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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포식자 많은 ‘저개발국 원조’ 성공의 비결은 주민 신뢰”

등록 :2015-12-31 18:42수정 :2015-12-3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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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서울여대 석좌교수.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기석 서울여대 석좌교수.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짬] 국경없는 교육가회 대표 김기석 석좌교수
아프리카 서부 내륙국인 부르키나파소를 내 집처럼 드나드는 이가 있다. 2년 전엔 이 나라의 주한 명예영사 칭호도 얻었다. 2013년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정년퇴임한 김기석 서울여대 석좌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2007년 국경없는 의사회를 본보기 삼아 제자들과 함께 비영리단체 ‘국경없는 교육가회’를 만들었다. 국외 교육원조를 표방한 국내 첫 엔지오다. 현역 시절보다 더 활기찬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 대표를 세밑인 지난 2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앞으로의 설계를 들어봤다.

2007년 첫 국외교육원조 엔지오 꾸려
2013년 정년뒤 연 10회 넘게 국외출장
부르키나파소 사례로 세종대왕문해상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선생 둘째사위
농촌지도자 훈련 경험·네트워크 ‘활용’
“한국교육 알리는 세계적 단체가 목표”

김 대표의 표정과 몸짓엔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2015년에만 열 차례 국외 출장을 다녔다. 새해 1월에도 인도네시아·타이에 이어 2월 미국 출장이 예정되어 있다. “시차 적응, 여독이란 말을 모르고 지내요. 하도 돌아다니니까 몸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아요. 국외 출장을 가면 (시차 적응 없이) 새벽 5시부터 일정을 소화합니다.”

국경없는 교육가회는 정부나 자치단체, 민간기업의 지원금을 토대로 저개발국 주민들의 빈곤 탈출을 돕고 있다. 먼저 읽고 쓸 수 있는 문해교육을 한 뒤, 이어 기술연수와 소액대출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유도한다. 6년 전부터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란 뜻을 가진 부르키나파소의 현지 단체인 비정규교육진흥협회를 통해 5개 마을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주민들에게 현지 부족어 교육을 하고 비누 만들기, 양계와 같은 기술 교육, 창업을 위한 경영교육 및 소액대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교육가회 소속 한국인 간사 2명이 파견돼 사업 내용을 모니터링한다. “지금껏 1천명 이상이 문해교육을 받았죠. 그중에는 문해 교사가 된 이들도 있어요.”

그는 지난 5년간 소액대출금 회수율이 95%에 이른다며 단체의 활동이 적잖은 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번에 50달러, 100달러씩 빌려주는 대출금이 현재 6만달러까지 쌓여 550명이 혜택을 입고 있단다.

“남성보다는 여성 교육에 초점을 맞춥니다. 여자들이 기술교육을 통해 돈벌이를 하게 되면서 집 안에서 목소리를 내게 되고 그 결과 집안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새해엔 연수원 건물을 세워 양돈·양계 등 농업기술 교육을 체계적으로 할 생각이다.

교육가회는 2014년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수상했다. 국제기구가 성공 사례로 공인한 것이다. 이 상은 한국 정부의 재정 후원으로 유네스코에서 주는데 한국 단체로는 처음 받았다.

교육가회는 아프리카 5개국에 이어 네팔, 인도네시아, 라오스로 활동 외연을 넓히고 있다. 2014년 세네갈에선 수학과 과학 학습역량 강화 사업을, 케냐에선 책 기증 사업을 펼쳤다. 지난해 4월엔 미국 뉴욕에 현지법인 등록도 마쳤다. 규모가 큰 미국의 공적 원조 자금을 받아내기 위해서다. 최근엔 라오스 쪽 지원을 위해 세계은행과 교섭을 벌이고 있다.

원조는 이어지고 있지만 아프리카 주민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 대표는 죽은 원조를 산 원조로 바꾸는 출발점은 ‘신뢰’라고 했다. “지난 50년 동안 아프리카에 1조달러가 흘러갔지요. 원조는 정글과 같아요. 포식자가 많습니다. 귀신같은 방법으로 빼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 주고 바보가 되기도 하지요.”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주민들의 자발적 호응도 얻기 힘들고, 결국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주민에게 약속한 것을 꼭 지키고 자주 현지를 찾아 주민들과 두터운 스킨십을 쌓은 게 신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가나안농군학교 개척자인 일가 김용기 선생의 둘째 사위다. 그는 아내 김찬란 서울여대 교수와 연애를 하던 1971년 농군학교에서 2주간 농촌지도자 교육을 받기도 했다. 농군학교의 농업기술 전수 경험과 네트워크는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부르키나파소 연수원의 기술교육도 농군학교에서 돕기로 했다.

“교수 시절 국제회의에 나가면 아프리카 쪽 교육가들이 ‘기대가 크다’고 먼저 인사하고 같이 일하자고 해요. 그런 압박이 지금의 활동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는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들이 한·중·일 3국 가운데 한국의 도움에 더 호의적이라고 했다. “한국은 식민 경험과 전쟁, 독재 등 3중의 고통을 이겨낸 나라입니다. 브랜드로서 가치가 있어요.”

김 대표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네오마르크시스트 교육학자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수 색채가 매우 강한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이질적인 존재였다. 임용 초기 일화를 들려줬다. “제가 미국의 저명한 진보 교육학자를 초청해 특강을 열었는데요. 그때 정원식 교수가 이를 문제 삼아 저를 가리키며 ‘김기석 쫓아내야 한다’고 언성을 높인 적도 있어요.” 정 교수는 문교부 장관 시절인 1990년 전교조 가입 교사 1500여명을 강제해직시킨 인물이다. 김 대표는 ‘교육학자들이 현실 교육 문제 앞에서 너무 존재감이 없는 것 같다’는 말에 “목탁 구실을 못한 게 사실이다. 너무 자기 전공에 함몰되어 있다”고 답했다.

한국은 이제 원조를 주는 국가다. 김 대표는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무상원조는 외교부가, 융자는 수출입은행이 관할합니다. 두 개가 떨어질 수 없는 사안인데 분리되어 있어 어려움이 있지요.” 또 하나는 민간을 통한 지원 몫을 늘리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국외원조의 평균 15%가 민간 엔지오에 할당됩니다. 그래야 원조가 삽니다. 한국은 5%에 불과합니다. 정부 통제가 강력한 편이죠.”

목표를 물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프랑스에서 출범했지만 지금은 미국 의사회가 중심입니다. 우리 단체도 시작은 한국에서 했지만 범세계적 조직으로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 교육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다른 나라에 전파하려 합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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