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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마음산책

언컨택시대1-집의 재발견

등록 :2020-04-23 15:15수정 :2020-05-0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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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이후 언컨택시대는
역으로 집과 가족의 집중 컨택시대
잠만 자던 집, 더 다양하게 활용해야
더 밀접해진 가족관계가 행불행 좌우

역경이 역경으로만 끝나서는 안된다. 인간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낸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보자.

지금까지 누구는 먹고사니즘이란 상황을, 누구는 가사노동에 얽매여 사는 삶을 이유로 ’내가 뭘 할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하곤했다.

하지만 ‘코로나’는 상황을 변화시켰다. 코로나로 인한 감염 위험과 실직 위험, 생계 위협 등 부정적인 상황은 열손가락이 부족하다. 그러나 전혀 달리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 코로나는 집을 잠이나 자는 여관쯤으로 여겼던 직장인들에게 재택근무로 온종일 보내야할 삶의 장소가 되게했고, 일주일에 한번도 한식탁에 함께 마주하기 어려웠던 가족들과 온종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따라서 상황때문에 뭘 할 수 없다는 이들에게 다른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발견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렇게 변화된 상황에서 우린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1.집의 재발견

언젠가 말기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활동을 해온 가톨릭 수녀에게 들은 이야기다. 병원에서 삶의 마지막을 직감한 환자들의 대부분이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나 우리집에 가고 싶어’란다. 갈 집이 없는 환자조차도 자신의 마지막엔 ‘우리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는 것이다. 임종자들이 말하는 집은 건물로서의 하우스가 아닐 것이다. 뭔가 따스함이 있는, 쉼이 있고, 안식이 있는 홈일 것이다. 죽어가더라도 그 홈이라면 좀 더 평안하겠다는 마음인 셈이다.

집은 하우스가 아니다. 집은 홈이다. 집이 여관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의 들뢰즈는 자본이 사물의 위치를 바꾼다고 했다. 자본주의는 욕망을 부채질하는 시스템이다. 그 욕망의 바퀴에 집도 국외자가 아니다. 따라서 집도 욕망 실현의 도구일 뿐이다. ‘우리 집’이란 안식처가 사물로서의 하우스가 된 까닭이다.

그러나 집은 타인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집은 노동의 피로를 푸는 쉼터이자, 타인들과 부대끼고 경쟁하느라 굳어진 긴장을 푸는 몸과 마음을 완화하는 힐링처소이자 가족들과 함께하는 가정이다.

이를 위한 물리적인 하우스도 중요하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그 좁은 지하방에서 와이파이가 잡히는 화장실 변기 위 쟁탈전을 벌인다. 아무리 좁은 집이라도 부부만 대화하기에 적절한 장소, 차나 술을 마시기에 좋은 곳,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숨을 곳, 햇볕을 쪼이기에 가장 적절한 곳과 시간대를 재발견할 수 있다. 집은 잠시 차 한잔 마시고 나오는 카페나 술집이 아니다. 아주 오래도록 살아야하는 곳이다. 그래서 재배치뿐 아니라 재발견이 필요한 공간이다.

직장인들의 경우 주중엔 낮에 일하고 기진맥진해서 돌아가 집은 씻고 먹고 대충 티브이 리모컨 놀리다가 침대에서 휴대폰 보다가 골아떨어지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재택근무가 늘고, 저녁 회식이 줄어들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집의 다양한 측면을 재발견해야만한다. 집은 식당도 되어야하고, 카페도 되어야하고, 유흥주점도 되어야하고, 상담소도 되어야하고, 노래방도 되어야하고, 명상룸이나 기도실도 되어야한다. 그리고 사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조화의 케미가 있어야한다. 이를 위해 가족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혼삶의 경우라도 반려동물이 있을 경우, 이들과 어떻게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지 구성에 따라 단조롭던 삶이 훨씬 다양해질 수있다. 반려동물이 없이 온전히 혼자만 사는 경우라도, 악기와 노래, 그림, 카드 등의 취미생활과 티브이, 유튜브, 인터넷을 적절하게 활용하게 삶을 좀 더 다채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

2.가족의 재발견

코로나 이후 시대를 ‘언컨택’시대라고 한다. 대면 접촉이 현저히 줄어든 시대라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꺼려서 가급적 오프라인 모임이나 만남은 코로나 확산이 잠잠해진다고 하더라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것이 가족들마저 ‘언컨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외출이 줄고 ‘재택’이 늘면 가족들간의 컨택은 전례 없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언컨택시대가 바로 가족 컨택 시대의 재개를 의미하는 것이다. 초고속 경제성장과 도시화로 대가족이 해체되고, 가정이 일터에 밀린 가족과 가정이 다시 컴백하는 셈이다.

