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타부의식은 미네르바라는 인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과 그들이 지지하는 권력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미네르바는 글쓰기로 MB 정부의 경제실정을 지적했다. 그는 그들의 성역을 침범했다. 그의 글에는 현실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었다. 그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미아리 고개 운명철학자가 아니다. 미네르바의 동기는 순수했다. 그는 사회혼란을 조장하거나 반정부활동을 할 의도가 없었다. 그가 경제현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경제에 관해서 독학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 나름대로 한국경제 읽기를 시작했고, 그 읽기를 글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미네르바의 글에는 허점도 있었고,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한국경제 현실이 전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경제전문가 집단의 허를 찌를 만큼 신선하고 정확한 경제 진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진단은 MB 정부의 무능함을 드러냈고, 그들의 자존심을 마냥 긁어댔다. 그들의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MB 정부가 약속하던 경제부흥이 허상임을 밝히는 데 미네르바의 글쓰기는 폭발적인 효과를 낳았다. 이것이 MB 정부 뿐 아니라 조선일보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MB 정부의 반응은 객관적으로 정해놓은 국가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밀고나가는 정서법에 따른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미네르바에게 분풀이를 한 것이다. 그가 MB 정부의 성역을 넘나들었고, 그들의 타부를 범했기 때문이다. MB정부나 그들과 한 통속인 조선일보는 미네르바의 타부 깨기를 못견뎌한 것이다. 조선일보 사이트를 가보라. 머리기사가 MB와 각료가 지하벙커에 모여 하는 경제회의에 관한 것이다. 지하벙커에 굳이 모여서 경제회의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미네르바는 그들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침범하여 그들에 대한 환상과 타부를 깨어버린 것이다. 조선일보가 끝까지 쫀쫀하게 미네르바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들은 미네르바를 감옥까지라도 쫓아갈 태세이다. 그래야 직성이 풀릴 모양이다. 그들의 타부의식이 잔인하고 소름끼친다. 우리가 미네르바를 지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인터넷 글쓰기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타부에 도전했다. 현대판 봉건제도인 학벌의 성역을 들락거렸다. MB 정권이 정해놓은 신성한 타부에 도전했다. 그의 글쓰기는 우상숭배에 찌들려 사는 대중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인기도는 밤의 대통령을 신주처럼 모시고 사는 조선일보에게조차 불안감을 안겨줬다. 미네르바의 글쓰기는 조선일보의 타부의식에 위협적이었다. 더 많은 미네르바들이 출현해야 한다. 마침내 미네르바를 괴롭히고 그의 젊음을 구금하려 했던 우상들을 허물어뜨려야 한다. 인터넷 글쓰기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미네르바들은 타부의식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무정부주의자와 같다. 그들에게는 국적도 없고 성역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혼란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적 타부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사는 길을 모색한다. 그들에게는 좌우 피 가름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유를 따라 이동한다. 그것이 그들의 타부 깨기, 우상타파의 조건이다. 그들은 언제나 타부와 투쟁하기에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허상이나 허구가 아니라 실상이고 사실이다. 미네르바가 자신을 정의하듯이 그들은 극사실주의자들이다. 이는 조선일보가 두려워하는 것이고 미네르바를 구금시키려고 난리치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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