾸고, 또 남동진으로 바꾸며 뱅글뱅글 돌았다. 그러다 7일 필리핀 루손 섬 북부에 ‘재상륙’했다.

 

≫구름에 휩싸인 2009년 10월7일 북태평양 위성사진. 필리핀 북부를 강타하고 있는 파르마(왼쪽)와 일본으로 진행중인 멜로르(오른쪽). Ⓒ2009 NASA

 

일본 쪽으로 멜로르가 북상해 간 뒤에는 그 흔적을 따라 북쪽으로 가나 싶었다. 그런데 하필 북태평양 고압대에 19호 태풍인 네파탁이 생성됐다. 중국 남부에 중심을 둔 고압대가 성장하기도 했다. 결국 두 고압대 사이에서 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멈췄다. 파마는 한동안 북서태평양 고압대, 중국 남부 고압대 사이에서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중국 남부 고압대(동풍)의 영향을 받아 최종적으로 서쪽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했다.

 

이런 멈칫멈칫 갈짓자 행보로 태풍은 10월 3일~9일까지 일주일 가까이 필리핀에서만 머무르는 이상 진로를 보였다. 시속 230㎞의 강풍이 불었다. 루손 섬 북서쪽의 경우 1000㎜가 넘는 폭우도 내렸다. 필리핀에서는 연이은 태풍으로 켓사나 때 464명, 파마 때 492명이 목숨을 잃는 등 천명 가까운 인명 피해가 났다(PDNA). 폭우, 홍수, 산사태, 정전, 수질 오염으로 인한 식수 부족 현상이 벌어졌다. 전염병이 창궐했다. 국제기구인 ‘재난 뒤 수요조사(PDNA)’는 태풍 켓사나와 파마로 인한 피해액을 43억 8300만 달러로 추산했다.

 

 

“한 시간도 못되어서 1층 천장까지 물이 가득 차고 2층으로 흘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무릎 끓고 기도하는 것 외엔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단 걸 깨달았죠. 그때 (2층)서재의 창을 누군가 두드리며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층의) 지붕을 딛고선 한 남성과 두 여성이었습니다. 그 중 한 여성은 아기를 안고 있었어요.” (멜바 파딜라 멕게이, 아시아교회문화연구소장이자 유명 저술가)

 

파마는 10일에서야 남중국해에서 서진했다. 12일에는 중국 하이난 섬에 상륙했다. 14일에는 베트남 통킹만까지 나아갔고 여기서도 큰 피해를 끼쳤다. 파마의 수명은 14.75일로 오래 산 태풍 7위를 기록했다.

 

2009년은 독특한 해였다. 9월 하순~10월 중순의 태풍들(켓사나, 파마, 멜로르, 루핏)이 동남아를 휩쓸고 간 반면, 한국은 21년 만에 태풍의 영향을 받지 않은 해로 기록됐다. 대륙성 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을 뒤덮으면서 태풍의 북상을 저지한 때문이다. 한반도에 태풍이 상륙하지 않은 해는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4년 이후 1920년, 1947년, 1988년 딱 세 번뿐이다.

 

결국 파마와 켓사나는 ‘동반 제명’됐다. 파마는 다소 독특한 이름에 속한다. 닭의 간과 버섯이 들어간 마카오식 햄 이름이다. 마카오가 낸 이름을 보면 또 다른 먹을거리인 버빈카(우유 푸딩)도 있다. 그 외엔 무이파(서양자두 꽃), 산우(산호), 잔쯔(진주), 봉퐁(말벌) 등이다. 나라마다 이름 짓는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다. 일본은 일본에서 보이는 별자리 이름(곤파스)을 붙이기도 한다. 참, 제명된 파마를 대체할 이름은 ‘인파’다.

 

4

필리핀에 국가재난 불러온 태풍

하이옌(HAIYAN,2013년)

2013년 11월7일 최대 세력에 달한 하이옌이 필리핀에 상륙하고 있다. Ⓒ2013 NASA

 

태풍에도 ‘슈퍼 태풍’이 있다. 풍속이 시속 240㎞(66m/s)를 넘을 경우 매우 강력한 태풍임을 알리기 위한 등급이다. 2013년 필리핀을 쑥대밭으로 만든 하이옌은 그 슈퍼 태풍의 기준조차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태풍이었다. JTWC 미국합동태풍경보센터 기준, 분당 최대풍속이 시속 315㎞를 기록했다. 상륙시의 풍속으로는 역대 최고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분간의 바람 세기를 일컫는 최대풍속은 219㎞/h(기상청), 순간 최대풍속은 심지어 379킬로미터㎞/h(JTWC 비공식 기록), 즉 초속 105m/s에 이르렀다. 초속 60m/s의 매미가 크레인을 종잇장처럼 우그러뜨렸던 것을 생각하면, 하이옌은 실로 무시무시한 태풍이었다. 하이옌의 중심기압은 890㍱였다. 보통의 태풍이 950~980㍱만 되도 강하다고 불린다. 반경은 무려 600㎞였다. 한반도를 완전히 덮을 수 있는 크기다. 어마어마한 크기로 미국 뉴올리언스에 엄청난 피해를 안겼던 허리케인 카트리나보다 하이옌이 더 컸다.

