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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광장 열어젖힌 정신장애인들 “우리가 여기 있다!”

등록 :2019-10-25 04:59수정 :2019-10-2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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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제1회 ‘매드 프라이드 서울’

침묵 강요당한 이들의 좌절
병원과 집만 오가는 삶의 반복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받기도

세상을 향한 당당한 외침
어렵게 허가받은 광화문광장 행진
“해방감 느끼는 연대의 장 됐으면”
지난 21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한국 첫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조직위 구성원인 정신장애인, 시민활동가, 정신과 전문의·예술인 등이 26일 퍼레이드에서 사용할 장식품을 들고 사진 촬영에 응했다. 김명진 기자 littlprince@hani.co.kr
지난 21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한국 첫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조직위 구성원인 정신장애인, 시민활동가, 정신과 전문의·예술인 등이 26일 퍼레이드에서 사용할 장식품을 들고 사진 촬영에 응했다. 김명진 기자 littlprince@hani.co.kr

“경찰 말로는 광화문광장에서 하루 4건 이상 사건·사고가 발생한대요. 퍼레이드(행진)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할지 몰라요. 선생님들이 안전 대책에 대해 의견을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지난 10월21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세미나실에서 정신장애인 창작문화예술단체 안티카 심명진(34) 대표가 26일 열릴 ‘행사 안전 대책’을 논의하느라 분주했다. 이날 한자리에 모인 안티카 단원들, 시민활동가·정신과 전문의·예술인·변호사 등 10여명은 지난여름부터 한국 첫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를 준비한 조직위 구성원이다.

‘매드 프라이드’란 199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정신장애인과 지지자들이 모여 정신장애인들이 배제당하고 차별받는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대중운동이자 축제다. 정신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매드)를 당사자가 스스로 정체성을 규정하는 언어로 되찾고, 이러한 정체성에 자부심(프라이드)을 느끼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앞서 성소수자 비하 단어인 퀴어(Queer)를 당사자들이 받아들여 흔히 쓰이던 의미를 전복시킨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매드 프라이드는 유럽·미국 등 서구 사회를 거쳐 전 세계로 번지는 중이다. 올해 7월과 10월엔 멕시코와 인도에서도 첫 매드 프라이드가 열렸다.

■ 목소리를 내기까지 20년

“매드 프라이드 참여자 어깨에 노란 스티커를 부착하게 하면 어떨까요?”

21일 회의에 참여해 다른 사람들 의견을 경청하던 박목우(43)씨가 작은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문학가를 꿈꾸던 소녀는 방에만 갇혀 지내는 아버지를 치료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 스무 살 무렵, 조현병이 발병하면서 꿈도 소망도 모두 사라진 10년을 보냈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약을 먹고 긴 잠을 자는 삶이 반복되면서, 사람을 만날 수도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집 안에 갇혀 숨만 쉬는 존재였지만, 집 밖 세상이 늘 궁금했다. 2011년 신문 칼럼을 읽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버스’를 알게 된다. 당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35m 높이 크레인 위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 중이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러 가는 버스였다. 용기를 내어 홀로 희망버스를 탔다. 난생처음 본 사람들이 혼자 온 그를 챙겼다. 그렇게 함께 4m 높이의 조선소 담벼락을 넘었다. 처음으로 느낀 해방감이었다.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쌍용차, 콜트콜텍 노동자 집회 자리에 ‘연대하는 시민’으로 찾아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게도 앓고 있는 병을 드러내긴 어려웠다. 누군가 궁금해하면 우울증이라고만 했다. 우울함을 토로하는 사람은 많지만, 100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조현병을 비롯해 환청·망상으로 일상이 어려울 수 있는 마음의 병이 누구에게든 찾아든다고 여기는 경우는 드물다. 매드 프라이드 조직위 구성원인 장창현(37)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어떠한 마음의 병이든 적절한 공감과 위로의 말, 적절한 약물 활용을 통해 치료한다. 기본적인 접근 방식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리 원진녹색병원·느티나무의원·살림의원 등 의료기관 세 곳을 순회하며 진료를 한다. 아파도 병원을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니 진료실 문턱을 낮춰보려는 시도다. “매드 프라이드를 통해 정신장애인이 아주 별나거나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언제 어디서나 있는 존재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제1회 매드 프라이드 서울 포스터 자료: 매드 프라이드 조직위
제1회 매드 프라이드 서울 포스터 자료: 매드 프라이드 조직위

■ 저 자신에게 붙인 무능하다는 딱지

목우씨가 조현병 환자임을 ‘커밍아웃’한 건 2017년 정신장애인 등록을 마친 이후다. 정신장애인 등록 대상은 조현병·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등 법에서 규정한 병이 있다는 걸 진단받은 뒤 1년 이상 치료를 받아도 혼자 생활이 어려워 도움이 필요한 경우다. 심사를 거쳐 장애인 등록을 해야 사회적 지원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그런데 왜 20년 동안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았을까?

