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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성범죄 저자와 그의 책은 분리될 수 있을까요?

등록 :2021-02-17 04:59수정 :2021-02-1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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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동성추행 동화작가 사건이 남긴 질문들
아동성추행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한예찬 작가의 책을 펴낸 출판사가 한씨의 책을 회수하기로 15일 결정했다. 1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의 한 도서 물류창고에 서점에서 회수된 한씨의 책들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아동성추행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한예찬 작가의 책을 펴낸 출판사가 한씨의 책을 회수하기로 15일 결정했다. 1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의 한 도서 물류창고에 서점에서 회수된 한씨의 책들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아동 성추행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동화작가 한예찬(53)씨의 책은 그가 수감된 뒤에도 두 달 넘게 판매됐다. 지난 15일 <한겨레> 첫 보도 뒤 그의 책을 낸 가문비 출판사는 책을 절판하고 서점에 배포된 책을 회수하겠다고 했다. 주요 대형서점과 공공도서관들은 한씨 책의 판매·열람·대출을 막았다.

이번 사건의 경우 매우 예외적으로 신속하게 작가의 출판물을 공적 영역에서 퇴출시킬 수 있었다. 어린이책을 쓰는 작가가 아동을 성추행했다는 특수성이 작가와 저작물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뜨렸기 때문이다. 유사 사건 처리에 이번 사례를 일반화시키기는 어려운 이유다. 작가가 성범죄로 처벌받은 경우 그의 저작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절판해도 성범죄자 책은 판매·대출된다

작성자 moow****

서울대 수학과 교수 성추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죄판결을 받고 파면되었고요. (중략) 그 사람이 쓴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아이들 보게 산 책이 청소년권장도서였기에 더욱 분노가 일었죠. (중략) 이런 경험이 있다보니 이 기사를 읽고나니 정말 씁쓸하네요.

강석진 전 서울대 수학과 교수는 2010~14년 4년 동안 자신이 지도하는 대학원생과 수강생, 동아리 소속 학생과 세계수학자대회 사무국 여직원 등 7명을 8차례 추행한 혐의가 인정돼 2016년 1월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됐다. 그는 <수학의 유혹> <축구공 위의 수학자> <아빠와 함께 수학을> 등의 수학 관련 대중서를 쓴 저자였다.

16일 현재 온라인 대형서점에서는 그의 책을 저자의 범죄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여전히 구매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도 관련 공지 없이 열람·대출할 수 있다.

공연·예술계 미투 운동의 첫 대상이었던 공연연출가 이윤택씨는 2019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의 유죄가 확정됐다. 그가 쓴 시집 <나는 차라리 황야이고 싶다>도 일부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국립중앙도서관 대출도 가능하다. 그의 범죄 이력을 공지하는 곳은 없다.

이런 저작물을 이용하려는 독자에게 서점 또는 도서관에서 저자의 범죄와 처벌 사실을 공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해당 범죄로 이미 처벌을 받았는데 범죄와 상관 없는 출판물에 관련 사실을 공지하는 것은 추가적인 명예형이 될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

회수 뒤 작가에 구상권 청구”vs“현실적으로 불가능”

“판결 전이라도 성범죄 혐의가 있으면 출판사는 판매 중지해야 한다. 판결이 난 이후라면 출판사에서 책을 일괄 회수한 뒤 작가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장은수 출판평론가·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작가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실제로 집행되기까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문제라 현실적으로 엄두가 나지는 않는다.”(20년 경력의 한 중견출판사 본부장)

