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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2 19:28 수정 : 2009.05.22 21:29

홍경표 전 교수

50돌 연세어학당 ‘산증인’ 홍경표 전 교수





22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앞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윷놀이, 팔씨름 대회 같은 민속놀이판이 열렸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노 교수의 눈에는 흐뭇한 미소가 퍼졌다.

그는 평생을 이곳,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쳐왔다. 삶의 분신과도 같은 한국어학당이 이날로 설립 50돌을 맞았다. 홍경표(74·사진) 전 교수는 지난 1959년 한국어학당이 설립 때부터 95년 정년퇴임 때까지 36년 6개월간 우리말을 가르쳐왔다. 지금까지 128개 나라 7만1400여명이 어학당을 거쳐갔고 해마다 6600여명이 공부를 하고 있다.

교수 시절 그는 우리말을 보다 쉽게 가르치기 위해 한국어 교재도 여러 권 펴냈다. 79년 국내 한국어 교육기관에서는 최초로 펴낸 <한국어 독본>은 한국어 읽기 교재의 표준판본이 됐다. 그는 또 임호빈, 장숙인 등 동료 교수와 함께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을 펴내기도 했다.

“미국에서 온 선교사 24명이 한국어학당 최초의 학생이었어요. 지금은 우리 문화를 공부하러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 75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니 참 세상이 많이 변했죠.”

초창기에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도 컸다. “그때야 다양성, 상대주의 같은 개념이 없었잖아요. 미국인들이 의자에 푹 퍼져 앉아서 수업을 들으면, 항상 똑바른 자세로 공부하는 학생만 봐왔던 우리 선생님들은 ‘저들이 우리를 무시한다’고 느껴 큰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36년 넘게 우리말을 가르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제자 외국인’들이 자기네 나라에서 우리말을 보급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영국에서 한국어학당 졸업생인 제임슨 그레이슨를 만났어요. 마침 영국 방송에서 ‘88 서울 올림픽’을 중계하고 있었는데 계속 ‘세울 올림픽’이라고 발음을 하더라구요. 그러자 그레이슨 박사가 곧장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발음을 바로 잡는 겁니다. 흐뭇했죠.”

그는 “우리말을 공부하면서 외국인들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며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데는 언어 이해가 필수적이어서 앞으로도 한글 보급을 위한 교재 발간 등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연세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