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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스포츠일반

멘붕 심권호, 퀭한 눈으로 “퍽치기 당한 …”

등록 :2013-02-15 20:24수정 :2013-02-1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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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심권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20년 올림픽에서 레슬링을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13일 자신이 팀 코치를 지낸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 엘에이치(LH) 위례사업본부에서 “순간적으로 퍽치기 당한 기분이 들었다”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성남/인터뷰 김양희 기자 <A href="mailto:whizzer4@hani.co.kr">whizzer4@hani.co.kr</A>,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심권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20년 올림픽에서 레슬링을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13일 자신이 팀 코치를 지낸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 엘에이치(LH) 위례사업본부에서 “순간적으로 퍽치기 당한 기분이 들었다”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성남/인터뷰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레슬링의 전설, 심권호와 만나다
멘붕 오면 부상위험…1808명 후배들아 운동에만 집중해줘
▶ 심권호 전 코치와 얘기를 나눈 장소는 주차장 옆 눈 쌓인 벤치였다. 겨울 햇볕이 참 따뜻해 처음에는 몰랐지만, 눈 속에 파묻혔던 발이 나중에는 엄청 시렸다. 레슬링계도 그랬던 것 같다. 햇볕만 보다가 발이 젖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올림픽 종목 선정이 국제올림픽위의 인맥정치나 상업주의에 영향을 받는 시대가 됐다는 게 씁쓸하게 다가온다.

두 눈이 휑했다. “멍~한 상태로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했다. 전날(12일) 저녁, ‘작은 거인’ 심권호(41)는 “너무 믿기지 않아 오보라고 생각했던” 뉴스를 전해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아마추어 레슬러를 좌절시킨 레슬링의 올림픽 핵심 종목(Core Sports) 제외. 비단 2020년 올림픽에 한정된 사안이지만, 레슬링은 사실상 선택적 비주류 종목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13일 오전 경기도 성남 엘에이치(LH) 위례본부에서 <한겨레>와 만난 심권호는 “순간적으로 퍽치기 당한 기분이 들었다”는 격한 표현도 썼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올림픽을 2연패한 ‘레슬링의 전설’은 허탈한 웃음을 여러번 지어 보였다.

“솔직히 올림픽에 주춧돌을 쌓고 기둥이 되어왔던 게 레슬링이잖아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이게 진짜야? 진짜야?’라고만 생각했어요. 어떻게 스포츠의 조상 종목 같은 것을 올림픽에서 제외시킬 수가 있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레슬링 퇴출 결정 소식에 밤새 한잠도 못 잤다는 심권호(왼쪽)가 13일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 엘에이치 위례사업본부 앞 눈 쌓인 벤치에서 <한겨레> 기자에게 레슬링계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얘기하고 있다. 성남/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레슬링 퇴출 결정 소식에 밤새 한잠도 못 잤다는 심권호(왼쪽)가 13일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 엘에이치 위례사업본부 앞 눈 쌓인 벤치에서 <한겨레> 기자에게 레슬링계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얘기하고 있다. 성남/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심권호가 일명 ‘쫄쫄이’를 입기 시작한 것은, 문원중학교 1학년 때였다. 레슬링 팀 훈련을 훔쳐보다가 선생님께 발탁됐다. 어릴 적부터 넘쳐나는 에너지로 동네방네 뛰어다녔던 꾀 많은 장난꾸러기는, 매트 위 원 안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때인 1989년에는 경기도에 소년체전 사상 첫 레슬링 금메달을 안겼고, 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에 이어 95년 세계선수권 때 ‘1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사람을 잡고 돌리고 업어치고 메치고 태클 들어가고, 맨몸으로 아무것도 안 걸치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전투방법 중 하나가 레슬링이잖아요. 레슬링이라는 운동을 잘 몰랐을 때는 도중에 그만둘까도 했었지만,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는 순간 레슬링이 이런 운동이구나 느꼈죠. 그때부터는 즐기면서 운동을 했어요.”

160㎝의 옹골찬 체구로 올림픽 금메달을 꿈꾼 것도 그즈음이었다. 2인 1조로 사람 메고 달리기, 목말 태워 달리기 등 그 어떤 종목보다 힘든 몸만들기를 하면서도 올림픽 금메달을 계속 머릿속에 그렸다. 올림픽 정상은 곧 세계 챔피언을 뜻했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 어렵고 힘든 과정들을 견딜 수 있던 건 전부 올림픽 메달 때문이었어요. 올림픽 금메달을 딴 순간에는 정말 ‘내가 진짜 세계 1등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진정한 챔피언 같은 그런 기분이요.”

