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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새끼 돼지 태워 죽인 공무원 트라우마, 국가는 책임을 외면했다

등록 :2019-02-20 05:00수정 :2019-02-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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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처분 트라우마 리포트] ③공무원 트라우마는 진행형
‘살처분 기억’ 17년 지나도 끔찍…“매년 인질범 전화처럼 피말라”
과로사 ‘유공자’ 신청에 ‘네 탓’…죽음에 비수 꽂은 정부

2011년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도 동부의 한 축산농가에서 삽차를 동원해 살아 있는 돼지를 땅에 파묻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1년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도 동부의 한 축산농가에서 삽차를 동원해 살아 있는 돼지를 땅에 파묻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AI)는 국가재난형 가축 전염병이다. 정부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병에 걸린 가축과 함께 주변의 멀쩡한 가축도 살처분한다. 2000년대 들어 살처분된 가축은 모두 9806만마리. 매년 544만마리 넘게 죽임을 당했다. 죽어야 하는 가축 건너편엔 죽여야 하는 사람이 있다. ‘살처분 노동자’들이다. 초기에 공무원을 동원했던 정부는 이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외주화한다. ‘대량 학살’의 경험은 살처분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기지만, 국가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해왔다. <한겨레>는 살처분에 5차례 이상 참여했던 노동자 38명(공무원 17명, 일용직 16명, 방역업체 소속 5명)을 만나 1명당 최소 2시간 이상 인터뷰했다. 살처분 노동자의 트라우마를 깊이 들여다보고 살처분 산업의 외주화, 구멍 난 국가방역 시스템, 그리고 대안을 4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털조차 없는 갓 태어난 새끼 돼지다. 강아지 같기도 하고, 소시지 같기도 하다고 했다. 그때는 이산화탄소(CO₂) 가스나 근육이완제로 안락사시키는 제도가 없었다. 파놓은 구덩이에 그대로 내던졌다. 구덩이에는 소독을 위해 생석회를 뿌려놨다. 주먹만한 새끼 돼지 수십마리가 생석회 위에서 꿈틀거렸다. 그러면 생석회는 발열했다. 200도 이상의 열을 뿜었다. 새끼 돼지는 더 격렬하게 꿈틀댔다. 2002년 53일 동안 전국을 할퀸 ‘2차 구제역’ 때다. 17년이 지났다. 그런데 박재영(가명·54)에겐 어제처럼 또렷하다. 새끼 돼지들이 화상을 입고 꽥꽥 소리 지르다 어느덧 꿈틀거림을 멈추던 모습이 떠오른다. “고 조막만한 걸 갖다가…. 새끼 그 조막만한 걸 마대에…. 그게 진짜 힘들었어요. 그 귀여운 새끼를 갖다가…. 구덩이를 파서 그냥 갖다 집어넣는데….”

박재영은 충북 ㄱ시 동물방역팀장이다. 어린 시절에는 목장 주인을 꿈꿨다. 농사짓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소를 좋아했다. 대학 축산과에 진학한 까닭이다. 그런 박재영이 25년 동안 시청 축산과에서 한 일은 생석회 밭에 살아 있는 새끼 돼지를 던져 넣고, 마대에 쑤셔 넣었다가 자루를 뚫고 나오는 닭을 몽둥이로 두드려 패고, 안 움직이려고 버티는 200㎏의 어미 돼지를 재래돈사 밖으로 억지로 끌어내고, 자기 죽음을 짐작하면서 슬피 우는 소의 몸에 죽음의 약물을 투여하는 일이었다.

