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02 16:27
수정 : 2008.04.0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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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일자 17면에 실린 “브루니, 영국인 좀 세련되게 해주세요” 기사. 카를라 브루니의 사진과 함께 3단으로 크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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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이 만우절에 <중앙일보>라는 한국의 ‘월척’을 제대로 낚았다.
<중앙>은 2일치 국제기사에서 ‘순진하게’ 대형 오보를 냈다. 지난 2월14일 중국 누리꾼에 ‘낚여’ 스위스 제네바의 폭설 사진을 중국 후난지역 폭설 사진으로 1면에 잘못 보도한 데 이어 올해만 두번째 대형사고다.
<중앙>은 2일치 17면 국제뉴스 “브루니, 영국인 좀 세련되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3단 기사에서 “세계적 모델 출신 카를라 브루니(40) 프랑스 대통령 부인이 영국 정부의 위촉을 받아 영국 사람에게 패션과 음식을 가르치는 문화대사로 나섰다”며 브루니의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 인터넷판은 1일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카를라 부르니를 영국의 삶에 멋과 매력을 불어넣기 위해 정부 주도 운동의 리더로 임명했다’고 보도했다”고 출처를 밝혔다. 기사 마지막엔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브루니의 세련된 자태 때문에 그를 패션 교사로 택했다”는 기자 나름의 분석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 기사는 <가디언> 인터넷판이 지난 1일 만우절 전통에 따라 낸 고의적 ‘오보’기사를 <중앙> 해당기자가 확인을 거치지 않고, 옮겨쓴 바람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가디언>은 1일 “영국 총리 측근으로부터 얻은 특종”이라며 “브루니가 영국인들의 일상 생활에 세련된 스타일을 불어넣는 책임자로 임명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신 독자들에게 기사가 ‘거짓’임을 암시할 수 있는 단서를 주었다. ‘아브릴 드 푸아송(Avril de Poisson)’이라는 기자의 이름이다. 이 기자의 이름을 거꾸로 뒤집어 읽으면 ‘푸아송 다브릴(Poisson D’Avril)’이 되는데, 이는 만우절이란 뜻이다.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이 기사가 ‘만우절 기사’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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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14일치 PDF. 중앙일보는 이 사진에 대해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중국의 구이저우, 후난, 후베이, 안후이, 장시, 광시, 충칭, 광둥, 티베트, 상하이 등 20개 지역에 폭설이 내렸다. baidu.com” 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사실은 스위스 제네바의 폭설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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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쓴 박경덕 기자는 “만우절 기사인줄 몰랐다”며 “인터넷에 실려 있는 가디언 기사를 보고 옮겨와 썼다”고 해명했다. <중앙> 국제부의 다른 기자는 “<연합뉴스>가 1일 먼저 이 사실을 보도했는데, 그것부터가 오보였다. 그 기사를 먼저 보고 <가디언> 기사를 확인한 것으로 안다”며 오보의 책임을 통신사로 돌렸다.
하지만 해당 기자가 이같은 사실을 미처 몰랐더라도 여러 차례의 게이트키핑을 거쳐 기사를 내보내는 종합일간지의 특성을 감안하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중앙일간지 국제부의 한 기자는 “<가디언>에 실린 브루니 기사의 경우 다른 언론들을 통해 전형적인 ‘만우절 오보 기사’로 소개됐다”며 “여러 매체의 외신 보도만 제대로 챙겨봤어도 의도적인 만우절 기사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에겐 익숙치 않지만, 세계 언론들은 만우절에 ‘오보’를 내어 독자들과 유머를 나누는 전통을 이어 왔다. 이런 전통에는 권위지이든 타블로이드지이든 구분이 없다. 올해도 1일 하루 동안 곳곳에서 이런 거짓기사들이 쏟아져 독자들을 즐겁게 했다. 영국 신문 <텔레그라프>는 “날아다니는 펭귄이 발견됐다”고 보도했고, <더 선>은 “키 작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신장을 늘리는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룩 비거(Luc Bigger)’라는 이름의 프랑스 정부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중앙>의 오보는 한 기자의 단순 실수라기 보다는 한국언론의 그릇된 외신 배껴쓰기 관행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외신 기사를 철저하게 확인해 쓰지 않는 관행 때문에 매년 만우절마다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몇년 전에는 방송에서도 외신을 그대로 받아써서 시민단체가 문제제기를 했었다”며 “사실 확인이 취재의 기본이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이런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꼬집었다.
누리꾼들은 중앙의 대형 오보에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누리꾼 ‘지켜보고있다’는 “국제 외교 관례에 대해 조금만 알고 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어떻게 이 기사가 데스킹을 통과한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누리꾼 ‘조강욱’은 “한국의 중앙언론이 (외국 언론에) 농락당하다니…, 기사를 어떻게 쓰는 거냐”고 질타했다.
더구나 같은날 <중앙>은 조현욱 논설위원이 쓴 ‘분수대’ 칼럼에서 “‘일본에서 외국인도 각료가 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는 만우절 거짓기사를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들이 그대로 받아 보도했던 일이 있다”며 ‘만우절 해프닝 기사’ 사례를 소개한 터였다.
이날 오전까지 <조인스닷컴(www.joins.com)> 국제면 톱기사에 올라 있던 ‘브루니 문화대사 임명’ 보도는 낮 12시께부터 ‘힐러리 만우절 농담’ 보도로 교체됐다.
<한겨레> 취재·영상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