심권호는 현역 시절 자신보다 20㎝ 이상 큰 사람도 가볍게 넘어뜨렸다. 키가 큰 선수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반으로 접어 돌리기까지 했다. 조그만 체구에도 거구의 상대를 마음먹은 대로 요리하는 모습에 팬들은 대리만족을 느꼈다. 맨몸으로 부대끼는 운동이다 보니, 상대 선수의 ‘인간적인 냄새’와도 싸워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기도 했다. “경기할 때는 극도로 집중하기 때문에 전혀 신경이 안 쓰이는데, 경기가 끝나면 바로 코가 제 역할을 하니까 죽음이지요.” 상대 선수와의 몸 접촉이 많아 그의 양쪽 귀는 거의 형체가 없어졌다. 레슬링이 그에게 준, 훈장이라면 훈장이다. 그가 생각하는 레슬링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

“머릿속에 상상했던 기술들로 원하는 사람을 쓰러뜨린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지 않나요? 다른 운동은 내 몸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레슬링은 자기 몸 통제가 잘되거든요. 상대방을 공중에서 비틀어서 넘기고 할 때, 많이 힘들다고 하지만 그 순간의 통쾌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작은 사람이 맨몸으로 큰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것도 레슬링이지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에서 승리한 뒤 코치진과 환호하고 있는 심권호의 모습.(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 54㎏급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경기 결승에서 승리한 뒤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고 있는 모습.  1997 보도사진연감, 2001 보도사진연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에서 승리한 뒤 코치진과 환호하고 있는 심권호의 모습.(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 54㎏급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경기 결승에서 승리한 뒤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고 있는 모습. 1997 보도사진연감, 2001 보도사진연감

그에게 두차례 금메달을 안겨준 96년 애틀랜타올림픽,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하면서 경기 외적인 경험도 많이 했다.

“선수촌 안에서 각 나라 기념 배지를 교환하거든요. 한국 것은 인기가 많아서 하나 주면 2~3개씩 받고는 했어요. 가방에 족히 100개는 넘게 붙여놨었는데 어느날 보니 후배들이 다 훔쳐갔더라고요. 북한 것도 있었는데.”

90년대만 해도 동유럽이 그리 풍족하게 살던 때가 아니라 체코, 러시아 선수들은 고국에서 가져온 크리스털, 보드카 등을 선수들에게 은밀히(?) 거래하기도 했다. “체코 선수들한테 크리스털 제품을 사는데 ‘5달러 오케이?’라는 식으로 흥정도 하고 그러면서 더 많이 가까워졌어요. 그때 맺은 인간관계가 전부 저의 자산이 됐지요.” 보통 레슬링 경기는 대회 기간 동안 일찍 끝났기 때문에 귀국하기 전까지 혼자서 다른 종목 선수들 경기장을 찾아가 구경도 하면서 응원도 했다. “다른 종목 애들한테 ‘금메달 한번 만져볼래?’ 그러면서 막 자랑하기도 했어요. 못된 놈이었죠.”(웃음)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성격상 애틀랜타, 시드니 시장 골목을 누비면서 골동품을 구경한 것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의 레슬링 후배들은 앞으로 그런 ‘잔재미’를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에서 상상한 기술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건
정말 매력적인 일이에요
상대를 공중에서 비틀어
넘길 때의 통쾌함 아우 그거”

“메달을 꿈꾸었을 선수들은
더 해서 뭐하냐 생각할 텐데…
기업 후원이 줄어들면
실업팀도 존폐 걱정해야 할 판
그래도 희망 잃지 말았으면”

정치 게임을 못해서 탈락당했다?

레슬링은 고대 올림픽에서 단거리경주,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등과 함께 5종 경기 중 하나로 치러졌다. 기원전 2131년 고대 이집트에서 레슬링이 행해졌다는 문서가 있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또한 레슬링에 심취해 경기에 참가했다는 기록 또한 있다.

