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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님은 한마디 말이 없이 일만하지만

등록 :2020-06-29 10:03수정 :2020-06-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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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스님의 사사건건4

실상사 경내에서 일을 하는 노스님
실상사 경내에서 일을 하는 노스님

지리산에 오시면, 노고단과 백무동이 갈라지는 곳에 자리잡은 실상사에 오시면, 고요하고 단아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들이 어우러진 숲의 풍경이 아닙니다. 화려한 꽃들이 형형색색 어우러진 꽃밭의 풍경이 아닙니다. 고색창연한 먹기와 집 대웅전도 아닙니다. 고요하고 소박하 단아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단 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 분을 보신다면, 아 ‘사람이 풍경이다.’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사람 풍경은 바로 팔순이 훨씬 넘으신 노스님이십니다.

노스님은 얼굴이 매우 맑습니다. 이곳 실상사에 오신지는 몇 해 되지 않습니다. 노스님을 오랫 동안 모시고 있는 제자 스님의 말에 의하면 실상사에서 생을 마무리하고자 오셨답니다. 처음 오셨을 때는 기력이 매우 허약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매우 건강합니다. 노스님은 경내에 있는 잡초를 매고 도량을 정리하고 텃밭을 가꾸는 일로 하루를 보내십니다. 실상사에 오시면 허리가 굽은 노스님 한 분이 말없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도량을 정갈하게 가꾸는 일이 곧 수행입니다.

사실, 산중 절에서 잡초는 아주 귀찮고 힘든 골칫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한마디로 난공불락입니다. 뽑아내고 뽑아내도 금새 여기저기서 자라납니다. 특히 비가 온 뒤 무성하게 돋아납니다. 우후잡초입니다. 산중 절에 오시는 분들이 불만을 쏟아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절에 어울리지 않게 경내에 자갈이나 마사를 깔아 놓아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훼손하느냐고 타박합니다. 그러나 실제 한 달만 살아보신다면 그런 말들이 쏙 들어가실 겁니다. 여튼 실상사 경내는 평지에 있기 때문에 늘 잡초가 무성합니다. 이 잡초들을 온종일 노스님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새벽 예불이 끝나고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계십니다. 제자 스님의 말에 의하면, 부처님 도량은 삭도로 막 머리카락 깍은 스님들의 머리 모습처럼 단정해야 한다고 노스님은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노스님의 도량 정리는 ‘도량 삭발’에 해당합니다.

스님들은 무성하게 자란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고 부릅니다. 삭발은 잘 못 된 생각, 헛된 생각의 무명을 소멸시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머리카락 삭발, 도량 잡초 삭발, 내면의 무명번뇌 소멸의, 삼위일체 수행이겠습니다. 노스님이 묵묵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대중들의 마음이 절로 숙연해집니다. 온갖 지식과 논리로 무장한 어느 달변가보다 큰 울림을 줍니다. 무언설법(無言說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스님이 도량을 가꾸는 도구는 세 개가 있습니다. 그 도구 중에 호미와 괭이는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도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작은 나무 의자입니다. 나무 의자가 왜 필요할까요? 노스님은 일하시다 기력이 부치고 숨이 벅차면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쉽니다. 그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하늘을 보시는 모습은 선실에서 면벽좌선하는, 결이 날카롭게 선 어느 선승의 모습보다 아름답습니다. 생각에 힘을 뺀 삼매의 아름다움입니다. 노스님이 일하시고 나무 의자에 앉아 계신 모습을 보니 문득 손동연 시인의 시가 떠오릅니다. <우리 선생 백결>이라는 시입니다.

대처(大處)도 버리고 문하생(門下生)도 다 끊고

이 땅의 무등빈자(無等貧者)로 그대 홀로 나앉아서

남루(襤褸)의 흥겨운 길도 먼저 알고 行하느니

<중략>

속(俗)도 벗고 도(道)도 벗고 그저 무위(無爲)인 채로

죄(罪)없이 서러운 거문고 한 채 뜯다 보면

가난도 빚 하나 없이 제 집 짓고 들앉으신.

빚 하나 없는 고요한 가난, 속스러움에도 진리에도 갇히지 않는 마음, 수행한다는 생각에서도 놓여난 일상, 분별심과 억지 몸짓을 내려놓은 무등빈자로 살아가고픈 마음을 노스님에게 배웁니다.