따라서 코로나 이후엔 가족들과 관계가 삶의 행불행을 좌와할 바로미터가 된다. 만약 전례없이 얼굴 대할 시간이 많아진 가족들이 여전히 가족들을 도구로 인식한다면 그 집은 지옥으로 향해할 게 분명하다. 가족은 꼴 보기 싫다고 보지않을 수 있는 나그네가 아니다.

현대인은 대부분 자본주의에 감염돼 있다. 바이러스만큼 빨리 증상이 나타나지않지만 자본주의적 관점은 인간관계를 서서히 고사시켜왔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본주의적 관점이란 인간을 목적이 아닌 도구로 본다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도구 말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도구로 쓰이다 죽고싶어하지않는다. 따라서 가장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한 돈벌이 기계가 아니다. 주부도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해야할 전기밥솥이나 세탁기나 식기건조기가 아니고, 섹스 파트너만도 아니다.

가족간에도 내 욕구만 요구하면 지옥, 상대방의 욕구를 경청해서 받아주면 천국이 될수 있다.
가족간에도 내 욕구만 요구하면 지옥, 상대방의 욕구를 경청해서 받아주면 천국이 될수 있다.

자녀도 마찬가지다. 자녀는 부모가 이루지못한 욕망을 대신 채워줘 대리만족을 시켜줄 도구가 아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그도 한명의 인간이다. 과도한 기대를 했다가 기대에 부응하지못한다고 실망하고 구박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존중해야할 인간인 것이다.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지못하고 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구박해야할 대상이 아니고, 주부가 더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거나 집안을 더 깨끗히 치우지않는다고 타박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존중 받아야할 가족인것처럼.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원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

이 황금율은 통상 타인과의 관계의 원칙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황금율이 1차로 적용되어야 하는 곳은 가족간이다. 내가 도구로 전락되지않으려면 가족의 누구도 도구로 여기지않고 존중해야한다.

최대의 존중은 내 욕구를 내세우지않고, 상대의 욕구를 경청하는 것이다. 이런 경청을 가족의 재발견으로 이끈다. ‘내 남편은, 내 아내는, 내 아이는 무엇 때문에 그동안 힘들었구나, 무엇을 갖고 싶었구나, 무엇을 하고 싶었구나, 어떤 말 때문에 상처를 입었구나. 인정과 칭찬에 목말랐구나’

이런 재발견이 있다면, 코로나는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있다.

최근 발간된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최성현 글, 불광출판사 펴냄)에 나온 19세기 일본의 선승 세키세이 세츠의 일화다. 그는 늘 ‘무슨 장사나 세 가지에 반해야 성공한다’고 했다. 그 세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자리에 반하는 겁니다. 상점이 있는 자리가 어떤 곳이든 그 자리밖에 없다고 여겨야 합니다. 둘째는 장사에 반해야 합니다. 장사를 좋아해야 장사가 됩니다. 그게 싫으면 일찌감치 그만두는 게 낫습니다. 힘들지 않은 일이 있겠습니까? 힘들어도 손님 만나는게 좋고, 손님이 기뻐하는 게 좋아야 합니다. 밥 먹기보다 더 좋아야 합니다. 장사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싶어야 합니다. 홀딱 반해야 합니다. 마지막은 아내입니다. 여자라면 남편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좋아야 합니다. 반해서 서로 만났습니다.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 게 쉽지 않습니다. 3년, 5년이 지나면 서로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적은 밖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안에도 있습니다. 안에 적이 생기면 장사는 끝입니다.”

세츠가 말한 상점은 집으로만 바꾸면, 집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행복할 수 있는 지를 말해준다. 그의 말인즉 자족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자족이란 정원이 딸린 넓은 집이 아닌 것에 불만을 터트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집의 가치를 재발견하며 그 집과 잘 지내는 것이다.

조현 기자 cho@hani.co.kr

이 시리즈는 2.마을공동체의 재발견, 나의 재발견 등으로 이어집니다.

#휴심정(http://www.hani.co.kr/arti/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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