근대 올림픽에서도 1896년 1회 아테네대회 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면서 레슬링을 예우해줬다. 1900년 파리올림픽 때 잠시 빠지기는 했지만 이후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줄곧 있었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여자 레슬링이 신설됐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폐막 4시간 전 “국민 여러분, 기뻐해주십시오. 한국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라는 감격에 찬 아나운서의 멘트로 전해진, 한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도 레슬링에서 나왔다.

그러나 2013년 2월12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레슬링을 2020년 올림픽 핵심 종목에서 제외시켰다. <비비시>(BBC),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등 주요 외신들도 발표 직전까지 근대 5종의 탈락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쳤다. 하지만 15명 아이오시 집행위원들의 선택은 ‘고대 5종’ 중 한 종목인 레슬링이었다. 집행위는 4년마다 한번씩 핵심 종목을 추리는데, 2017년에는 2024년 올림픽 핵심 종목을 채택하게 된다. 때문에 이번에 결정된 25개 종목을 올림픽 영구 종목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매슈 퍼터먼 기자는 개인 블로그에 쓴 글에서 “레슬링은 핵심 종목에서 제외될 종목을 고르는 집행위 4번의 투표에서 줄곧 1위를 기록했다”고 적었다. 레슬링 외 퇴출 종목 후보는 근대 5종, 하키, 카누, 그리고 태권도였다.

마이클 노보그라츠 미국레슬링협회 부회장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오시 집행위 구성원 대다수는 레슬링 전통이 없는 유럽 국가 출신”이라고 꼬집는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케일 샌더슨(미국)은 “올림픽과 레슬링은 처음부터 함께였다. 올림픽에서 태초의 스포츠를 빼버린다면 올림픽이라는 이름 자체를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고 비판한다. 레슬링의 의미와 역사를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다.

한국 레슬링계도 올림픽 종목 제외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날벼락’, ‘멘붕’, ‘청천벽력’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심권호는 “그런 얘기들이 떠돌았다면 술렁이기라도 했을 텐데 전혀 준비가 안 됐기 때문에 레슬링계 전체에 ‘멘붕’이 왔다”고 했다. 한때 엘에이치 레슬링 팀 코치였던 그는, 현재 엘에이치 일반직 부장으로 재직중이다. 코치는 아니지만 주말마다 후배들을 가르친다.

태권도나 근대 5종 등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수년 동안 치열한 전장에서 스포츠 외교를 벌일 동안 레슬링은 고대 올림픽 종목이라는 이유로 안정적 지위를 확보했다고 믿은 게 잘못이었다. 탈락 영순위로 꼽혀온 근대 5종은 그동안 꾸준한 변화의 노력을 보여왔다. 레슬링 또한 시대 흐름에 따라 규칙 변경 등을 해왔으나 아이오시를 만족시킬 만큼은 아니었다. 레슬링 관계자들은, 라파엘 마르티네티(스위스) 국제레슬링연맹 회장조차 집행위 발표 15분 전에야 탈락 사실을 알았다고 전했다.

푸에르토리코의 리카르드 카리온 아이오시 위원은 <에이피>(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몇몇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로비력이 더 뛰어나다. 스포츠도 정치적인 연관관계가 있다. 때문에 이번 일처럼 큰 결정을 할 때조차 완벽하게 논리적이지는 않다”고 간접적으로 레슬링이 정치 게임에 희생됐다고 밝혔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브라이언 케이즈누브 칼럼니스트는 “레슬링의 올림픽 탈락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올림픽 상업주의와 맞물려 현대화하지 못하거나 정치 게임을 할 줄 모르면 존경받는 스포츠조차 올림픽에서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슬프지만 사실이다”라고 냉소적으로 적시했다.

재미없고 메달쏠림이 심하다는 지적

레슬링이 아이오시의 외면을 받은 것은 오랫동안 지적되어온 ‘흥미성’과도 무관치 않다. <비비시>는 “아이오시가 퇴출 종목을 결정하기 전에 각 스포츠 종목에 대한 티브이(TV) 시청률, 입장권 판매, 반도핑, 국제적 인기도 등의 자료를 봤다”고 보도했다. 올림픽 전체 수입원 중 70%가 중계권료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업화된 현대 올림픽에서 티브이 시청률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레슬링의 경우, 특히 그레코로만형은 선수들 실력이 상향평준화되면서 방어적인 자세가 많아졌고 역동적이기보다는 정적으로 변했다. 지루한 힘대결만 계속되니 방송사가 중계를 꺼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심권호는 적극적으로 반론을 폈다.

