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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대운하 노선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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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공사 기간 4년은 ‘폭발물의 뇌관’
‘마인-도나우’ 공사기간 32년·100년만에 완공
긴 준비기간에도 동식물 절반…물동량은 3분의1
[임혜지의 독일운하이야기] ① 대운하 공사기간
‘밤송이 까라면 까’라는 한국말을 나는 독일에 살면서 알았다.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맨손으로라도 밤송이를 까라니 이 얼마나 투철한 프로의식인가 싶어서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했고, 한국사람들과 일할 때 칭찬이나 격려의 뜻으로 자주 써먹었다.
어느날 점잖은 남성이 내게 그 진의를 가르쳐줬다.“…” ‘오, 나인(Nein, 우리말 ‘안돼’)!’ 손으로 까라는 게 아니래. 아무리 군대용어라지만 그렇게 잔인할 수가?
그런 명령을 내리는 상관은 야심찬 성과를 향해 돌진하자고 독려하는 통 큰 지도자가 절대로 아니다. 인권과 양심을 저버린 파렴치한이고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무능한일 뿐이다.
우리 국민은 새로이 대통령이 될 사람을 뽑았다. 민주적 방법으로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간택된 당선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각양각색이다. 희망과 기대에 찬 시각도 있을 것이고 조마조마한 시각도 있을 것이다.
“선거란 완벽한 인물이 나타날 때까지 실행을 미루며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때 출마한 인물들 중에 가장 나은 인물을 하나 선택하는 것이다. 변변치 못한 인물이라도 타후보가 더욱 변변치 않으면 뽑히는 것이다. 변변치 못한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대안이 없어서 뽑아줬으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다 같이 사는 길이다. 일을 습득할 시간도 주지 않고 변변치 못하다고 사사건건 방해만 하는 풍토에서는 변변한 사람이 나올 수 없고 변변한 사람도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만큼 우리의 대통령도 실력발휘를 할 수 있다. 대통령에게 월급 주면서 실력발휘를 못하게 만들면 손해는 국민이 본다.” (밖에서 보는 탄핵과 선거, 2004.4.2) 독일 운하 건설에 비춰보면 ‘한반도 대운하’ 공사기간 4년은 ‘폭발물의 뇌관’ 윗글은 4년 전에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맞아 내가 쓴 글이다. 누구 편을 들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므로 위의 내용은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이명박 차기 대통령에게도 엄연히 해당되어야 하는 사항이다. 차기 대통령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나는 그가 계획하는 정책에 미리부터 발목을 잡을 의도는 없다. 한반도 대운하에 관해서도 내가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운하를 계획하는 장소에 답사 한번 가보지 않은 내가 독일에 앉아서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명박 차기 대통령이 돌아보며 운하 건설의 의지를 굳혔다고 알려진 독일의 마인-도나우 운하에 관해서 믿을 만한 자료를 찾아 제공하는 일일 것이다. 한국의 건설·경제·환경 전문가들이 찬반의 의견을 제시할 때 국민들이 건전한 판단력에 의거해서 그 의견을 검토하려면 왜곡되지 않은, 담담한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공사기간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내게는 4년이라는 공사기간이 운하사업 전체를 폭발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뇌관이기 때문이다. 경부운하의 모델이 된 독일의 마인-도나우 운하의 생성 과정을 설명하면 왜 그런지 이해가 될 것이다. ‘171km 마인-도나우운하’ 공사기간만 32년
충분한 준비기간 가지며 100년만에 완공 켈하임과 밤베르그를 잇는 171킬로미터의 마인-도나우 운하는 1992년에 완공되었다. 1960년 공사의 첫 삽을 떴으니 32년 만의 일이지만 도중에 환경에 대한 우려가 높아 공사가 중단된 것을 고려하면, 순수 공사기간은 20년이다. 그러면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는 얼마나 걸렸는가? 공사를 시작하기 39년 전인 1921년에 라인-마인-도나우 주식회사(주주는 국가와 바바리아 주)가 뮌헨에 설립되어 구체적인 계획을 진행했다. 운하의 당위성이 이때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793년에 라인강-마인강-도나우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여 유럽 대륙을 관통하는 수로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기술 부족으로 실패했다. 17·18세기에 들어와서 오랜 운하의 꿈이 차차 구체적인 사업으로 계획되었고 적합한 수로의 위치가 연구되었다. 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 1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준비를 서둘러 1836~1845년 운하를 건설했다. 빚더미를 떠안고 개통된 이 루드비히 운하는 기술적인 문제로 운송효과가 기대치에 못 미쳐서 그다지 활발하게 이용되지 못했다. 이를 개선하고자 1892년에 바바리아 수로교통 촉진조합(Verein zur Hebung der Fluß- und Kanalschiffahrt in Bayern, 오늘날 Deutscher Wasserstraßen- und Schiffahrtsverein Rhein-Main-Donau e.V.의 전신)이 발족한 후 수로의 위치를 변경하고 기술을 개발하여 1992년에 마인-도나우 운하를 완공했으니 실로 100년 만에 결실을 본 셈이다. 물론 중간에 두 개의 세계대전이라는 중단의 시기가 있었지만 운하 건설의 계획은 전쟁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제법 꾸준히 추진되었다. 나는 독일에서 일하는 패턴이 정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독일에 살면서 독일인들의 지나친 신중함에 질린 경험이 종종 있으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원한 일처리가 그리울 때가 많다. 하지만 독일에서 운하 건설에 그렇게 긴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일한 결과를 살펴보면, 만약에 덜 신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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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한반도대운하 설명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의에 조감도를 보며 답변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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