박재영은 그중에서도 새끼 돼지의 죽음이 가장 힘겨웠다고 했다. 정부는 구제역 발생 농가 인근 3㎞ 이내 소와 돼지의 이동을 금지하고 예방적 살처분을 단행했다. 살처분이 지체되는 사이 이동제한에 걸린 돼지들이 새끼를 낳았다. “일주일에 한번씩 새끼가 나와요. 모돈이 10마리면 일주일 뒤 자돈이 100마리가 되는 거야. 원래는 3~4주 젖을 먹여서 다른 곳으로 출하해야 하는데, 이동제한 때문에 나갈 수가 없으니까 그걸 시청에서 사요. 사서는, 죽이는 거지.” 그걸 ‘자돈 수매’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기억이 나요. 생석회를 뿌렸는데 애들이 막….” 박재영은 말을 맺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1천마리 정도를 그렇게 죽였다. 박재영은 1997년 돼지 콜레라 때부터 2007년 조류 인플루엔자(에이아이·AI), 2010년 구제역, 2014년·2016년 에이아이 등을 거치면서 살처분에 투입됐다. 결핵과 브루셀라에 감염된 소와 사슴도 살처분했다. “내가 동물 기르려고 왔지 죽이려고 온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나한테 주어진 일이 그건데 어떡해요. 안 하면 누가 해. 안 하면 누가 하냐고. 발생했으면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지금 와서 울고 안 갈 수는 없는 거니까 이제 체념하고 가요. 그런데도 솔직히, 아직 농가 번호로 전화가 오면 가슴이 뜨끔뜨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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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살처분은 매뉴얼조차 없었다

살처분이 방역업체나 인력업체로 외주화한 2014년 이전까지 살처분 현장을 지킨 이들은 주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었다. 평소 지역 내 가축 질병 예방 업무 등을 하면서 축산을 장려하던 이들은 가축 전염병이 터지면 일상을 배반하고 가축을 죽였다.

무엇보다 2011년 이전까지 ‘체계 없는’ 살처분이 공무원들에게 씻기지 않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요즘은 정부 차원의 긴급행동지침(SOP)이 생기고 장비도 현대화됐지만, 초기엔 그저 “무조건 죽여라” 한마디 명령뿐이었다. “2006~2008년까지만 해도 그랬어요. 살처분 도구가 마대랑 막대기였다니까.” 전북 ㄴ시의 가축방역팀장 심용석(가명)이 말했다.

2002년 구제역 현장이 특히 처참했다. 양돈장에 들어가 방마다 문을 열고 돼지를 돈사 밖으로 내보냈다. 500~600m를 몰아 구덩이에 빠뜨렸다. 돼지가 구덩이로 들어가지 않으려 버둥대면 포클레인 날로 찍어 죽였다. “피바다”였다. 포클레인으로 꾹꾹 눌러 돼지들을 압사시켰다. “포클레인 날이 작두가 되는 거예요. 포클레인 기사가 ‘나 이거 더러워서 못하겠다’고 중간에 가버렸어요. 돈도 좋지만 미치겠는 거지.” 포클레인 기사가 도망간 그날, 경기 ㄷ시 가축방역팀장 최진태(가명)는 돼지 옆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잔 뒤 다시 돼지를 죽여야 했다.

지난달 29일 올해 첫 구제역 확진 농가인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오산리 젖소농장 입구에 출입 금지 안내문 팻말이 세워져 있다. 안성/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지난달 29일 올해 첫 구제역 확진 농가인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오산리 젖소농장 입구에 출입 금지 안내문 팻말이 세워져 있다. 안성/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2010년께 약물을 이용한 안락사가 도입됐다. 하지만 현장에서 안락사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지금은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안락사시키지만, 당시엔 주로 근육이완제를 사용했다. 영하 15도의 엄청난 추위 앞에 약물은 무용지물이었다. “주사기를 빼는 순간 약이 얼어버리더라고요. 결국 약물을 못 쓰고 다시 포클레인으로 생매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충남 ㄹ시 가축방역팀장 배용재(가명)가 말했다. ‘끄아악’ 돼지 300~400마리의 울음소리가 비명처럼 들렸다가 흙으로 덮으면 조용해졌다. 밤이 되면 흙 속에 묻힌 돼지 몸에서 올라온 열기로 일대가 물안개처럼 뿌옇게 변했다. 그러면 마치 세상이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공무원들은 살처분의 그날을 시간 단위까지 정확히 기억했다. 2008년 4월1일 퇴근 직전인 오후 5시50분, 전화벨이 울렸다. 전북 김제의 최대 규모 농장에서 닭 3천마리가 급사했다고 했다. 심용석은 “만우절 거짓말인 줄 알았다”고 했다. 심용석은 닭을 꺼낼 때 느낀 온기가 지금도 기억난다. “닭 체온이 38도 정도로 사람보다 높아서 따뜻해요. 산란계는 케이지 아래로 손을 넣어서 다리를 잡고 빼는데, 입구가 좁으니 닭 날개가 걸려서 꺾여. ‘두두둑’ 날개가 찢기는 느낌이 들죠.”