“예선전을 보면 기술이 엄청 나와요. 그런데 위로 올라갈수록 50 대 50의 실력이 붙으니까 기술이 못 나오죠. 몇 경기만 놓고 얘기하면 안 되죠. 그리고 레슬링 하면 관중석이 꽉꽉 차 있어요. 재미없다면 그렇겠어요? 그리고 운동을 안 했던 사람이, 경기장 한번 와 보지도 않은 사람이 ‘레슬링이 재미있다, 없다’를 평가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일각에서는 레슬링의 메달 쏠림현상이 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권호는 이 또한 강하게 부정했다.

“일본이 여자 레슬링 강국인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일본은 10년, 20년 동안 집중해서 여자 선수들을 키웠거든요. 앞으로도 길게는 10년 동안 독재 체제가 이어질 거예요.

하지만 남자 레슬링은 런던올림픽 때도 그렇고 최근에는 여러 나라에서 메달을 나눠 가져갔어요. 주위에서 ‘한두 나라에 메달이 몰아서 간다’고 하면 그런 소리 말라고 해요. 육상 하면 미국이듯 어느 종목이든 강국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2012년 런던올림픽 때 레슬링은 71개국 344명이 11개 체급에서 겨뤘고, 29개 나라에서 메달을 가져갔다. 금메달은 러시아와 일본이 각각 4개, 이란이 3개, 미국과 아제르바이잔이 각각 2개를 따냈다. 여자 레슬링만 일본이 독식(4개)했을 뿐 비교적 금메달 분배가 잘 됐다. 한국도 김현우가 그레코로만형 66㎏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예전에는 러시아가 한꺼번에 열몇개씩 따가고 그랬지만 요즘에는 전력이 많이 평준화되서 안 그래요. 저변 확대 운운하지만 레슬링보다 더한 종목도 많잖아요.”

심판 판정도 입길에 많이 오른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도 정지현이 판정에 억울함을 드러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스웨덴의 아라 아브라하미안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동메달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레슬링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에서 편파 판정, 그리고 잡음이 있잖아요. 컴퓨터로 판정을 하지 않는 이상 사람이 하는 것인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에요?”

심권호는 이미 올림픽과 관련해 이별의 아픔을 한번 겪었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 그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48㎏급이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는 56㎏급과 묶여 54㎏으로 통합됐다. 근육량을 키우면서 몸무게를 늘리는 게 쉽지 않아 48㎏급 대부분의 선수가 은퇴했지만 심권호는 꿋꿋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2000년 올림픽 때도 금메달을 움켜쥐었다. 두 체급 그랜드슬램(아시아경기대회, 아시아선수권, 세계선수권, 올림픽을 석권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심권호가 ‘레슬링의 신’, ‘레슬링의 전설’로 불리는 이유다.

“솔직히 48㎏ 체급 없어졌을 때도 억울했죠. 그래도 체급이 없어지면 체급을 내리거나 올려서 버티면 되지만 종목 자체가 없어지면 어떡해요. 48㎏ 체급 같은 경우에는 몇년 동안 얘기가 있다가 없어졌는데….”

그의 얼굴에 한참 그늘이 졌다.

현재 대한레슬링협회에는 199개팀 1808명의 선수들이 등록돼 있다. 이들 중 중학교 선수는 85개팀 787명, 고등학교 선수는 52개팀 537명이다. 대학교 팀은 22개 팀 273명. 모두 올림픽 금메달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지름 9m의 원 안에서 구르고, 또 구르고 있다. 심권호가 걱정하는 것도 어린 선수들이다.

“중고등학교 선수들이 ‘레슬링 해서 뭐하냐’ 할 것 같아 두려워요. 우리가 올림픽 메달을 땄기 때문에 후배들도 희망을 품고 운동을 해온 거잖아요. 자신들도 올림픽 주인공이 되겠다는 신념 아래서. 그런데 날벼락같이 올림픽 종목 제외라니, 제가 아는 후배들은 모두 ‘이게 뭐냐고’, ‘말도 안 된다’고 전부 망연자실하고 있어요.”

