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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그린벨트는 일방통행이다/임혜지

등록 :2008-09-23 17:40수정 :2008-09-2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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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9년, 1898년, 2004년도 칼스루에 지도
1779년, 1898년, 2004년도 칼스루에 지도
[임혜지 건축칼럼] 독일 칼스루에와 한국의 그린벨트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칼스루에(Karlsruhe)는 세계 모든 대학의 도시설계학 교재에 나오는 전형적인 계획도시다. 유럽의 도시 치고는 역사가 짧다. 300살도 안되는 칼스루에의 건축사를 들여다보면 18세기 이후 유럽의 변천사를 읽을 수 있다. 국가의 절대권력 속에서 부상하는 시민계급, 그에 따르는 사유재산과 자본주의의 발전상이 옛지도에 그려진 ‘사유지의 경계선’을 통해 나타난다.

옛지도를 시대별로 펼쳐놓고 비교해 봤다. 도심에 있는 주택의 대지들이 하나같이 ‘최초의 경계선’을 유지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막강한 권력에 의해 사유지의 경계선이 재조정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지난 300여년의 역사 속에서 칼스루에 시민의 토지재산권이 굳건히 지켜져왔다는 증거이다.

도시를 만들때 영주가 인적 없는 숲에다 말뚝을 막고 터를 닦았으므로 칼스루에의 땅은 처음엔 전부 국유지였다. 영주는 백성들을 새 도시로 끌어모으기 위해 적극적인 이주정책을 펼쳤다. 집 지을 돈이 있는 사람에겐 시민권을 부여하고 대지를 무상으로 지급했다. 이주민들의 수가 늘어 안정적인 도시 운영이 이뤄진 뒤엔, 토지를 공정한 가격에 팔았지만 돈벌이 목적은 아니었다.

칼스루에 주택 면적도 ‘300년 역사’ 지켜내


그 당시의 도시민들은 텃밭에서 농사를 지어 먹었기 때문에 국가에선 간간이 국유지를 채마밭 용으로 값싸게 풀었다. 인구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이 채마밭은 건설부지로 용도가 변경되어 거주지로 바뀌었다. 이때 애초에 채마밭 용으로 분양된 대지는 집을 짓기에 불편한 형태였으므로 이를 보완하느라고 이웃 간에 송사가 끊이질 않았다. 소송이 벌어졌지만, 국가가 환수한뒤 집을 짓기 좋은 형태로 분할하여 재분양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한번 사유지가 된 땅은,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라도 국가가 마음대로 건드리지 못했다.

유럽 사회가 진보적이어서 그랬던 것은 결코 아니다. 당시 유럽은 절대 왕정을 꿈꾸는 군주들이 군림하던 시대였고, 농노가 존재하고 구·신교 사이에도 종교의 자유가 없었다. 영주의 종교가 곧 나라의 종교였으므로, 종교가 다른 영주가 권좌에 오르면 백성들도 종교를 바꾸거나 다른 나라로 피해가야 했다. 그렇게 종교적이면서도 하루 아침에 전국적으로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할 수 있었을만큼 국가의 권세가 등등했고, 독재가 일반화된 시대였다. (1803년의 제국의회에서 결정한 교회재산의 세속화, 즉 국유화는 독일의 영주들이 나폴레옹과 타협하기 위해서 일정분의 독일 영토를 프랑스에 넘겨주고 그 손해를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으로 보상받자는 취지였다.)

독재의 시대에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상공업으로 점차 부상하는 시민계급의 사유재산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토록 지켜왔던 사유지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현상이 뒤늦게 일어났다. 2차대전 이후 독일 경제가 활발하던 1960-70년대에 칼스루에 도심의 주택지들이 통합되고, 그 자리에 대형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공권력의 힘이 아니라, 자발성을 띈 ‘돈의 힘’으로 일어난 일이다. 절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땅을 지켜낸 것도, 그리고 훗날 그 땅을 포기한 것도 결국은 사유재산을 지키거나 불리려는 개인의 의지로 귀결된다. 욕심이라기보다는 살아남으려는 본능, 그리고 패배에 대한 두려움의 의지가 모이면 공권력이나 공익의 호소력보다 더 센 힘을 갖는다.

