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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구 국가대표인 박철우가 지난 17일 대표팀 코치에게서 폭행당했다며 18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취재진에게 상처 부위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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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박철우 폭행 사건
성적 지상주의가 선수들을 폭력 사각지대에 방치
지도자 자질향상 중요…박 선수 추가피해 없어야
프로배구 최우수선수 출신이며 국가대표 오른쪽 공격수 박철우(24·현대캐피탈)에 대한 폭력사태는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사건이여서 과거 폭력사태와 구별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우선 폭력이 벌어진 장소가 한국 엘리트체육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태릉선수촌이었다는 점, 폭력의 피해자가 단순한 국가대표가 아니라 직업을 프로로 삼고 있는 인기선수라는 점, 폭력을 행사한 것은 코치이지만, 그 코치의 상급자인 감독이 바로 해당선수의 소속팀 지도자였다는 점 등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폭행의 상황 역시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과 발로 맞았다는 점에서 지도자가 선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 배구계는 여전히 폭력 불감증 이 소식을 접한 전 국가대표 감독 출신의 한 프로배구 감독은 “배구계에 폭력이 없을 수는 없는데, 이렇게까지 심하게 때려서야 되겠냐”고 했다. 한국 여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국가대표 출신의 한 은퇴 선수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 매우 불행하다”면서도 “그러나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배구인들의 생각과 시각을 잘 드러내는 발언들이다. 배구계 안에선 능력있고 장래가 유망할 것으로 기대했던 이상열 코치를 잃은 것에 많은 아픔을 느끼고 있으며 동시에 동정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선 지도자나 많은 체육인들은 아직도 선수들의 폭력에 대한 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배구협회 고위 관계자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우리도 과거에 맞으면서 훈련했다”는 말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태릉도 선수 폭력 사각지대 아버지와 함께 기자회견에 나섰던 박철우는 이런 폭력이 처음이냐는 질문에 “일선 지도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고 했다. 이쯤 되면 배구계의 폭력은 국가대표팀과 프로배구는 물론 초·중·고·대학까지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김종덕 태릉선수촌 훈련본부장은 “다른 종목과 달리 배구대표팀은 2주일 정도의 짧은 합숙기간에 퇴촌을 불과 5일 앞두고 이런 일이 일어나 매우 안타깝다”며 “이번 일로 마치 선수촌이 폭력이 일상화된 것처럼 비쳐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어쨌든 이번 일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폭력을 행사한 코치를 형사고발하는 초강수를 뒀다. 김 본부장은 “이 일을 협회에 맡기면 지도자와 선수를 모두 선임한 당사자가 신속하고 정확한 징계절차를 밟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 것도 선수촌 내에서 벌어진 사안이라는 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태릉선수촌 내 폭행 사례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9월 코치가 선수를 폭행해 선수촌에서 퇴촌조치를 당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두 명의 국가대표 선수가 해당 코치와 함께 퇴촌하겠다고 해서 폭행 진위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으며 아직도 명쾌한 해답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 국내 선수 폭력은 어느 정도일까? 대한체육회 산하 선수보호위원회가 발족한 2005년 7월 이후 확인된 성폭력과 성추행을 포함한 폭력사례는 모두 30건이다. 2005년과 2006년엔 각각 신고건수가 4건과 3건에 불과했지만, 2007년 5건에서 2008년 9건, 올해엔 박철우 사건까지 포함해 9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24건이 지도자의 (성)폭행과 성추행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 통계만 봐도 선후배간의 폭력 사례보다 지도자의 사례가 더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지도자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또 건수로는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과거의 ‘맞고 운동하는 풍토’에서 구타에 맞서 신고하려는 적극적인 문화로 바뀌고 있는 것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이런 통계는 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비해 극히 일부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 성적지상주의가 빚어낸 악순환 문제는 왜 이런 폭력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가이다. 김종덕 선수촌 훈련본부장은 “배구의 경우 프로선수들로 구성돼 단기간에 팀워크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여타 종목의 선수들과 다른 점”이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리려는 욕심이 자칫 잘못된 지도자들의 감정을 자극할 수도 있다. 폭력과 구타 등의 방법으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서 한국 체육의 우수성을 평가받을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럼에도 한국체육의 풍토는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도자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는 성적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2005년 프로배구의 신영철 엘지 감독과 문용관 대한항공 감독이 폭행으로 징계를 받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빚어진 것이다. 박영옥 체육과학연구원 정책실장은 “경기단체가 과거 경기인 출신 중심으로만 구성되다보니 체질개선엔 상대적으로 늦는 면이 있다”며 “외부인사의 영입 등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다”고 했다. 대부분의 경기단체는 자체 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폭력사태에 대해 가급적 문제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 담아 들어여 할 얘기다. ■ 폭력에 맞선 선수, 피해자 되지 말아야 프로와 아마추어 농구선수를 모두 지도한 경험이 있는 김인건 태릉선수촌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지도자와 선수 간의 신뢰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철우는 폭행을 당한 뒤 같은 프로팀의 김호철 감독과 40여분을 면담하고도 하루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실 감독의 묵인이 없는 한 코치가, 그것도 감독이 직접 데리고 있는 프로 선수에 대한 폭력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김 촌장은 보고 있다. 이번 일로 김호철 감독은 대표팀에서 해임됐고, 해당 코치는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고, 박철우 역시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결국 3명이 모두 피해를 보게 된 셈이다. 그런데 박철우는 올 시즌이 끝나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해당 팀으로선 감독과 선수의 이런 불편한 관계 때문에 선수와 재계약 문제에 신경이 곤두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유야 어쨌든 지도자의 행동에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기자회견까지 했던 박철우가 배구계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지는 않을까 우려도 된다. 2008년엔 한 중학교 선수가 지도자로부터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가 그 사실이 인정됐는데도 가혹한 처벌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돼 결국 학생이 전학을 가야 하는 일도 벌어졌다. 피해자였던 선수가 적극적으로 나선 뒤 결과적으로 추가 피해를 본다면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 ■ 선수인권에 대한 인식 변화가 급선무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최근 한 언론의 컬럼을 통해 학생 선수들이 공부 대신 운동에 더 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정상적인 수업을 받지 못하는 운동 선수들은 다른 학생에 비해 대인관계나 학업 능력에서 뒤떨어질 수 있다. 이런 여건 속에서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가볍게 대하고 폭력까지 행사한다면 이들은 커서도 좋은 지도자가 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부든, 운동이든 성적만 내면 된다는 잘못된 학원문화와 학교체육문화가 결국 선수의 인권을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 박영옥 체육과학연구원 정책실장은 “선수들에게 때리지는 않는다고 해도 훈련이나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리한 운동장 돌리기 등을 시키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라고 했다. 선수들의 인권과 권익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23일 오후 2시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릴 ‘선수인권 가이드라인 확정을 위한 공청회’는 이런 어수선한 한국의 체육현실에서 과연 어떤 해답을 제시할지 지켜볼 일이다. 권오상 기자 ko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