2020 올림픽 가려면 8대1 경쟁 뚫어야

실업팀 또한 안심할 수는 없다. 국내에는 엘에이치, 삼성생명, 조폐공사 등을 포함해 모두 40개 실업팀에 206명의 선수들이 몸담고 있다. 심권호는 “전국체전을 목표로 하는 시·군 팀과 달리 엘에이치나 삼성 등은 올림픽을 바라보고 레슬링 팀을 운영한다. 그런데 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에서 빠지면 팀 지원이 아니라 존폐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우려했다. <야후스포츠>는 13일 ‘레슬링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기사에서 “올림픽 메달이라는 궁극의 목적이 사라지면 레슬링 기구들은 와해될 것이다. 스폰서를 잃을 것이고, 후원도 줄어서 레슬링 엘리트 유망주들에 대한 지원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레슬링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다시 채택될 수 있을까? 일단 2020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야구·소프트볼, 가라테, 우슈, 롤러스포츠, 스쿼시, 스포츠클라이밍, 웨이크보드 등과 8 대 1 경쟁을 벌여야 한다. 8개 종목은 5월 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차기 아이오시 집행위 회의 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9월 아이오시 총회(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때 안건으로 상정돼 ‘간택 여부’를 판정받는다. 5월에 후보 종목을 3종목으로 줄이고 9월 총회에서 정식 종목 채택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집행위 결정을 총회에서 거부할 수도 있지만, 이는 25개 핵심 종목을 정한 것 자체를 없던 일로 되돌리는 것이 된다.

지난 13일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힘없이 돌아서는 심권호(오른쪽)의 어깨를 한 직장 동료가 감싼 채 위로하며 걷고 있다. 성남/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13일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힘없이 돌아서는 심권호(오른쪽)의 어깨를 한 직장 동료가 감싼 채 위로하며 걷고 있다. 성남/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20년 올림픽 개최지도 9월 총회 때 함께 결정되는데, 후보 도시인 스페인 마드리드, 일본 도쿄, 터키 이스탄불이 레슬링에 우호적이어서 긍정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전통적인 레슬링 강국인 미국, 러시아, 이란 등의 반발이 거센 것도 아이오시를 압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자크 로게 아이오시 위원장이 “핵심 종목에서 제외됐다고 해서 올림픽에서 완전히 빠진 것은 아니다. 문은 열려 있다”고 진화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레슬링 후원활동이 시작됐고, 대한레슬링협회도 18일부터 레슬링 살리기 서명운동을 벌인다. 과거와 현대의 올림픽을 이어주는 끈을 쉽게 잘라버릴 수는 없다는 데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추세다.

심권호는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올림픽 정식 종목이 다시 되든 안 되든 후배들에게는 충격이 왔어요. 잡생각이 많아지면 훈련도 안 되고 부상 위험도 높아지는데 큰일이네요. 2016년 리우올림픽도 있고 하니 희망을 잃지 말았으면 해요. 차후의 일은 연맹이나 체육회에 맡기고 후배들은 운동에만 집중해줬으면 좋겠어요. 레슬링계도 이번을 전화위복으로 삼고 더 나은 길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심권호는 인터뷰 뒤 일터로 돌아가면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하얀 입김과 더불어 담배 연기가 신기루처럼 하늘 위로 올라가 사라졌다. 심권호는, 그리고 수많은 아마추어 레슬러들은 언제쯤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을까?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유인탁의 휠체어, 한명우의 붕대, 김현우의 피멍…

어느 레슬링키드의 회고

시인 서정주는 언젠가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라고 노래했지만, 나에게 그 바람은 4년마다 찾아오던 올림픽을 지켜보며 날밤을 새웠던 서울 개봉동 반지하 방의 서늘한 공기가 아니었나 싶다.

유인탁 선수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남자 68㎏급 레슬링 자유형 경기 결승에서 미국의 앤드루 레인 선수와 경기를 하고 있다.  1987 보도사진연감/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유인탁 선수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남자 68㎏급 레슬링 자유형 경기 결승에서 미국의 앤드루 레인 선수와 경기를 하고 있다. 1987 보도사진연감/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30년 전 나를 사로잡은 그 남자

