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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벗님글방

욕 먹어 오래산다는건 그른 말이다

등록 :2020-08-19 18:10수정 :2020-08-1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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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7

- 야생초 지혜: 환삼덩굴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원주민들은 나무가 우거진 숲을 농지로 만들 때 나무를 베지 않는다. 그 대신 원주민들이 모여 나무가 있는 숲을 둘러싸고 온갖 욕을 퍼붓는다. “너는 살 가치가 없어!… 우리는 널 사랑하지 않아!…” 이렇게 욕을 하고 나면 나무들이 서서히 말라 죽는다. 그러면 죽은 나무를 베어내고 땅을 일궈 농토로 만들어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미르 칸 감독의 인도영화 <지상의 별들처럼>에 나오는 삽화이다. 풀과 나무와 숲에 기대어 사는 나는 이 영화 속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원주민들이 그렇게 나무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과학의 잣대로만 판단하는 이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하겠지만, 나는 풀이나 나무 같은 식물에게도 생령(生靈)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화전민에 해당하는 원주민들, 그들의 땅을 얻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나무들이 듣고 기꺼이 응답한 것이 아닐는지. 거친 욕설이 좀 심하다 싶긴 하지만.

우리는 풀이나 나무 같은 식물들도 인간과 동등한 생명으로 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로쿼이족 인디언들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으면 그 병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식물이 나타나서 환자가 그 식물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그리고 그 환자의 병을 치유해 주는 건 식물의 영혼이라고. 그렇다면 식물은 동물이나 사람보다 더 진화된 존재가 아닐까. 동물처럼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람처럼 말을 하지도 못하지만, 식물들은 자기가 가진 전부를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내어주는 성스러운 존재가 아닌가. 식물의 세계는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신비로운 보석가게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이로쿼이족 인디언들은 그래서 이런 감사의 기도를 바치기도 한다.

밤과 낮을 쉬지 않고 운행하는 어머니 대지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른 별에는 없는 온갖 거름을 지닌 부드러운 흙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해를 향하고 서서 빛을 변화시키는 잎새들과

머리카락처럼 섬세한 뿌리를 지닌 식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비바람 속에 묵묵히 서서 작은 열매들을 매달고 물결처럼 춤을 춥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오늘날 우리는 전자기기를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만, 대자연과는 소통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풀이나 나무, 꽃과 새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 결과 대자연을 살아 있는 존엄한 생명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무작스레 파괴한다. 풀이나 나무 같은 자연을 향해 단지 욕설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굴삭기 같은 기계로 파괴하고 제초제를 살포하는 살생을 서슴치 않는다.

환삼덩굴
환삼덩굴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제초제 같은 농약은 식물만 말려 죽이는 게 아니라 땅도 병들게 만든다. 땅이 병들면 어떻게 될까. 그 땅에 뿌리박고 사는 식물들이 병들고, 땅속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병들고,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들이 병들고, 그 동물과 식물들을 먹고 사는 인간도 병들 수밖에 없다. 우리 국토는 수십 년간 쏟아 부은 제초제와 각종 농약으로 오염되어 황폐해졌다. 호미나 삽으로 땅을 파보면 지구를 살리는 위대한 정원사인 지렁이나 굼벵이, 땅강아지 같은 생물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내가 사는 마을은 다행히 가톨릭농민회의 영향으로 여러 해 전부터 논농사를 우렁이농법으로 지어 유기농 쌀을 생산한다. 일찍이 마을에 녹색농촌체험관도 세워 도시의 아이들이 와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체험을 나누고 있는데, 체험관 입구에는 GMO FREEZONE이란 팻말도 세워져 있다. 그 팻말을 보고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유전자변형농산물을 거부하고 제초제 같은 농약을 쓰지 않겠다는 아름다운 다짐이 아닌가.

필자가 사는 마을  녹색농촌체험관 앞에 세워진 GMO FREEZONE 팻말
필자가 사는 마을 녹색농촌체험관 앞에 세워진 GMO FREEZONE 팻말
하지만 타성에 젖은 마을의 농부들은 밭농사를 할 때는 제초제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7, 80대 고령의 노인들이 대부분인 농부들은 자기들도 제초제가 얼마나 나쁜 건지 잘 알지만, 노동력이 부족하고 일손이 딸려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 이 시골 농부들이 가장 싫어하는 잡초가 바로 환삼덩굴이다.

농사의 훼방꾼으로 바랭이, 달개비, 명아주 같은 풀도 원수처럼 여기지만, 줄기에 갈고리형 가시가 돋아 있는 환삼덩굴은 아예 골칫덩어리로 취급한다. 줄기에 살갗이 닿으면 금방 살이 찢기고 피도 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식물은 길옆이나 마당, 밭둑이나 울타리를 가리지 않고 무성하게 자라나서 닥치는 대로 다른 풀과 나무들을 휘감고 덮어서 죄다 말려 죽이는 식물계의 무법자. 이 골칫덩어리 잡초가 고혈압과 갖가지 폐질환을 고치는 최고의 선약(仙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얼마 전 나는 텃밭가의 뽕나무에 엉킨 환삼덩굴 잎으로 차를 만들려고 한 잎 한 잎 뜯고 있었다. 점점 색깔이 짙어지는 손바닥처럼 생긴 푸른 잎들은 천하의 엽록소가 다 모여 기쁨의 함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농부들의 미움의 대명사이지만, 뽕나무 가지에 얹힌 잎새들마다 치유의 푸른 기운을 흠뻑 머금고 있는 듯싶었다. 한 시간여 땀을 흘리며 환삼덩굴 잎을 채취하고 있는데, 마을 반장 할아버지가 지나가다가 보고 그걸 뭐하러 뜯냐고 물었다.

