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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16 22:22 수정 : 2009.01.19 18:26

‘일제고사 반대’ 토론회서 학자들 반박 나서
“학력미달 학생 지원 강화한다는 말은 허구”

“성취도 평가는 변별보다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 대한 정보 획득을 목적으로 해야 하며, 미달 학생에 대한 지원계획이 선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진보 성향의 교육학과 교수와 연구자들의 모임인 ‘교육학자 회의’가 16일 주최한 ‘일제식 학력평가의 기능과 교사 자율성 문제’ 토론회에서 세번째 발제자로 나선 성열관 경희대 교수는 일제고사가 필요하다는 교육당국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성 교수는 먼저 일제고사가 점수가 아닌 단계별 평가로 이뤄지기 때문에 서열화를 조장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비판했다. 성 교수는 “교육에서 평가를 강조하는 ‘측정주도수업(MDI) 이론’조차 상·중·하를 가르는 변별력보다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에 대한 정보 획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며 “시험의 목표는 우수 학생의 비율을 높이는 것보다 학력 미달 학생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앞으로 각 학교의 학력 정보가 3개 등급으로 나뉘어 공개되는데, 학교간 비교가 가능하게 되면 성적 올리기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성적 공시와 학교별 비교보다는 교사에게 학생들의 정보를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성 교수는 일제식 평가를 통해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수 있다는 공언 역시 허구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사례로 드는 미국의 ‘아동낙오방지법(NCLB)’은 뒤쳐진 학생 지원을 위한 인적·물적 지원을 위한 재정을 먼저 확보한 뒤 시험을 실시한다”며 “우리 정부는 대책만 나열할 뿐 예산 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고 꼬집었다.

‘일제고사가 교사들의 책무성을 강화한다’는 주장에 대해 양성관 건국대 교수는 “많은 연구자들은 표준화된 시험은 교사들이 교육과정의 내용을 매우 편협하게 해석하도록 만들고, 교수법 또한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한다”며 “각 학교에 대한 보상·지원이나 벌점·압박 등의 차별적 대우 역시 교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또“학업성취도 결과 역시 교사들의 수업 향상을 위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일제고사 거부’ 교사의 징계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경성대 우정기 교수는 “교사 나름의 교육적 행위에 대해 ‘공무원 복종 의무’라는 포괄적이고 모호한 법 조항을 근거로 파면을 한 행위는 부당한 행정권의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성열관 교수는 “미국은 학부모들의 시험 거부권이나 시험점수 표집 거부권을 보장하는데, 캘리포니아에서는 성적 표집을 거부하는 부모들이 너무 많아 시험결과의 통계적 의미가 없을 정도”라며 “우리나라는 교사들이‘시험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학부모에게 알려준 것만으로 파면·해임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광주교대 양은주 교수는 “교사들의 일제고사 거부가 교사들이 학생들의 교과학습지도를 소홀히 하고 일체의 평가를 거부하는 것으로 오해되는 것이 문제”라며 “이는 교실에서 교육과정-수업-평가의 과정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하고 실행하려는 교육전문가로서의 자율적 판단이라는 점이 강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통신대 정민승 교수는“이명박 정부는 ‘교육=경쟁’이라는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며 “일제고사 이후 부적응 학생을 전출시키거나 학력 우수교에 예산을 지원하는 상황이 벌써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또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도 전국학력평가의 실시와 공개 뒤 중산층이 대거 성적 높은 학교로 이사해 빈곤층 학교가 생겨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 성적을 속이거나 답을 알려주고 시험을 치르는 사례도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상식 동국대 교수는 “교육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교육학자들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며 “그럴듯해 보이는 서구식 교육 프로그램이나 모델을 우리나라에 실제 적용했을 때 발생하는 오류 역시 교육학자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가 끝난 뒤 이들은‘일제고사 반대 교사에 대한 파면·해임’을 규탄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전국 교육학자 154명이 동참했다. 아래는 성명서 전문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서울시 교육감은 교사들에 대한 파면 해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학교현장을 황폐화하는 반교육적 조치들을 중단하라

지금 또 다시 교단학살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10월에 실시된 일제고사와 관련하여 12월 10일 서울시 교육청은 교사 7명에게 파면과 해임 조치를 내렸다. 전국 일제식 학력고사에 대한 정책적 타당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은 시점에서, 현장 교사들이 소신 있게 교육의 주체인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의사를 타진하여 체험학습과 시험을 선택하도록 한 것은 교육자로서 충분히 이해할 만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교육청 당국은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는커녕 오히려 해임과 파면이라는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현장 교사에 대한 이러한 강제 조처로 인해 어린 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아픔과 상처를 주는 것은 반(反)교육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우리는 서울시교육감의 조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를 즉각 철회하여 ‘교육적 이성’을 회복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현장교사들이 고민하고 있는 전국 일제고사는, 그 정책적 타당성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졸속행정의 산물로 판단된다. 교육적 소외지역에 대한 어떤 정책적 배려와 지원책도 마련해두지 않고 시행되고 있는 이러한 ‘학생 줄세우기 식’ 표준화 평가는, 온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과열 입시경쟁 체제와 사교육 광풍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정책적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인간적인 세계화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인식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다양한 교육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오늘날, 이는 과거 회귀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아울러 전국 일제고사를 통해 기대되는 이른바, 학력신장이 단지 반복학습과 선행학습의 강화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이미 수차례 확인되고 있다. 이렇게 논란이 되고 있는 교육 정책에 대해 현장 교사들이 교육 전문성과 자율성에 기초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건설적인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다.

이번 교사 파면 해임은 이명박 정부와 공정택 교육감이 교육계를 정치화하고 있는 일련의 사안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강요, 특정 시각에 의한 현대사 특강 등과 같은 구시대의 이념적인 대립과 파행으로 인해 다양한 관점과 이해방식이 공존해야하는 교육현장은 이분법적 냉전 이데올로기에 휩싸이고 있다. 자유롭고 비판적인 토론과 논쟁은 선진화된 모든 교육의 조건이면서 동시에 교육의 목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마녀사냥식 정치적 탄압으로 특정한 이념적 지향성을 국민들에게 강요하며 정치적 폭압으로 학교 현장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우리는 이번 교사 파면 해임을 현 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초 파괴와 동일한 사안으로 간주한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의 반교육적 조치는 교육 수장으로서의 자질을 다시 한 번 의심케 하는 것으로, 참으로 상식이하의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교육 당국의 편의주의적 행정과 권력의 남용은 국민 기본권의 입장에서 견제되어야 한다. 교사에 대한 파면 해임 결정이 철회되지 않는다면, 양심적인 교육 주체들이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경고한다.

2009년 1월 16일
<서울시 교육청의 교사 파면, 해임 조치의 철회를 촉구하는 교육학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