냉전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분노한 서구 사회가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을 보이콧한 탓에 내 인생 최초의 올림픽은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이 되고 말았다. 이 올림픽의 중요성을 이제 와 되새기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지만, 그때 이 나라를 다스리던 이들은 ‘광주의 피’로 권력을 잡은 뒤, 관제 축제 ‘국풍 81’과 <애마부인>(1982), 야구·축구의 프로화 등 3S정책으로 국민의 혼을 빼놓던 군사정권이었다는 사실 정도만 언급해 두자. 그런 의미에서 ‘86은 디딤돌, 88은 도약대’라는 구호는 당시 동네 파출소 현관 앞에 걸려 있던 ‘정의사회구현’ 간판의 쌍둥이였으며, 그 때문이라도 1984년 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높았고, 높을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컬러 방송이 시작된 것은 1980년 12월이고, 삼성전자에서 생산하던 14인치 이코노 컬러텔레비전이 우리 집 안방구석에 자리잡게 된 것은 1984년 올림픽이 열리기 몇달 전이었다. 그해 올림픽 최고의 스타는 누가 뭐라 해도 ‘왕발이 하형주’였겠지만, 내 기억에 강렬히 살아 있는 이는 유도 60㎏급 결승전에서 1분10초 만에 숙적 호소카와 신지에게 통한의 누르기 패를 당했던 열아홉살 김재엽과 지옥 같은 결승전을 마친 뒤 짓누르는 허리 고통을 참으며 시상대에 올랐던 ‘그 남자’ 유인탁이다.

남자 레슬링 68㎏급 자유형 결승전이 열린 1984년 8월11일 오후 미국 애너하임 컨벤션센터는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유인탁은 안방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미국의 앤드루 레인을 상대로 어렵게 경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파죽의 5연승으로 결승전에 진출한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로 변해 있었다. 1차전에서 프랑스의 에리크 브륄롱, 2차전에서 인도의 싱, 3차전에서 서독의 에르빈 크노스프를 가볍게 테크니컬 폴로 따돌린 유인탁은 4차전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게 된다. 상대는 1982년 인도 뉴델리아시아경기대회에서 그에게 2-3 통한의 패배를 안겼던 일본의 가미무라 마사카즈. 그는 귀국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기를 앞두고 긴장돼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고 말했지만,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고국의 4천만은 만약에 진다면 현해탄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눈빛으로 유인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인탁은 이 경기에서 신승을 거두지만, 허리 부상을 당해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어진 앤드루 레인과의 결승전. 유인탁은 1피리어드 1분10초 만에 깨끗한 메어 던지기로 3점을 얻어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이후 속수무책으로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기 시작한다. 곧바로 상대에게 다리를 잡혀 1점, 2분께 다시 허리 공격을 당해 1점, 그리고 다시 옆굴리기를 당해 3-4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야, 이 새끼야, 정신 똑바로 차려!” 서울 개봉동 변두리의 좁다란 골목 틈에서 안타까운 사내의 고함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후 마지막 힘을 짜낸 유인탁은 상대에게 옆굴리기 공격을 성공시켜 5-4로 앞선 채 1피리어드를 마쳤다.

그리고 지옥 같은 후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인탁은 30초 만에 상대의 머리에 턱을 받히는 부상을 당했고, 1분33초에는 소극적인 경기를 벌인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다. 다시 2분께엔 다리에 쥐가 났고, 시합 종료 10초 전 상대에게 등을 허용해 5-5 동점으로 경기가 끝났다. 이제 어찌 되나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찰나, “국민 여러분 기뻐해주십시오”라는 캐스터의 음성이 전해져왔다. 동점으로 경기가 끝나면 더 큰 기술을 성공한 선수가 이긴다는 얘기였다.

영웅들의 탄생과 빠떼루 아저씨

그러나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경기가 아닌 시상식이었다. 시합을 마친 뒤 극심한 허리통증을 호소한 유인탁이 휠체어에 의지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제대로 설 수도 없는 고통을 참아내며, 시상대 제일 꼭대기에 오른 투박한 남자의 얼굴을 보니, ‘스포츠의 위대함’이라는 말로는 뭔가 부족한 착잡하고 씁쓸한 어떤 감동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초반 메어 던지기로 승기!”(<조선일보> 8월13일치 호외) 감격한 국내 언론들은 호외까지 찍어내는 기염을 토했고, <에이피>(AP)와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도 유인탁을 미국의 육상영웅 칼 루이스 등과 함께 이번 올림픽을 빛낸 영웅으로 선정하며 그의 투혼에 찬사를 보냈다.