“환자이지만 정상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 정신장애인으로 공식적으로 규정되는 데 대해 거부감이 있어요. 내가 이상하고 비정상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 벽을 넘기가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장애인 등록을 하면서 사회가 저 같은 당사자에게 가하는 억압·폭력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난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잘까, 왜 이렇게 사고가 느릴까, 왜 자주 잊어버릴까’ (정상인 기준에 맞춰) 저 자신에게 무능하단 딱지를 붙이고 살았는데,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처음 하게 된 거예요.”

지난 21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세미나실에서 열린 매드 프라이드 조직위 회의에 참여한 안티카 단원 박목우(왼쪽에서 두번째)·김미현씨. 박현정 기자
지난 21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세미나실에서 열린 매드 프라이드 조직위 회의에 참여한 안티카 단원 박목우(왼쪽에서 두번째)·김미현씨. 박현정 기자

■ 광장에 모이는 걸 가로막는 시선들

2011년 당시엔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나, 심명진 대표도 목우씨처럼 희망버스 승객이었다. 희망버스 영상 기록에 참여하면서 알고 지낸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는 2012년 말 스스로 삶을 등진다. 2년 뒤 또 다른 친구를 떠나 보내면서 마음 아픔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7년, 미디어교육 강사로 활동하면서 서울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협력해 정신장애인 팟캐스트 제작을 도우며 단원들을 만나게 된다. 6개월간 수업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튼 사람들과 모임을 지속할 방법을 찾았다. 2018년 정신장애인 예술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안티카를 설립한 배경이다.

올해 들어 임세원 교수 살인 사건, 진주 임대아파트 참사가 이어지며 정신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기사가 쏟아졌다. 단원들이 위축되고 좌절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람들 시선을 바꾸는 일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서구 사회에서 대중운동으로 주목받은 매드 프라이드를 서울에서 열어보자는 데 뜻이 모였다.

매드 프라이드 준비 과정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어느 기관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으나 협약식을 6시간 앞두고 ‘정신장애인 활동은 지속 가능하지 않아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이 차별이냐는 항의 끝에 겨우 결정을 되돌렸다.

정신장애인들이 모일 ‘광장’을 여는 건 더욱 힘들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 광화문광장, 마로니에 공원 세 곳 모두 사용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왜 굳이 광장이냐?”는 질문만 돌아왔다. 위험할지 모르니 건물 안에서 행사를 열라는 권유도 거듭 이어졌다. 심 대표는 “안전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며 “어떻게든 광장에 나가 ‘우리가 여기 있다’ 알려주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공원 650㎡(약 197평)에 정신장애인 예술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는 20개 부스와 무대를 마련하게 됐다.

사람 하나하나 생각이 다 다르듯, 정신장애인 당사자 모두가 매드 프라이드를 반기는 건 아니다. 조직위 안팎에선 심각한 현실을 너무 가볍고 화려하게만 보여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경험

매드 프라이드의 핵심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이 함께 행진하며 ‘자유가 치료’임을 알리는 퍼레이드다. 조직위는 광화문광장 주위 6차선 중 1개 차선을 확보해 26일 낮 30분~2시까지 광장을 돌며 플래시몹과 공연을 할 예정이다. 뿌리 깊은 편견으로 인해 신원 노출을 걱정하는 당사자들이 많은 현실을 고려해 가면을 준비했다.

“여럿이 모여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갈 때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소중한 경험인 거죠. 우리를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보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의 해방과 사람들의 해방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해요. 함께 해방감을 느끼는 연대의 장이 되면 좋겠어요.”

목우씨가 조곤조곤 들려준 매드 프라이드의 의미다. 토요일인 26일엔 광화문광장으로 어김없이 수많은 사람이 나와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유독 작은 그의 목소리는 세상 밖으로 새어 나올 수 있을까. 그 결과가 무엇이든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슬로건을 내건 제1회 매드 프라이드 서울은 26일 정오 세종로공원에서 시작한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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