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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할 말 다 하는 ‘원피스’ 효과

등록 :2020-10-24 09:10수정 :2020-10-2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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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승미
그래픽=김승미

[토요판] 여자의 사표

⑩ 사표, 그 이후

그가 캐주얼한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에 참석했을 때 멋지다고 생각했다. 17년 전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등원한 586 남성 의원을 비판하던 때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상황적합성(티피오·TPO)을 따지는 모습에 한숨이 날 뿐이었다.

그가 ‘김용균 작업복’을 입고 국정감사장에 앉아 눈시울을 붉힌 채 질의할 때는 같이 울컥했다. “(저는) 먼저 떠난 김용균 노동자와 나이가 비슷한데요. 오늘 김용균이 입었던, 김용균과 같은 노동자들이 입는 옷을 입고 왔습니다. 이 옷을 입은 노동자가 일대일로 사장님과 대등하게 대화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겁니다. 저는 오늘 국민께서 위임한 권한으로 수많은 발전소 노동자를 대신해서 찢어지는 마음으로 질의하겠습니다.” 버릴 말이 없었다.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그는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다. 그의 행보를 보면서, 단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덧씌워지는 이미지가 얼마나 불합리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더불어 논란이 귀찮거나 두려워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입을 옷 입고 할 말 하고 할 일 하는 그의 존재가 정말 감사하다.

국회의원과 상징성이나 대표성 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 일개 재취업 직장인인 나는 ‘소신 있는’ 행보가 낳을 피로가 두려워 그냥 평범하게 산다. 간단한 예로는, 노란색을 좋아하지만 직장에 노란색 옷을 입고 간 적은 거의 없다. 휴일 출근할 때만 해봤다. 흰색, 베이지색, 검은색, 가끔 푸른색 옷을 돌려가며 입는다.

불편한 순간들을 삼킨 적도 많다. 회사에 늘 존재하는 ‘블랙컨슈머’(고의적 악성 민원 고객) 대처 방안 회의를 할 때였다. 그 많은 ‘남성’ 블랙컨슈머에 대해서는 내용에 대해 말하면서, 유독 한 ‘여성’ 블랙컨슈머에 대해서 “그 여자는 왜 그래?” “그 미친×” 같은 표현이 회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남성의 행동은 ‘어떤 인간’의 행동으로 개별화되지만 나쁜 행동의 주체가 여성이 되면 ‘여성 일반의 행동’으로 보편화된다. 짜증이 치솟았지만 ‘지엽적인 문제 제기만 한다’, ‘프로불편러다’ 같은 평판이 신경 쓰여 말을 삼켰다.

그 전에 사건이 있었다. 코로나19 덕(?)에 팀 전체가 모이는 일은 극히 드물었지만 지난 추석 명절 전에 오랜만에 중간 간부 이상이 모여서 밥을 먹었다. 그 자리에서 “이번 명절에는 시댁에 안 가서 며느리만 신났다”, “덕분에 부부싸움은 안 하겠다”, “하루 이틀 가는 걸로 왜 그렇게 예민한지 모르겠다” 같은 말들이 농담처럼 오갔다. 명절에 평등하게 가사노동을 하고, 부부 양가의 집을 순서·횟수 동일하게 방문한다면 없을 갈등이 아닌가. 내 딴에는 웃자고 말했다. “이게 다 가부장제 때문이지, 며느리 때문이에요?” 결과는 그야말로 ‘갑분싸’였다.

그 전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계열사 직원을 거론하며 “우리 팀에 확진자가 나오면 나는 고개를 못 들 것 같아, 내가 관리를 못한 것 같아서”라는 말에 다들 동조하기에 “지금 상황에 확진이 꼭 그 사람 탓은 아니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가 역시 정적이 감돌았다.

입사 석달차. 아직 일도 서툰데 자꾸 이런저런 이견을 말하는 게 부담스럽다. 그 모든 일들이 사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스물아홉살이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어이’ 소리를 들음에도 불구하고 품격 있게 대응하며 입지를 굳혀가는 류 의원의 행보를 보며 다시 질문해 본다. 이 모든 문제들을 ‘사소하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이들은 누구인가 하고 말이다.

‘문제다’라고 생각하고도 제때 말하지 못하고 쌓아만 두다가 나는 마음의 병을 만들고 좋아하던 회사를 못 견디게 돼버렸던 것 같다. 쌓아둔 여러가지 중에는 직장 안에 분명 존재하던 ‘성차별’도 있다. 그것을 애써 사소한 것으로 규정하고 나의 ‘여성성’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았다.

지금, 이곳에서 나는 ‘계약직’이고, ‘여성’이고, ‘경력직’(외부인)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여러 ‘비주류 요인’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니라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발언하려고 한다. 경력 보유 여성으로서 소신 있게 일하고 발언하는 것. ‘사표 그 이후’ 신기루 같던 여유를 버리고 다시 택한 직장생활의 의미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리담 자유기고가 dorisleewall@gmail.com

※ ‘여자의 사표’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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