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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그릇에 담긴 마음

등록 :2021-01-25 08:34수정 :2021-01-2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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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책 <우동 한 그릇>에서.
사진 책 <우동 한 그릇>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 해를 보냈다. 코로나19의 여파가 이렇게 무섭고 혹독할지 꿈에도 몰랐다. 굳은 맹세로 ‘사명’의 노래를 부르며 주님이 예비하신 길을 잘 따르고 걷겠노라고 힘차게 출발한 2020년이었건만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이런 절망의 시대를 살면서도 또 새로운 한 해가 어김없이 찾아 왔다. 절망하기에 더 소망을 가져야 한다는 희망의 한 해를 그리며 가슴 언저리에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새로운 길을 인도해주시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이런 염원이 응답되듯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담긴 책 한권을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았다.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가 쓴 《우동 한 그릇》이라는 책이다. 가난을 아름답게 그려내 수많은 독자의 가슴에 눈물과 웃음을 선사했으며, 감동에 굶주렸던 현대인에게 ‘감동 연습’을 시켜 주었다는 극찬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따스한 감동의 수작(秀作)이 새해 하늘이 내리신 선물인 양 절로 기분이 흐뭇했다.

일본은 매년 마지막 날 ‘해 넘기기 우동(소바)’을 먹는 풍습이 있다. 홋카이도(北海道)의 어느 우동 가게에 12월 31일 늦은 밤에 마지막 손님으로 어린 두 아들과 어머니가 들어와 미안해하며 150엔짜리 우동 1인분만 주문한다. 행색이 초라한 세모자에게 무뚝뚝한 주인은 주방에서 우동 반 덩어리를 더 넣어 1.5인분의 우동을 내온다. 주인의 서비스를 눈치 채지 못하고, 세모자는 푸짐한 1인분의 우동을 너무도 맛있게 나눠 먹는다. 150엔을 지불하고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하는 그들에게 주인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한다.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그 다음 해도 가난한 세모자가 찾아와 미안해하며 우동 1인분을 주문한다. 그다음 해 마지막 날에는 주인 내외가 세모자를 기다린다. 그새 200엔으로 오른 우동 값을 메뉴판에는 150엔으로 고쳐 그들이 앉았던 테이블에 예약석 팻말을 올려놓았다. 10시 반이 되자 지난해보다 더 자란 아들들과 변함없이 낡은 코트를 입은 어머니가 웬일인지 우동 2인분을 시킨다. “우동 2인분!”이라고 맞받아친 주인은 주방에서 둥근 우동 세 덩이를 뜨거운 국물에 넣는다.

그리고 주인 내외는 무심한 척 세모자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그날이 마침 죽은 아빠의 빚을 다 갚은 날이라고 하며, 막내아들이 작문으로 발표한 ‘우동 한 그릇’이란 글의 내용을 얘기한다.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가,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큰 소리로 용기를 북돋아 주신 일. 그 목소리는 ‘지지 말고 살아라! 힘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래서 어른이 되면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주인 내외는 계산대 깊숙이 몸을 웅크리고 한 장의 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길 듯이 붙잡고 참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세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러 두 청년을 데리고 들어선 노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저… 우동… 3인분입니다… 괜찮겠죠?” 두 청년은 타지로 가서 의사가 된 큰아들과 우동집 주인 대신 은행원이 되어 나타난 막내.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모자 셋이서 1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동생과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포로의 우동집을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단편에 등장하는 세모자와 주인 내외의 따뜻한 마음은 삶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소중하며 또 예측 불가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또 삶은 권리가 아니라 매일 주어진 의무이면서도 귀중한 선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출세를 하여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무인지경의 세상과 견주니 가슴이 후비어진다.

사람들은 세상살이의 전부가 돈이 아니라는 걸 깊이 깨달아야 한다. 순자(筍子)는 ‘복이란 어떤 행운이 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재앙이 없는 생활이 이어지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라고 설파했고,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의 저자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가진 것보다 덜 원하면 부자, 가진 것보다 더 원하면 가난’이라고 강조했다.

언젠가 어머니 댁에 방문하여 직장을 퇴직한 후 작가로서 인생의 계획을 기쁘게 알려 드리니 당신은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한참 쳐다보시며 한마디 하신다. “책 잘 써서 인기 얻고 많이 팔려고 애태우지 마라. 그냥 편히 살아라. 마음이 편해야 행복하니라.” 뜻하지 않은 어머니의 말씀에 깜짝 놀랐다. 왠지 ‘인기 얻고, 많이 팔려고’라는 말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또 ‘애태우지 마라’는 뜻이 무엇인가 곰곰 생각하게 했다.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대로 살아야지 지나치게 잘 하려고 하면 반드시 건강 등 문제가 발생한다는 아들에 대한 당신의 걱정스러운 염려였다.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오늘 하루도 욕심 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바다 아래에는 전복⋅소라와 같이 탐나는 해산물이 가득하지만 욕심이 지나치면 물숨을 먹어서 위험하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용쓰지 마라는 말이나, 거북이나 달팽이 걸음으로 살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욕심 내지 말고 딱 나의 숨만큼만, 내 현재 수준에서 딱 한 걸음이나 두 걸음 앞선 지점까지만 꿈꾸고 소망하자. 그래야 내 호흡대로 꾸준히 걸어 나갈 수 있고 하느님의 축복을 흠뻑 받을 수 있다. 보기에 멋지고 폼 나는 것도 내게 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심지어 헛된 꿈이나 과대망상으로 패착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방학이 되어 외가를 방문할 때 학교도 안 다니고 책 한 권 읽지 않고 살아오신 생전의 외할머니가 누누이 하시던 말씀이 다시 새겨진다. “사람은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 “사람 허울을 하고 있다고 다 사람이 아니다.” “그 짓이 사람 짓이냐,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사람이 그러면 쓰간디.” 얼마나 사람다움을 강조하셨는지 모른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쌓아 놓은 모든 지식과 지혜를 다 섭렵하고 한 줄로 줄여도 위에 언급한 어머니와 할머니의 말보다 더 귀한 충고는 없을 것 같다. 무한으로 빨라지고 변화무쌍해져 사람이 따라잡을 수 없는 어지러움 속에 서로를 내동댕이치고 있는 지금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가를 질문하고 싶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에 기대어 살고 있고,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잘 살아갈 것 같은가.

섣달 그믐날 밤 텔레비전 앞에서 비대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배웠다. 눈을 감고 ‘반짝반짝, 반짝반짝’ 입술에 중얼거리면 마음속의 어둠에 별이 떠서 밝아진다고. 그래서 ‘우동 한 그릇’의 이야기가 반짝반짝 머리에 떠오르면서 고통 받고 슬프게 살아가는 사람의 얼굴이 바로 나와 너의 얼굴이고 우리의 얼굴이라고 여기게 한다.

파블로 피카소는 ‘삶의 의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이고 삶의 목적은 그 재능으로 누군가의 삶이 더 나아지게 돕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 한 번뿐인 인생, 목적 있는 삶이 되도록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는 가장 큰 계명을 지키며 살고 싶다. 그래서 2021년 올 한해 이웃의 고통과 슬픔에 무심하지 않기를 굳게 다짐해 본다.

글/<풍경소리> 최백용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 김민해 목사가 글 기부를 받아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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