살아 있는 닭을 마대에 넣으면 닭이 압사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리와 냄새로 느껴졌다. “사람으로 치면 아파서 울듯이 ‘아아아’ 소리를 내는 것 같아요. 꺼내면 냄새가 엄청나죠. 압사해서 내장도 나오고 똥도 싸고 그러니까요.” 전북 ㅁ시 공무원 이재철(가명)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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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생명을 빼앗는 일은 공무원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공무원 등 268명을 대상으로 한 ‘가축매몰(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6%가 △기억의 회피 △부정적 감정 상태 △분노 폭발 △수면 장애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사 증상을 보였다. 우울 점수도 평균 14.99점(경우울증 10~15점)으로 높았는데, 23.1%는 중우울증(24~63점)을 앓고 있었다.

살처분의 기억은 일상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4살 아이를 둔 충남의 수의직 공무원 이아영(가명)은 아이를 볼 때마다 어미와 함께 죽어간 새끼 동물들이 떠오른다. 2005년 수의직 공무원이 된 첫해 소 살처분 현장에 투입됐다. 어미가 양성이면 송아지도 감염 의심이 있어 함께 죽여야 했다. 병아리와 닭, 오리를 살처분한 뒤엔 며칠을 ‘삐약삐약’ 환청에 시달렸다.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혼잣말이 늘었다. “오리 부화장이 있는데 에이아이 때문에 해마다 알과 병아리를 묻었어요. 병아리는 그냥 차에다 실어서 통에 붓는데, 계란과 병아리가 섞이잖아요. 액상이 출렁출렁해서 병아리와 섞이는 모습이….”

전남 ㅂ시 축산직 공무원 윤현태(가명·54)는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소가 있다. 2005년 한 농장에서 소 54마리가 브루셀라 양성 판정을 받았다. 수의사가 소꼬리 밑 혈관에 주사를 놓으면 소는 보통 30초도 안 돼 푹 쓰러진다. 그런데 4분을 버틴 소가 있었다. “한달 정도 된 송아지가 어미 소를 따라 나오더라고요. 수의사가 어미 소에게 주사를 놓는데 송아지가 어미 젖을 계속 빨고 있어. 그랬더니 30초가 지났는데도 어미 소가 안 쓰러지고 계속 서 있는 거예요. 4분 정도 지나고 송아지가 젖을 먹을 만큼 먹고 입을 떼니까 그제야 어미 소가 푹 쓰러지더라고.” 윤현태는 눈물을 흘렸다. 스트레스를 달래주는 건 담배였다. 살처분 뒤 담배는 하루 두갑으로 늘었다.

“무뎌졌다”고 말하는 공무원들도 기억을 되짚으면 말을 더듬거나 표정을 찡그렸다. 포클레인 소리를 들으면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다는 배용재는 이렇게 말했다. “몸에 살기가 붙고 내 눈깔이 바뀌었어요. 어느 날은 새벽 3시에 집에 들어가 아내에게 ‘어디든 가자, 나 못 하겠다. 짐 싸서 도망가자’고 했죠. 지금도 살처분을 생각하면 돼지 울음소리, 고기 썩는 냄새가 함께 떠오릅니다.”

“성격이 다혈질로 변해버렸어요. 술을 많이 먹은 날은 제가 눈도 안 뜨고 ‘빨리 죽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해요. 인접 시·군 5곳의 팀장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똑같았어요.”(최진태)

공무원들은 학살에 참여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축산직이고 내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농민들을 잘살게 하는 것인데, 축산 진흥이 아니라 축산 말살을 하고 있는 거죠.”(심용석)

상당수 공무원이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못한 채 지금도 살처분 현장에 나간다. 2014년 이후 일반직 공무원을 살처분에 동원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지만, 방역 업무를 담당하는 축산직·수의직 공무원들은 여전히 살처분 업무를 맡고 있다. 전염병이 터지면 축산직·수의직 공무원은 ‘매몰처리반’에 소속돼 살처분 계획을 세우고 매몰지 현장 지도 등에 나선다. “방역업체로 살처분 작업이 외주화되면서 용역을 많이 쓰는데, 용역이 대부분 외국인이라 우리가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 몰라요. 지휘하면서 같이 꺼내고 이동하고 나르고 함께 일해야지 관에서 나왔다고 뒷짐 지고 있을 수 있나요.” 충북 지역의 수의사 장병기가 말했다.

