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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물 조사 실습 현장을 찾은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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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인상 깊은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가족들에게 미주알고주알 할 말이 많았다. 특히 우리가 알아낸 성과에 대해서 나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내가 몸이 작고 가벼운 덕분에 아슬아슬한 곳까지 타고 올라가서 조사해 얻은 성과에 대해 자랑을 하는데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고 나면 어떡하려고 거기까지 올라가? 사람이 그렇게 어리석어?” 자랑하다가 뻘쭘해진 나는 금방 토라졌다. 얼마 전에 한비야 님이 구호활동가가 봉사하다가 죽지 그럼 사우나에게 죽느냐고 말하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서 나는 토라진 김에 안 해도 될 소리를 했다. “건축사 학자가 건물 조사하다가 죽지 그럼 사우나에서 죽어?” 남편은 기가 막힌지 이번에는 눈까지 부라렸다. “당신이 죽는 게 문제가 아니야. 그까짓 헛간 하나 조사하다가 불구가 되면 내가 당신 돌봐야 하는 게 한심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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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물 조사 실습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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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함께 고건축물 실측 조사에 나선 독일 대학의 건축학과 학생들. 실측 작업에는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직접 만지고, 재고, 기록하는 과정이 필수로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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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은 인간의 생활 속에 존재하므로, 영원히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는 없다. 또한 꼭 원형으로 보존되어야만 일류는 아니다. 역사의 흔적을 담는 증인으로서 흉터와 치료는 피치못할 일이기도 하고, 후세에 역사의 진행과정을 보여주는 훈장이기도 하다. 박물관의 박제가 아니라 사람이 사용하는 진정한 건물은 늘 부지런히 보수하고 수리해주어야만 길이 존재한다. 이때 어떻게 보수하느냐에 따라 건물이 본래의 가치를 유지하기도 하고 퇴락하기도 한다. 보수하는 손길이 뛰어나서 본래의 가치를 오히려 높혀주는 일도 문화재계에선 드물지 않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한 우물을 파온 한옥 전문가들은 우리의 숭례문이 일류 건축물로 복원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 전문가가 실력 발휘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들을 조급하게 닥달하면 조악한 모조품밖에 나올 것이 없다. 국민들이 이들을 믿고,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며 느긋이 기다려주는 한 정치권이나 행정부에서도 전시효과만을 노려 실적 위주로 덜렁대지 못한다. 지금 실수하면 숭례문은 영원히 그르치는 것이다. 숭례문은 전소되지 않았다. 무궁무진한 자료들이 아직 현장에 남아 있고, 까맣게 타버린 숯덩이 하나만 해도 많은 것을 알려줄 소중한 증인이다. 가능한 한 현장을 보존해서 전문가들에게 넘겨주어 최선의 복원을 도모하는 한편 조사와 기록을 통해 후대에 정보를 남겨야한다. 재능이 평범한 내가 건축사에 소수점만한 업적을 남겼다면 그것은 철거현장에서 사소한 것들을 꼼꼼하게 기록한 결과이다. 그것은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문화재의 철거나 파괴를 두고 기회 운운하는 자체가 불경스럽지만, 해체된 상태의 디테일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것은 보존된 상태였을 때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다양하고 강도가 높다. 내가 건축사를 연구하며 늘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특별한 일만 기록할 뿐 당연한 일은 기록을 생략한다. 후세들은 옛날에 당연했던 일들이 가장 절실하게 궁금한데, 또한 그것이 역사의 의미일진대 100년만 지나도 후대의 인간은 그를 알 길이 없다. 연구하다 보면 가끔 그 당시의 당연하고 일상적인 사실들을 제 흥에 겨워 구구절절 늘어놓은 옛 글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그런 글을 남긴 사람들은 대부분 실속 없이 한 우물만 파느라고 당대에는 그다지 부각되지 못한 학자들이다. 그러나 그런 글들을 발견하는 일은 연구의 횡재이고, 그런 사람들로 인해 인류의 문화는 계승되는 셈이다. 문화재의 주인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인간이다. 미래의 인간들이 어떤 능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어떤 일을 궁금해할지 현세의 우리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되도록 좋은 상태로 많이 남겨주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다 건축역사의 시계는 과거, 현재, 미래를 섭렵하느라고 느리게 간다. 우연히도 현재의 유행이 '빨리'와 '많이'라고 해서 현재를 사는 인간의 일시적이고도 병적인 조급증을 잣대로 삼을 일이 아닌 것이다. 현시대의 몇 년을 줄이려다가 지나간 600년 더하기 미래의 몇백 또는 몇천 년을 송두리째 잃을 수도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한평생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셨을 전문가들이 열과 성을 다할 수 있는 너르고 느린 무대가 마련되기를 간곡히 기원하며. 글·사진/뮌헨에서 임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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