출판계에도 저자가 범죄 등에 연루된 경우 출판사에서 책을 회수해 피해자 인권을 보호하는 데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일부 형성돼 있다. 다만 저자의 범죄와 그의 저작물은 별개로 봐야한다는 인식이 더 강하고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년 경력의 한 중견출판사 본부장은 “작가가 무죄 주장을 한다면 출판사로서는 판결 없이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판결 이후에도 20여권의 책을 펴낸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출판계에서는 한씨 책을 펴낸 가문비 출판사가 유죄 판결 이후에도 계속 책을 판매한 배경에는 한씨의 책이 꾸준히 팔렸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가문비 출판사는 구체적인 판매 부수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피해아동 쪽이 가압류 신청을 한 2018년 9월 이후 한씨의 인세 2천만원을 법원 결정이 나기 전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책의 경우 작가에게 돌아가는 인세율은 보통 7%라고 한다. 출판계에서는 이를 근거로 해당 기간 한씨의 책이 2만권가량 팔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적어도 판결 이후라면 출판사가 책을 회수한 뒤 작가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피해를 보전했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대형 출판사가 아니라면 작가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지난해 문학동네는 매해 봄이면 출판하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김봉곤 작가의 작품에서, 김 작가가 지인과의 사적 대화를 허락없이 사용해 논란이 일자 책을 전량 회수하고 절판했다. 2019년 단행본 출판사 매출 1위를 기록한 문학동네도 김 작가에게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동성추행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한예찬 작가의 책을 펴낸 출판사가 한씨의 책을 회수하기로 15일 결정했다. 1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의 한 도서 물류창고에 서점에서 회수된 한씨의 책들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아동성추행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한예찬 작가의 책을 펴낸 출판사가 한씨의 책을 회수하기로 15일 결정했다. 1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의 한 도서 물류창고에 서점에서 회수된 한씨의 책들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도서관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동문학 작가가 아동 대상 성범죄 가해자인 경우를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다. 작품이 그대로 노출되면 피해자는 피해를 계속 상기하게 된다. 그의 과거와 미래 저작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등을 포함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저자의 책은 출판사 판단으로 서점에서 회수가 가능하지만, 이미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들을 빼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전문가들은 이런 책들을 도서관에서 어떻게 소장하고 열람·대출할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도서관법 30조를 보면 공립 공공도서관은 도서관운영위원회를 두도록 명시해두었다. 하지만 운영위원회의 상세 규정은 정해두고 있지 않고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하도록만 했다.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장은 “운영위원회를 두어야한다고만 할 뿐 상세규정이 없다보니 도서관마다 제각각 해석이 다르다. 한씨의 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서관에서 논란이 되는 책의 소장 여부나 서비스 제공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없다”고 말했다.

도서관법 시행령은 소장자료의 폐기 기준으로 책의 훼손 여부 등을 정해두었지만 성범죄 저자의 책을 폐기한다거나, 저자의 유죄 판결을 이용객들에게 공지하도록 하는 등의 법적 근거는 없다. 전국 초·중·고 도서관을 담당하는 신두철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장은 “각 도서관마다 위원회를 두고 자율적으로 결정하나, 이번 사건과 같은 논란이 불거졌을 때 위원회에서 관련 논의를 할지 말지를 정해둔 법적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정책기획단은 지난 15일 전국 공공 도서관에 한씨의 1심 실형 선고 결과를 안내했지만,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해당 도서관의 몫인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성범죄를 저지른 작가는 법원이 정한 죗값을 치르면 작품 활동을 아무런 제약없이 이어갈 수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취업제한 범위에 작가의 작품 활동은 포함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화계 내부 성폭력을 공론화한 작가 브장(필명)은 “가해자의 새로운 작품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을 보면서 피해자들이 위축될 수 있다. 하지만 성범죄로 처벌 받고도 계속 작가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자신의 신상을 출판사에만 공개하고 필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작품 활동을 막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16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작가가 성범죄자일 경우 과거 저작물과 미래 저작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제도 보완을 고민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단 여성가족부에 대안을 묻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성범죄자 저작물을 확인한 뒤 법 개정을 위한 공론화 작업을 해나가겠다. 출판·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저작물을 볼 때마다 계속 (고통이) 상기가 되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작가의 책과 그의 삶을 구분할 수 있는가

“그냥 작자 미상으로 출판하면 되지 않나요. 작품 자체가 좋으면 그걸 활용해야지요.”(작성자 jyhw****)

“성범죄자의 글을 자녀에게 읽히고 싶으신건가요.”(답글 작성자 gold****)

출판사와 서점, 도서관에 남은 성범죄 저자의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작가의 저작물과 작가 개인을 구분할 수 있는가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한겨레> 기사가 나간 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온라인 댓글이 일부 있었다. 브장 작가는 “작품이 팔릴수록 그의 활동 기반을 넓혀준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2018년 4월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경향신문>에 쓴 ‘고은의 시, 교과서 삭제를 반대한다’는 칼럼에서 “교과서에는 모범적인 저자와 글뿐 아니라 부끄러운 현실, 실패한 역사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김기덕 영화감독(2020년 사망)을 거론하며 “성폭력 가해자가 연출한 작품은 무조건 졸작 혹은 걸작인가. 교과서는 이를 논쟁적으로 제시하는 인식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예찬씨가 노랫말을 쓴 인기동요 ‘아기다람쥐 또미’를 이용한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한 한 제작사 관계자는 “성범죄 이력이 있는 저작권자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성범죄 연루 작가의 저작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큰 만큼 업체로서는 이에 대한 정보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이런 사실을 업체들에 알려주면 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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