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일본을 통일한 히데요시는 우물안 개구리였으며 일본역사 최초의 외국침략인 조선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자신의 부하들이 가문을 배반하고 자신의 아들에게 창칼을 들이대는 치욕을 당하며 가문조차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3살짜리 어린애인 노부나가의 손자를 앞세워 정권을 잡았지만 자신의 어린 아들은 결국 나중에 이에야스에게 죽임을 당하니 역사의 냉혹함을 보여줍니다. 히데요시와 그의 부하들이 31만명이라는 압도적인 직업군인과 조종이라는 신무기를 가지고도 군사가 단지 수천명에 불과하던 조선을 정복하지 못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그 이유를 잘 살펴보면 알 수도 있습니다. 우선 이순신 장군이 조선수군을 이끌고 제해권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조선의 바다를 제집 드나들듯 했을 히데요시 군대에게 정복당하고 말았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둘째는 일본은 전세가 불리하면 삶을 전제로 항복하는 관습이 있어 히데요시는 한양을 함락시키면 선조임금이 항복할 것으로 믿었고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몽진한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치 못해서 전쟁이 길어지자 당황했습니다. 셋째는 자기들끼리의 땅뺏기 싸움에 열중했던 우물안 개구리 일본에서는 농민이나 여자들은 전쟁에 전혀 참여치 않는 무사들만의 전쟁이었지만 외침에 시달리던 조선의 백성들은 내땅, 내나라와 전쟁에 나간 내남편과 자식을 지킨다는 신념이 뚜렸하여 평소에 농사짓던 농민들과 심지어 여자들까지 전쟁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넷째는 조선사람들이 의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다섯째는 일본을 통일한 히데요시가 과대망상에 빠져 자신의 직속부하들처럼 타지역의 모든 영주들과 장수들이 자신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할 것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채 히데요시는 당시 일본의 이웃동네 정벌하듯 한달이면 조선을 정벌한다고 큰소리치며 부하들을 닥달하며 배를 만들었는데 당시 일본에는 왜구들 외에는 수군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치명적이어서 급조된 배가 조선수군에게 당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불과 3주만에 한양을 점령하고 불태운 히데요시군이 선조의 몽진사실을 알고 허탈해하며 북진했을 때 히데요시군은 곳곳에서 의병들에게 습격당하고 고립됩니다. 더구나 제1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히데요시의 국서까지 위조하여 명나라와의 화친교섭을 하며 사사건건 히데요시의 직속부하인 가토 기요마사와 대립했습니다. 명나라에 평양성을 빼앗기고 의병들에게 패배하며 자존심을 구긴 히데요시군이 분풀이로 공격한 행주산성 싸움에서는 불과 3000명도 안되는 조선군에게 3만명의 군사가 벌떼처럼 공격했지만 남녀노소 합동의 결사항전에 1만여명이 죽고 행주치마의 신화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임진왜란은 전쟁을 직업으로 삼고 신식무기로 무장한 31만명의 왜적들이 군사조차 변변치 못한 조선에 패배한 전쟁입니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포로로 잡혀가며 조선의 산천초목이 초토화되며 피로 붉게 물들었지만 히데요시가 죽자 왜적들은 허겁지겁 철수합니다. 그러나 노량 앞바다의 길목을 지키며 "왜적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수 없다"는 이순신 장군에게 대부분 수장되고 맙니다. 31만명의 왜적들 중에 살아서 돌아간 자가 얼마나 됩니까? 더구나 일본열도의 지배자인 히데요시는 조선과의 전쟁 후유증으로 죽으며 아들에 손자까지 죽임을 당하여 가문까지 멸절되며 히데요시의 나라는 멸망했던 것입니다. 일본의 히데요시가 동시대에 조선의 이순신 장군을 만난 것은 그의 불행이었고 300년후 일본의 불행이었습니다. 일본은 임진왜란의 해전에서 연전연패한 원인을 조선수군의 월등한 사거리를 가진 화포때문이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태평양전쟁에서 무사시와 야마토 등 거포를 장착한 거대전함을 만듭니다. 근접전을 허용치 않고 우선 멀리서 화포로 공격하는 이순신 장군의 전술을 본딴 것인데 그때 는 이미 해전이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비행기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기본 사실을 알지 못한 어처구니 없는 일로써 임진왜란에서 연전연승한 이순신 장군이 300년후 아시아를 침략한 일본해군을 패망하게 하고 제해권을 상실한 일본을 멸망으로 이끌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입니다. 저는 일본이 해양국가라는 사실을 인정치 않습니다. 일본은 이순신 장군에게 패배한 후 바다문을 걸어 잠그고 쇄국정책에 돌입했습니다. 더구나 배를 가진 선주는 일본인들이 지금도 천시하는 천민에 속했으니 일본은 결코 해양국가가 아니며 태평양전쟁에서 배를 건조한 경험으로 일본이 한때 조선강국으로 성장했으나 지금은 우리나라와 중국에도 밀려난 것을 보면 더욱 자명합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일본의 평가는 확고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나라 일각에서는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가끔있는데 이순신 장군은 일본이 해양국가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인들에게 바다의 무서움을 톡톡히 가르쳐주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조선은 1910년이 아니라 그 이전에 수시로 배를 타고 침략한 일본에게 정복당했을 것입니다. (일본에 해군이 생긴 것은 메이지 유신이후)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파한 도고 헤이하치로가 군신으로 삼은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고 그가 세운 비석이 아직도 남아있어 방치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사실이 밝혀지자 일본인들은 "일본은 적에게도 배운다"며 합리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데라우치가 한일병탄 조약을 강제로 맺은 후 "지하의 히데요시와 고니시, 가토 등이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듯이 임진왜란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100년 전 조선을 침탈한 단초를 제공한 전쟁입니다. 우리는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임진왜란을 치욕의 전쟁으로 알지만 조선이 망하고 100년이 지난 지금 좀 더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어 이글을 씁니다. 1000회가 넘는 외침에서 한반도를 침략하고 무사히 살아 돌아간 자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하면 안됩니다. 일본은 힘이 약하면 화평사절인 조선통신사를 받아들인 것처럼 웃으며 아부했지만 힘이 강하면 반드시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요즘 몹시도 흔들리는 일본이 또다시 우리에게 접근하지만 우리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친일청산을 방해하는 친일파들의 발호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발언에서 보듯이 반드시 후회하는 날이 또 다시 옵니다. 저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무명의 한겨레 블로거에 불과하지만 임진왜란과 히데요시와 이순신장군에 대한 생각들은 누구의 것을 모방한 것이 아닌 제개인의 견해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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