“이 풀은 아주 훌륭한 약초에요. 특히 고혈압 치료에 좋죠.”

반장 할아버지는 약초라는 말에 잠시 솔깃해 하는 것 같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냥 가버렸다. 보통 사람들은 약초라고 하면 깊은 산에서나 캘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산삼이나 자초(紫草)처럼 귀한 약초는 깊은 산 속에서 얻을 수 있지만, 아무리 귀한 약초라도 모든 병에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귀한 약초도 잘 못 쓰면 독이 될 수 있다.

야생초요리가 권포근씨가 만든 환삼덩굴옹심이 요리
야생초요리가 권포근씨가 만든 환삼덩굴옹심이 요리
환삼덩굴도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집 주위에 있는 흔한 풀이 대부분 훌륭한 약초이다. 어떤 약초학자는 우리 집 주위에 널려 있는 풀 스무 가지만 알면 못 고칠 병이 없다고 장담했다. 조물주는 놀랍게도 병이 있는 곳에 약을 만들어 두었다. 병이 흔하면 그것 고칠 수 있는 약도 흔한 법.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흔한 만성병들을 고칠 수 있는 약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풀이나 나무껍질 같은 것이 도움이 된다.

앞서 말했듯이 환삼덩굴은 고혈압에 특효약이다. 환삼덩굴의 잎과 줄기를 7-8월에 채취하여 그늘에서 말려 가루를 내어 한 번에 9-12그램을 3번에 나누어 밥 먹기 전에 먹는다. 2-3일이 지나면 혈압이 내리기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면 고혈압으로 인한 여러 증상, 즉 수면장애, 두통, 머리가 무거운 느낌, 손발이 저린 것, 심장 부위가 답답한 증세 등이 대부분 없어지고 혈압도 정상에 가깝게 내린다. 환삼덩굴을 한의학에서는 율초(葎草)라 부르는데, 최근에는 율초환이라는 이름의 상품으로도 시중에 나와 있다.

옛 문헌에 보면 환삼덩굴은 폐농양이나 폐렴, 편도선염 등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린 환삼덩굴 50그램을 물에 달여서 꿀이나 흑설탕을 넣어서 하루 4-6번에 나누어 먹으면 쉽게 낫고 부작용도 없다고 한다. 이질이나 설사에는 환삼덩굴의 잎과 줄기 30그램에 물 한 되를 붓고 3분의 1이 되게 달여서 하루 3번에 나누어 먹으면 대개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낫는다.(네이버 블로그, <최진규의 약초학교> 참조)

우리 집에서는 환삼덩굴을 다양한 요리에도 활용한다. 사람들은 줄기에 가시가 있고 거친 잎으로 어떻게 요리를 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환삼덩굴 잎은 거칠어 깔깔이풀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 거친 잎도 뜨거운 물에 데치면 아주 부드러워진다.

환삼덩굴로 만든 요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 하나. 어린 환삼덩굴 잎을 뜯어 깨끗이 씻은 후 진간장과 조청, 포도씨유 등으로 양념을 만들어 넣고 불에 졸인 환삼덩굴 조림. 놀랍게도 김자반 같은 맛이 났다. 환삼덩굴로 차를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무더운 여름에 불을 피워 무쇠솥에 덖어야 하니 구슬땀을 쏟을 각오를 해야 한다. 덖고 나면 지쳐서 다시는 안 할 거야 중얼거리곤 하지만, 그 담백한 차 맛이 그리워 해마다 만들곤 한다.

얼마 전엔 딸이 친구들과 함께 놀러 왔는데, 아내가 환삼덩굴을 좀 채취해 달라고 해서 뒤란의 돌담에 잔뜩 번진 환삼덩굴을 뜯어다 주었다. 딸이 잡초요리를 하는 엄마 자랑을 늘어놓았던 모양이다. 한 시간쯤 지나 거실 겸 부엌으로 갔더니 아내는 딸 친구들을 위해 별미를 해 놓았다. 환삼덩굴 옹심이. 환삼덩굴 잎을 믹서기로 갈아 그 국물을 찹쌀가루에 부어 경단을 만들어 끓는 물에 익힌 후 미리 준비한 콩국물에 넣어 만든 특별한 요리. 식탁에 둘러앉은 딸의 친구들과 함께 먹는데, 딸 친구 중에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입담 좋은 친구가 시식 평을 했다.

“아까 집에 들어올 때 환삼덩굴을 첨 보았는데요. 이런 식물로 요리가 탄생하다니 놀라워요. 무엇보다 색이 아름답네요. 이 아름다운 걸 먹다니……경단을 씹으니 쫄깃쫄깃 고소하고 국물 맛이 일품이네요.”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우리 가족은 사람들이 요리 재료로 여기지 않는 풀로 요리를 해 먹으면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무엇보다 그 레시피를 이웃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다. 기후변화로 채소값이 폭등하고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때 텃밭에만 나가면 재료비 0원의 풋풋한 요리 재료가 잔뜩 널려 있으니!

글 고진하 목사 시인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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