사유화 된 땅은 다시 환수되기 어려워

요즘 독일에선 홍수의 피해를 막기 위해 라인강의 재자연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라 점점 강도가 세지는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선 상류의 둑을 허물고 범람지를 만들어 물의 위력을 줄이는 것이 어떤 댐공사보다도 경제적이라는 계산에 따른 정책이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옛날에 상류에 둑을 쌓으면서 강 가까이에 새로 형성된 거주지들이다. 일단 사유재산이 된 후에는 범람지 조성을 위해서 다시 빼앗기 어렵다. 땅이란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사가 얽힌 추억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뮌헨에선 이자 강의 재자연화 공사가 한창이다. 강변에 다시 범람지를 만들어 하류의 홍수를 예방함과 동시에 강의 생태계를 보전하고 시민들의 휴양지를 조성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미 완성된 곳에 가보면 대도시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지, 어째서 뮌헨이 독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이자 강변의 재자연화 공사가 끝난 구역
이자 강변의 재자연화 공사가 끝난 구역

하지만 이와같이 유익한 공사도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변에 주택가가 바싹 들어선 구역에선 둑을 허무는 공사를 벌일 수 없다. 그래서 이자 강은 여느 대도시에나 흔히 있는, 콘크리트 벽에 갇혀 흐르는 거대한 도랑일 뿐이다. 강물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듯이, 공공의 토지가 사유로 넘어간 이후엔 국가와 국민이 모두 공감하는 일이라도 돌이킬 수는 없다.

인류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 그린벨트가 도입된 일은 대단히 특별한 사건이다. 먹고 살기 바빴던 개발주의 시대에 장기적 ‘환경보전의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것도 특이한 일이거니와, 명색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근세에 사유지를 뭉터기로 묶어버리는 일이 가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통했을 것이다.

아무리 매력적인 대도시라도 사람이 숨을 쉴 수 없고, 쉴 곳이 없다면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국토 중간중간에 건드릴 수 없는 녹지를 끼워넣음으로써 인접한 도시들이 자라서 맞붙어버리는 현상을 막는 것은, 국가의 대사에 속한다. 환경을 뒷전으로 하고 개발일색으로 달려온 우리의 대도시들이 아직도 사람이 살 만한 이유는, 그나마 그린벨트가 있어서 공기를 정화하고 쉼터를 제공한 덕분이다. 그린벨트가 사이에 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많은 도시들이 맞붙어버렸을 것이고, 공기를 정화하는 필터가 사라진 거대한 수도권의 대기오염도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나무 없어 그린벨트 구실 못한다면 나무 심는게 국가 역할

엄청난 독재의 대가를 치르고 남은 산물이라고 해도, 아니 엄청난 독재의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더더욱 그린벨트의 진가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올바른 국민이 할 일이다. 그린벨트를 한 뼘이라도 훼손한 역대의 대통령들에게 ‘그 댓가로 얻은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물어야 한다. 멀쩡하다가도 서울에만 왔다하면 눈이 따갑고 목이 아프다는 사람들이 늘고, 아토피와 천식을 앓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녹지를 더 많이 만들지 못할망정, 되레 축소하는 정권에겐 국민의 건강권을 담보로 과연 어떤 경제발전을 이루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린벨트에 나무가 없어서 제 구실을 못 한다면 나무를 심어서 제 구실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의사가 환부를 고칠 생각은 않고 잘라낼 궁리만 한다면 장기매매의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훗날 서울에서 올림픽을 유치하려 할 때, 아무리 근사한 경기장을 지어놓은들 공기가 나쁘면 국제적으로 망신만 당할 것이다. ‘우리 도시에선 올림픽 선수들이 마스크를 쓰고 뛸 필요가 없다’고 선전할 경쟁국의 도시들은, 일찌감치 도심의 금싸라기 땅에 공원을 조성해 악착같이 지켜냄으로써 대기오염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한 도시들이다. 그때 가서는 우리나라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도시의 허파인 그린벨트를 다시는 만들 수 없다.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고수하는 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다른 나라 선수들이 잠시 와서 뛰는 것도 꺼릴만큼 심각한 오염 속에서 자식을 낳아 기르고 건강을 위해 조깅을 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날,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것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습관처럼 견뎌온 대기오염은 필연적인 운명이 아니라 국가의 실책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뒤늦게 원망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린벨트는 일방통행이기 때문이다.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에 도시에서 삶의 질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하향선을 그을 뿐이다.


글을 쓴 임혜지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10대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 칼스루에공과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뮌헨에서 살고 있는 임씨는 프리랜서로 독일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실측조사와 발굴연구를 하고 있다. 2003년에는 <프리드리히 바이브렌너 시대의 칼스루에 주택>을 독일 유명출판사에서 펴냈고, 그동안 <인터넷한겨레> 등에 써온 글을 묶어 2008년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한겨레출판)을 펴냈다. 이 글은 임씨가 자신의 블로그(www.hanamana.de/hana) 에도 실었다. 임씨의 블로그에는 좀더 다양한 글과 이 글에서 다룬 내용에 대한 출처가 기록돼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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