 

특히 하이옌은 강력한 폭풍해일(스톰 서지)을 몰고 왔다. 피해가 컸던 타클로반 지역의 경우 5~6m에 이르는 폭풍 해일이 해안마을을 덮쳤다.

 

“바다가 타클로반을 삼켰다. 마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나타난 쓰나미 같았다.”(현지 방송)

 

지진 해일(쓰나미) 공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폭풍 해일의 심각성을 정부 당국은 몰랐다. 결국 당국이 소식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대피 안내를 하는 데 소홀해 인명 피해를 늘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집이 부서진 뒤 태풍을 피하려고 지프 안에 숨었지만 차가 물에 쓸려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홍수로 물이 코코넛 나무 높이만큼 차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에 떠내려가며 손을 뻗어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샌디 토로토로, 44, 타클로반의 택시 운전사)

 

루실 세링 기후변화위원회(CCC) 위원장은 <마닐라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하이옌의 경우 여러 요소의 치명적인 결합이었다. 고온으로 물이 대기 중으로 증발해 많은 비를 뿌리는 한편 강한 바람이 바닷물을 해안으로 몰아갔다. 누구라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강도였다”고 말했다.

 

≫하이옌(왼쪽)과 카트리나(오른쪽)의 세력 비교를 위해 위성사진을 적외선 채널로 변환한 뒤 같은 장소로 옮겨온 그림. 하이옌의 세력이 더 클 뿐 아니라 카트리나에서는 보이지 않는 보라색의 저압부가 매우 넓게 퍼져 있다. Ⓒ2013 CIMSS

 

세계보건기구(WHO)는 태풍 하이옌에 따른 피해규모를 최고수준인 ‘3급 재해’로 분류했다. 이는 무려 22만명이 희생된 지난 2004년 인도양 쓰나미, 약 23만명이 숨진 2010년 아이티 대지진과 같은 등급이다.

 

하이옌은 기상관측 이래 최대 태풍으로 불리는 1979년 20호 태풍 '팁'과 비교되기도 한다. 결론만 말하자면 최대 위력이나 크기는 팁이 우세하다. 그러나 북진하면서 세력이 많이 약해진 뒤 일본에 상륙한 팁보다는 최대 위력으로 필리핀 중부를 동서로 관통한 하이옌의 피해가 더 심각했다.

 

필리핀 당국의 대응은 모자랐다. 세계 각국의 구호물자가 집결했지만, 정작 전달할 수 있는 현지 정부체계가 공백 상태였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은 책임을 둘러싼 논란에만 열을 올렸다. 재해 대처에는 무능했다. 대통령은 사흘 만에야 현장을 찾았다. 국가재난선포는 약탈이 전방위로 번진 나흘째에야 이뤄졌다. 그동안 물이 빠져나간 폐허 곳곳에 주검이 참혹하게 뒹굴며 썩어갔다. 흙탕물에 쓸려간 아이를 찾아 가슴이 찢어진 엄마들이 수천 개의 주검들을 헤집었다.

 

태풍에 무너진 교도소를 탈출한 죄수들은 약탈과 총격전을 벌였다. 그야말로 무정부 상태였다.

 

 

12월 13일 필리핀 재해위기관리위원회(NDRRMC)는 하이옌으로 인한 사망자는 6009명, 실종자는 1779명이라고 발표했다. 최소한 2만 7022명이 부상하고, 400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태평양 동쪽 끝 바람에 노출된 취약지대에 엎어져 있는 불운한 나라.’(가디언) 필리핀은 1년에 평균 20회의 태풍을 맞는다.

 

하이옌 참상을 계기로, ‘국내는 슈퍼 태풍으로부터 안전할까?’라는 의문이 확산했다. 북위 37도인 한반도 인근은 바다가 차가워, 슈퍼 태풍이 힘을 간직한 채 올라올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와 박두선 박사후연구원은 1977~2010년까지 태풍의 인공위성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1977~2010년 동아시아 지역의 열대태풍 강도의 위협 증가’ 논문에서, “과거에 비해 갈수록 육지 근처에서 태풍이 빠르게 발달해 짧은 시간에 세력을 키우는 경향을 보였다”며 “슈퍼 태풍의 한반도 상륙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밝혔다. 기후 변화로 바닷물이 한층 따뜻해지면서 한반도도 슈퍼 태풍이 상륙 가능한 환경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준 사라와 매미도 슈퍼 태풍이었지만, 북태평양에서 태어나 한반도까지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상륙 당시엔 최전성기에 비하면 힘이 한풀 꺾였기 때문에 하이옌과 같은 최악의 재난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와 더욱 가까운 바다에서 생겨나고, 따뜻해진 바다 덕분에 힘을 잃지 않은 채 ‘슈퍼 태풍’이 상륙한다면?

 

국내 건축법상 건물 유리창은 최대 풍속 초속 40m를 견딜 뿐이다. 간판은 아예 강풍에 대비하는 설계 기준 자체가 없다.

 

우리는 필리핀의 비극과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을까?

하이옌으로 도시 기능이 마비되고 생활 기반이 무너진 도시를 벗어나려는 필리핀 타클로반 시민들이 2013년 11월15일 새벽 공항 관제탑 위로 생긴 무지개 아래에서 군 수송기를 탈 기회를 얻으려 기다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취재 정유경 조승현 글 정유경 이재훈
기획・디자인・제작・데이터 시각화 조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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