다시 4년이 흘렀다. 그사이 대한민국은 3저 호황을 통해 고도성장을, 87년의 뜨거운 여름을 통해 민주화를 이뤄냈다.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우리 집도 도시 서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조성된 상계동 아파트촌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88년 서울올림픽이 시작됐지만, 왠지 모를 불안한 공기가 모두를 짓누르고 있었다. 대회 나흘째가 되도록 기대하던 금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닷새째인 9월21일. 그레코로만형 74㎏급 결승전에 나선 서른살 노장 김영남의 상대 이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소련의 투를리하노프였다.

지금껏 많은 스포츠 경기에서 수많은 전광석화의 순간들을 지켜봐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종료 58초를 남겨 놓고 터진 김영남의 2점짜리 역전 ‘목감아 돌리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장면은 자유형 82㎏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한명우의 붕대 투혼과 함께 한동안 방송에 단골로 등장했다.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는 박장순과 안한봉이라는 순박한 얼굴의 청년들이 금메달을 땄고, 1996년 시드니와 2000년 애틀랜타에서는 한국 체육계가 배출한 진정한 레전드 가운데 하나인 심권호가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운다. 한국 레슬링은 그 무렵 “지금 빠떼루(파르테르) 줘야 함다”, “땀나기 전에 빨리 옆굴리기 들어가야 함다”라는 주옥같은 유행어를 낳은 ‘빠떼루 아저씨’(김영준 레슬링 해설위원)와 함께 절정에 달했다가 서서히 내리막을 걷게 된다. 한국 레슬링의 전성기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에 재임하던 기간(1982~1997년)과 절묘하게 겹친다는 점도 흥미롭다. 2002년 월드컵 이후로는 가뭄에 콩 나듯 레슬링이 중계돼도 채널을 돌리게 됐고, 평생 잊어버릴 것 같지 않던 그 감격의 시간들도 빚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져 갔다.

어찌 보면, 레슬링은 진정 한국적인 스포츠이기도 했다. 가난하던 산업화 시절 우리가 따낸 레슬링 금메달은 세계를 상대로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따낸 성과가 아닌 역경과 고난을 아슬아슬하게 이겨낸 행운의 메달들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에서 터진 양정모의 금메달은 미국의 강호를 폴로 이긴 탓에 숙적 오이도프(몽골)에게 패하고도 따낸 불완전한 금메달이었고, 1984년 김원기와 유인탁의 금메달도 동점으로 경기를 끝낸 뒤 좀더 큰 기술을 성공했다는 이유로 획득한 행운의 금메달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우리에게 ‘헝그리 정신’이 사라진 탓인지 알 수 없지만, 1988년 9개로 정점을 찍었던 한국 레슬링의 메달 수는 2000년까지는 4개를 유지하다가 2008년 처음으로 금맥이 끊겼고, 2012년 김현우의 부상 투혼에 힘입어 금메달 하나를 가까스로 수확하는 데 그쳤다. 역대 올림픽을 통해 레슬링이 건져 올린 메달은 금메달 11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3개로 이에 필적할 만한 종목은 태권도, 양궁, 유도, 쇼트트랙 정도밖에 없다.

한국 효도종목의 씁쓸한 내리막

레슬링의 몰락은 어느 정도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레슬링은 완벽한 기술 하나로 승부가 결정되는 유도나 4점짜리 얼굴 공격으로 역전이 가능하도록 혁신을 이뤄낸 태권도만큼 흥미로운 종목은 아닐 수 있다. ‘라이벌’ 유도는 하형주-김재엽-전기영-이원희-최민호-김재범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해왔지만, 레슬링이 내놓을 수 있는 대중적인 스타는 심권호가 유일하다. 한국 레슬링계나 국제레슬링연맹(FILA)이 자기 혁신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도 미지수다. 한국만큼이나 레슬링의 탈락을 아쉬워하는 일본 언론도 ‘위기감이 결여된 전통경기’(<아사히신문> 13일치 19면)라는 기사에서 올림픽 정식종목 탈락이라는 초대형 악재에 직면한 레슬링계의 무사안일을 질타하고 있다.

그러나 허리 통증을 참으며 시상대에 서고(유인탁), 머리를 네 바늘이나 꿰매는 붕대 투혼을 발휘하며(한명우) 까맣게 부풀어 오른 눈으로 상대의 어깨를 파고 태클을 피한(김현우) 사내들의 모습을 2020년 올림픽에서 볼 수 없다는 상황은 너무 끔찍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시작된 순정한 열정의 순간들은 이대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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