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최은미(가명·당시 22)는 2017년 11월26일 오후, 남편한테 살해당했어요.
은미와 은미 남편 이재형(가명·25)은 협의이혼 숙려기간 중이었어요.
이재형은 서울 강남 한 빌라 앞에서 은미를 흉기로 수십차례나 찔렀어요.
그곳은 은미가 이재형을 피해 홀로서기 하려고 구했던 집이었죠.
은미는 죽기 전날,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남편이 데리고 있는 9개월 된 딸을 보기 위해 경기도 화성 신혼집을 찾았을 때였죠.
법원은 협의이혼 숙려기간 동안 은미가 일주일에 한 번은 아기를 봐야 한다고 했대요.
다음날 새벽, 은미는 집을 빠져나와 서울로 돌아갔어요.
‘칼을 든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죠.
이른 아침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아 ‘이재형이 또 그러려고 해’라고 문자를 남겼다고 해요.
혼자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을 찾아 진료를 받은 은미는 경찰 안내에 따라 경찰병원으로 옮겨졌어요. 성폭행 증거를 채취하기 위해서요.
모든 검사가 끝나고 은미는 강남 집으로 돌아갔어요. 곧이어 흉기를 든 이재형이 집으로 찾아왔어요.
알고 보니, 경찰은 아침에 은미가 신고하자마자 이재형에게 신고 사실을 전화로 즉각 알렸다고 해요.
그러니까 은미는 경찰에 신고한 날 오후에 죽은 거예요.
이재형은 은미를 끔찍이 아꼈어요. 은미는 처음에 그게 사랑인 줄 알았죠.
그런데 2017년 2월 딸이 태어나고, 혼인 신고를 하면서부터 은미에 대한 이재형의 집착이 시작됐어요.
주변에 “나는 사람들이 은미를 쳐다보는 게 싫다”고 말하기도 했죠. 집착은 곧 폭력으로 발전했어요.
이재형이 초기에 두세차례 폭력을 휘둘렀을 때는 은미가 신고를 안 했대요.
결혼하고 1년4개월이 지난 2017년 9월23일, 이재형이 칼까지 휘두르자 주변에서 처음으로 경찰에 신고를 한 거죠.
이때도 은미는 집에 온 경찰에게 ‘처벌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네요.
그날의 소동은 가정보호 사건으로 법원에 넘겨졌어요.
그날 직후에 은미를 만났는데요.
목 주변에 빨간 반점 같은 것이 있었어요.
칼을 들이댄 상처였죠.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냐고요? 둘은 2014년 여름께 연애를 시작했어요.
은미는 자기만 바라봐주는 모습에 믿음이 갔대요.
2016년 5월 결혼식이 열렸는데, 양쪽 부모님은 오지 않았어요. 결혼에 반대하셨거든요.
경제적인 걱정은 없었어요. 은미가 장사 수완이 좋았거든요.
이재형은 은미 사업을 돕겠다고 나섰어요.
그런데 2017년 여름, 이재형이 강남 룸살롱에서 술을 먹고 여종업원을 성폭행하려다 들켰어요.
그동안 사업적 접대를 빌미로 룸살롱을 드나든 것 역시 들통이 났죠.
이재형은 은미한테 돈을 받아서 성폭행 합의금을 물어줬어요.
신뢰가 산산조각 났죠.
부부 사이는 점점 틀어졌어요.
이때 은미는 이미 마음이 떠났다고 했어요. 방황하더라고요.
그러자 이재형은 더욱 집착하고, 폭력적으로 변했답니다.
10월 중순, 이재형이 은미를 집에 가두고 발가벗겨 놓고 집안 이곳저곳을 끌고 다니며 6시간 동안 때렸대요.
은미는 남편한테 추적당할까봐 휴대전화도 두고 도망쳐서 우리 집에 왔죠.
얼굴이 땡땡 부었더라고요.
귀 뒤, 옆구리, 허벅지, 어디를 걷어도 다 멍이었어요. 성한 곳이 없었죠.
그런데 더 끔찍한 게 뭔 줄 아세요?
글쎄 그렇게 6시간을 때리고 은미와 성관계를 했다는 거예요.
“나랑 해야 한다. 소독해야 한다”고 했대요.
관계 중에는 꽉 껴안으라고 명령하기도 했다네요.
그래 놓고 그놈은 저랑, 주변에 서로 화해한 뒤 사랑해서 섹스를 했다고 주장했죠.
어이가 없더라고요.
은미는 제게 “6시간을 얻어맞고 어떻게 사랑을 나눌 수 있겠냐”고 털어놨죠.
심지어 그놈은 망치까지 들고 위협했대요.
이재형은 은미가 집을 나간 뒤 지인들한테 “은미를 찾아달라”며 몇번씩 전화를 했어요.
막 울면서요.
그러다가 어떤 날은 좀 강하게 몰아붙이기도 했어요.
“이혼소송 해서 위자료 청구하고 딸도 뺏겠다. 양육비도 엄청 올릴 거고 은미 인생을 나락 끝까지 내려버리겠다”고 소리치더라고요.
저는 애기도 걱정되고 해서 일단 은미랑 이재형한테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어요.
우리 집에서 둘이 한참을 대화했죠.
은미는 처음에는 무서워서 대답도 잘 못하더라고요.
은미는 남편이 자꾸 딸을 들먹거리니까 마음을 다시 먹더라고요.
“설마 죽기야 하겠어.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할게. 꼭 나를 구해줘.”
이 말을 남기고 신혼집으로 돌아갔어요.
은미가 그 와중에도 딸 걱정은 계속했거든요.
죽기 2주 전에도 “딸 돌잔치는 해줘야 한다”며 장소를 알아보고 그랬으니까요.