2016년 12월 경기도의 한 축산직 공무원이 산란계 농장에서 살처분 작업을 하던 중 방역복을 입고 불을 쬐며 쉬고 있다. 살처분 노동자 제공
2016년 12월 경기도의 한 축산직 공무원이 산란계 농장에서 살처분 작업을 하던 중 방역복을 입고 불을 쬐며 쉬고 있다. 살처분 노동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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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이란 이름으로 고통을 삼키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낙인이 두려워 또는 책임감에 눌려 고통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심리상담이 어떻게 들리냐면, 나 이상한 사람이니까 손 들어보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창 바쁠 때인데 나 일 못 하겠다 말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정신치료 받은 거 소문나면 ‘쟤 에이아이 하다가 정신 나갔대’ 이럴걸요?” 경기도 공중방역수의사 김준서(가명)의 말이다.

고된 인내는 이들의 마음을 앗아갔다. 이아영의 전임 팀장은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사람이 돌변해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밥 사달라”는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혼자 중얼대다 입을 닫는 일도 반복했다. 면역 질환이 생겨 온몸에 반점이 생기고 관절염까지 겹치면서 그는 지난해 면사무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조울증과 수면 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이 지나서다.

“농림부는 전염병 전파 차단을 위해 ‘빨리 죽이라’고 하고, 질병관리본부는 인체 감염을 막기 위해 ‘안전 수칙 지키라’고 하죠. 살처분 현장엔 이 두가지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너네가 알아서 하라’인데, 작업자들 스트레스는 신경 안 쓰죠.”(장병기)

매년 전염병은 반복되고 정부의 긴급행동지침은 정교해졌지만, 그 속에 살처분 참여자의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매뉴얼은 없다. 최근 지자체의 재량으로 이뤄지던 심리지원 사업이 2016년부터 행정안전부와 대한적십자사 간의 업무 협약에 따라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에서 전담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부는 2014년 1명에 그친 심리상담자 수가 2017년 2146명으로 늘었다고 평가했지만 현장 반응은 냉랭했다. <한겨레>와 인터뷰한 공무원 17명 가운데 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효성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가는 이들의 아픔을 치료하는 데 관심이 없다. “상담을 전문 병원에서 해주면 좋겠는데 가끔 트라우마 조사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와서 설문지만 돌려요. 그 결과가 우리에게 오지도 않습니다. 우리를 치료하기 위한 게 아니라 통계를 내기 위한 조사 같아요.”(심용석) “지난해 시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업무 스트레스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사가 ‘해답은 팀장님이 더 잘 알고 있으신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상담받아도 결국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해답은 없어요.”(이아영)

2011년 구제역으로 인해 공무원 6명이 숨졌다. 그해 2월 전국 공무원노동조합이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연 순직 공무원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2011년 구제역으로 인해 공무원 6명이 숨졌다. 그해 2월 전국 공무원노동조합이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연 순직 공무원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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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를 대라” 죽음마저 외면한 국가

공무원들은 그래서, 어떻게든 고통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그 결과 찾아온 비극은 유족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겼다.

경북 영천시 공무원 문종길(가명)은 2011년 2월 심장마비로 숨졌다. 청소행정 담당이었던 문종길은 2011년 살처분 현장과 구제역 이동통제초소 근무에 동원됐다. 낮에는 평소 업무를 하고 밤 11시30분에 살처분 현장으로 이동해 이튿날 저녁 6시30분까지 근무했다. 숨지기 전날, 문종길은 자정까지 일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구제역 조기 종식을 바라는 ‘시산제’(산악인들이 매년 연초에 지내는 산신제) 개최를 위해 산행을 하다 쓰러져 숨졌다. 유족들은 살처분 뒤 문종길이 잠을 자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문종길의 처남은 “온종일 돼지 비명이 들린다고 했다”며 “누나에겐 ‘내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냐’고 수시로 물었다. 평소보다 말이 줄었다”고 말했다.