나는 작년 이곳 실상사에 와서 노스님의 일상을 보면서 ‘노스님 예행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출가한지 사십 삼년이 흘렸습니다. 내년이면 이순(耳順)입니다. 그러니 출가 나이는 많고 세속 나이 또한 적지 않습니다. 아무리 수명이 늘어나는 시대라고 해도 나이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수행자로서 내면을 정화하고 성숙시키는 ‘보는 훈련’도 중요하지만, 이웃들에게 ‘보여지는 모습’ 또한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나이입니다. 어떻게 보여질까, 하는 새로운 화두가 세월 앞에 다가옵니다.

‘득점보다는 실점’에 유념하라... 내 또래의 지인들과 늘 나누는 주제입니다. 젊은 시절의 실수는 이해되고 용납될 수 있지만, 인생 후반기의 실수는 그 인상이 강합니다. 때문에 뭘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수하지 않는 행보가 중요할 것입니다. 득점하려고 힘쓰지 말고 실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라, 이렇게 생각이 머물고 그리하려고 노력합니다. 실점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른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맞은 화살이란 무엇일까요? 판단 착오, 과열된 의욕, 섣부르고 서툰 방법, 인정 받으려는 욕구, 이웃에 대해 함부로 해석하고 논박하고 교정시켜려 했던 언행들, 실천보다 말이 앞서가는 불일치입니다. 요약하자면 상식적인 선에서 ‘꼴불견’이 되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최소한 실점하지 않거나 실점을 줄이면 이웃에게 해를 끼치거나 손가락질 받지 않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분석과 비판에서 하심(下心과) 공경‘으로... 나의 노스님 예행 연습의 두 번째 표제입니다. 이 생에 몸을 받아 살아가면서 무지와 탐착도 위험하지만 또한 회피와 게으름 또한 위험할 것입니다. 러셀은 80세 생일에 자기 삶의 주요 가치를 세 가지로 술회합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갈망과 지식의 탐구, 그리고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입니다. 러셀의 대표적인 에세이를 묶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는 그가 평생 추구한 사랑과 지식, 연민이 담담하면서도 굳건하게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온화한 것을 좋아하려 했다. 나는 이 세상이 한층 세속적으로 변해가는 시대에 살면서도 통찰의 순간들로부터 지혜를 이끌어내려 했다.” 럿셀의 고백에서 나는 청정한 연꽃이 뿌리 박고 있는 진흙을 버리지 않는, 뜨거운 연민과 반전 평화주의자로서의 행동하는 지성의 고뇌를 읽습니다. 분명 그럴것입니다. 지고한 가치를 포기하고 관조적 여유와 안락에만 안주하려는 노년의 삶 또한 결코 바람직하지도, 아름답지도, 어른스럽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이제는 혈기 방창한 시절을 건너왔으니 차원이 다른 태도로 전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깨달음이란 바로 생각과 태도의 ‘전환’이겠습니다. 반성해보니 나는 습관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습관이 신체에 박힌 듯 합니다. 나의 이런 태도에 이웃들이 더러 힘들었을 것입니다. 수행자라는 이름과 행색 또한 어찌 보면 특별한 권위이고 권력이니 차마 말을 못했을 것입니다. 세월을 먹다보니, 많이 알고 똑똑한 거, 그렇게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여 이제부터는 ‘하심과 공경’으로 태도를 전환할 것을 다짐합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법구경>의 한 구절이 가슴에 닿습니다. 우리는 내 능력과 노력으로 사는 거 같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웃의 은혜와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사람과 산천초목에 대한 은혜가 실로 크고도 깊습니다. 그 고마움을 헤아려보니 절로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게 이로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에게 어찌 오만하고 함부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고마운 분들을 어찌 공경하지 않겠습니까? 지식과 지혜는 하심과 공경에 이르는 토대입니다. 하심과 공경을 삶의 주요 덕목으로 삼을 때, 나는 <노자>의 다음 말을 노년의 마음씀으로 삼습니다.

대직약굴(大直若屈)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둣하고,

대교약졸(大巧若拙) 가장 뛰어난 기교은 마치 서툰 듯 하고,

대변약눌(代辯若訥) 가장 잘 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 하다.

정녕 지혜로운 이는 하심과 공경의 마음으로 살고, 하심과 공경은 이와 같이 서툰 듯 자연스러운 태도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어 <노자>의 정승조(靜勝躁), 고요함이 조급함을 이긴다는 뜻을 새겨봅니다.

불볕 더위가 기운을 내뿜고 있는 오늘도 실상사 노스님은 도량 삭발 수행을 하고 계십니다. 무언으로 말하고 고요한 몸짓으로 보는 이에게 말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거듭 하심과 공경으로 나를 가다듬습니다.

법인 스님(실상사 한주 & 실상사 작은학교 철학 선생님)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kkumds.or.kr)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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