화성 신혼집에 돌아가자마자 한바탕 소동이 일었어요.
결혼하면서 왕래가 끊겼던 친정집에서 은미가 맞은 걸 알게 됐거든요.
친정 식구들은 신혼집으로 찾아가 “은미가 잘못했다”는 이재형을 뿌리치고 은미를 데리고 나왔대요.
하지만 자립심이 강했던 은미는 사업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미리 구해둔 강남 빌라로 조용히 거처를 옮긴 뒤,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효과가 있었죠.
이재형은 은미가 계속 친정집에 있는 줄 알았거든요.
이때부터 은미는 변호사를 통해 이혼 방법을 본격적으로 알아본 모양이에요.
10월31일 이혼서류를 제출하고 협의이혼 숙려기간에 들어갔어요.
은미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이재형의 집착은 더욱 심해졌어요.
에스엔에스(SNS)에 은미에 대해 험담하는 글을 올리고 은미 어머님한테 전화해서 “제가 한 대라도 때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새벽에 술에 취해 저한테 전화를 걸어선 “나 지금 죽을 거다. 유서는 은미한테 전해달라”고 협박하더군요.
전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 목소리를 듣고서야 전화를 끊었어요.
그때 이재형 집에 찾아갔던 지인 말로는 술병이 널브러져 있었고, 이재형은 잠들어 있었대요.
이재형은 결국 은미의 강남 빌라를 찾아냈어요.
포털 사이트에서 은미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로그인해 택배 주문 내역을 찾았다나 봐요.
이재형은 강남 빌라에 여러번 찾아가선 “집에 돌아오라”고 붙잡았대요.
은미는 포털 사이트까지 뒤져서 자신을 찾아낸 이재형의 행동이 “소름 끼친다”며 몸서리쳤어요.
저는 그때까지도 “오죽 네가 좋으면 그러겠어. 딸 생각해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고 권했어요.
은미는 단호했죠. “구질구질하게 매달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이미 끝났어”라고 했어요.
전 아직도 여섯 시간을 맞고 우리 집에 찾아와 파르르 떨며 “오빠가 내 팔다리 자를 거야. 나 진짜 죽어”라고 말하던 은미가 생생해요.
그때 은미 머리채를 잡아서라도 데리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사실 전 일이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어요.
여섯시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처음에는 “나한테만 이야기해라. 나중에 다시 잘 살게 되면 곱씹는 이야기가 될 거야”라고 조언했거든요.
은미도 “하소연해봤자 화해하고 살면 끝인데, 내 얼굴에 침 뱉는 거 같아”라고 말했고요.
전 은미가 나이에 견줘 성숙하다고만 생각했죠.
남 탓할 거 있겠어요? 제가 좀 더 어떻게든 해야 했는데….
‘설마 이런 일이 있겠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거죠.
은미도 이혼 소송이 시작되자 그 전보다 두려움을 떨쳐낸 것처럼 보였어요.
아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야 무서워서 살 수 없었을 거예요.
은미는 가정법원에서 시킨 대로 매주 토요일이면 화성 신혼집에 들러 딸을 돌봤습니다.
일정 나이 이하면 그렇게 해야만 이혼을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죽기 전날에도 딸을 보러 갔습니다.
은미가 죽은 지 벌써 4개월이 지났어요.
이재형은 은미를 두번 죽이고 있어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아직도 은미를 사랑한다”고 여러번 말했다고 하더군요.
3월19일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살인을 인정하면서도 특수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정했어요.
다툼이 있었던 건 맞지만 방 안에서 화해하고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했어요.
은미가 죽은 날 아침 자기 목에 남아 있던 ‘키스 자국’을 증거라고 내놓더군요.
만약 은미가 키스를 했다고 해도, 여섯시간을 내리 맞았던 그날처럼 강압에 못 이겨서 한 걸 거예요.
제가 아는 은미는 절대 이재형과 잘 사람이 아닙니다.
은미를 죽이기 한달 전부터 받은 정신과 진료 기록도 증거로 내더군요.
심신미약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은미를 죽였다고 주장하려는 모양입니다.
이런데도 주변에선 저한테 가만히 있으래요.
이 정도로는 절대 무기징역 안 나오고, 곧 풀려나니까 이재형이 보복하러 올 수 있다고요.
‘엄마, 우리 가족 행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줘.’
은미가 죽던 날 은미 어머님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예요.
은미 어머님은 이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어요.
가족들은 황망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어요.
은미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살해당했잖아요.
미처 손을 쓸 시간도 없었던 거예요.
이제 갓 돌이 지난 은미 딸도 큰일이에요.
이재형 엄마가 데리고 있거든요.
살인사건 피해자의 아기를 가해자의 엄마가 데리고 있는 거예요.
은미 부모님은 은미 딸을 어떻게 데려와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요.
저는 은미가 죽던 날 경찰 대응에 너무 화가 나요.
성폭행으로 신고하고, 경찰병원에서 성폭행 증거까지 채취했는데 신고 당일에 가해자한테 죽음을 당했잖아요.
은미는 11월26일 새벽 경찰에 신고했는데 아침 9시께 서울 수서경찰서의 한 수사관이 이재형한테 전화를 했대요.
그는 “억울하다”는 이재형에게 “성폭행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으면 빨리 사진으로 찍어 남기라”고 조언까지 했답니다.
은미 어머님도 “경찰은 외형상으로 별 무리가 없어 보이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가 버린다. 팔 하나가 없어지면 그때나 수사를 할까,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하시더군요.
은미의 안전이 확보된 뒤에 이재형을 조사했더라면,
이재형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일 수 있는지 경찰이 신중하게 조사했다면,
경찰병원에서 은미를 집으로 보내지 않고, 입원을 권하거나 쉼터에 보냈다면…
그래도 은미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