문종길이 숨진 뒤 가정은 파괴됐다. 아버지가 6개월 만에 문종길을 따라갔고, 부인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가장 큰 상처는 정부로부터 받았다. 유족은 문종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국가보훈처는 단칼에 거절했다. “집에 운이 없어 그렇게 된 걸 왜 국가에 책임을 묻냐. 개인이 지고 가야 할 운이 다 돼서 그렇다. 유족이 염치가 없다.” 법정에서 보훈처 직원이 한 말은 칼이 되어 유족들의 가슴을 찔렀다.

2010년 돼지 구제역 살처분에 참여했다가 이듬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축협 직원 정수한(가명)의 유족 역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법정 다툼을 벌였다. 정수한의 평소 업무는 돼지 정액을 채취해 양돈 농장에 보급하는 일이었다. 동료들은 정수한을 ‘돼지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형님은 ‘돼지들은 사람처럼 대해줘야 한다’고 했어요. 돼지들에게 늘 ‘고맙다’ ‘고생했다’는 말을 했죠.” 그러던 그가 살처분에 동원돼 8일 동안 돼지 4만여마리를 죽였다. 자신의 마음과 삶의 괴리를 견딜 수 없었던 정수한은 1년 뒤 돼지한테 놨던 근육이완제를 자신에게 투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정수한의 죽음이 살처분과 무관하다고 항변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돼지를 좋아하던 사람이 그동안 돼지를 어떻게 먹었냐’ ‘살처분을 해도 그분만 자살했지 다른 사람은 자살했냐’고 따졌습니다. 재판정에서 싸운 기억밖에 나지 않아요.” 정수한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동료 박아무개씨의 말이다. 1년 넘는 공방 끝에 법원이 유족의 손을 들어줬지만, 싸움은 상처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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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겨울은 없다” 폭탄 안고 사는 사람들

“김성혜(가명)는 2000년에 와서 2004년에 갔고 하원석(가명)이 2007년에 와서 2009년에 갔고, 박지연(가명)이 2010년에 와서 2013년에 그만뒀고, 황택수(가명)가 2013년에 와서 2015년에 그만두고, 송연길(가명)이 2015년에 와서 2017년에 그만두고….”

심용석은 “수의직은 3년 내 퇴사율이 100%”라고 했다. 초과근무는 일상이었다. 윤현태는 △2017년 12월 150시간 △2018년 1월 252시간 △2018년 2월 159시간의 초과근무를 했다.

올겨울도 공무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치사율이 거의 100%인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유럽에서 유행하더니 지난해 8월 중국을 초토화하고 북한 인접 지역까지 퍼졌다. 백신이나 치료제도 없다. “이게 들어오면 2010~2011년 구제역 이상이 될 거예요. 폭탄이 터지는 거지 뭐.”(박재영)

정부는 매해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2018년까지는 5월)를 특별방역기간으로 정하고 24시간 가축방역상황실을 가동한다. 거점소독시설을 운영하는 등 비상체제로 전환되고 공무원들은 ‘초긴장 상태’가 된다. ㅅ시 축산방역팀장 서대균(가명)은 “‘내 인생에 겨울은 없다’고 축산과 직원들이 이야기한다”며 “겨울만 되면 당번 서며 초소 근무 하고 집에도 잘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살처분 그 자체보다 한시도 놓을 수 없는 긴장감이 더욱 “피를 말린다”고 입을 모았다. “의심 신고만 들어와도 스트레스가 치솟아요. 영화 보면 그런 거 있잖아요. 딸이 유괴됐는데 인질범 전화 기다리다가 막상 전화벨 울리면 얼른 받아야 하는데 겁나서 못 받겠는 그런 거…. 그거랑 똑같아요.”(심용석)

1월 현재까지 전국에서 39건의 H5 또는 H7 에이아이 항원이 검출됐지만 모두 저병원성으로 확진됐다. 조용한 겨울, 공무원들은 그 고요함에 짓눌린 채 하루하루 살고 있다.

[살처분 트라우마 리포트] 이전회 바로 가기

①나는 살처분 노동자입니다 https://goo.gl/AgNDR1

②살처분은 어떻게 외주화했나 https://goo.gl/kaRWP7

특별취재팀 황춘화 이유진 오연서 이정규 이주빈 장예지 전광준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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