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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노동

대선에도 ‘투명인간’ 이주노동자들 절박한 호소

등록 :2017-05-01 19:22수정 :2017-05-0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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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하루 앞 300여명 서울 도심 집회
“고용허가제 폐지, 단속 중단” 한 목소리
투표권 없어… 대선 후보들도 무관심
심상정 후보만 10대 공약에 구체적 개선책
국제 노동자의 날(5월1일, 메이 데이)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주최한  ‘노동 3권 쟁취’ 집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
국제 노동자의 날(5월1일, 메이 데이)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주최한 ‘노동 3권 쟁취’ 집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
“스톱 크랙다운, 스톱 이피에스(단속을 멈춰라,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

“위 아 원, 위 아 레이버(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노동자다)!”

국제 노동자의 날(메이 데이)를 하루 앞둔 30일 낮. 서울 종로 보신각 앞 광장에선 우리말과 영어가 뒤섞인 연설과 구호가 울려퍼졌다. ‘이주노동자 2017 노동절 집회’였다. 서울·경기 지역 뿐 아니라 멀리는 경북 밀양에서까지 올라온 이주노동자 300여명이 화창한 봄날의 일요일 휴식을 뒤로 하고 한 데 모였다. 손마다 든 피켓들엔 노동 3권 쟁취, 숙식비 강제징수 지침 철회, 단속·추방 중단, 고용허가제 폐지, 작업장 변경의 자유 등의 문구가 한글과 영문으로 적혀 있었다.

서울·경기 이주노조의 섹알마문 수석 부위원장은 “우리는 노동절인 5월1일에도 일을 해야 해서 하루 일찍 일요일에 모였습니다. 한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줍니다”라고 말했다. 네팔, 필리핀, 방글라데시, 대만 등 동남아 각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도 열악한 노동환경과 온갖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험들을 털어놓으며 설움을 나누고 연대 의지를 다졌다.

지난 3월말 기준 국내 체류 비전문 취업 및 방문 취업자는 약 51만명. 여기에 비자 만료 시한을 넘긴 미등록 이주자까지 합치면 이주노동자 수는 70만~80만명에 이른다. 중소 제조업과 농축수산업, 서비스업종 저임금 노동력의 주축이다. 이들은 그러나 ‘국민’이 아니고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일상에서는 물론 선거철에조차 ‘투명 인간’ 처지다. 이번 대선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5개 주요 정당 대선 후보들 중 구체적인 이주노동자 정책을 10대 공약에 담은 이는 심상정(정의당) 후보가 유일하다.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비자 도입, 이주여성 체류권 보장, 취업이주여성의 노동인권 보장, 이주노동자 국제협약 비준, 미등록 체류자에 건강보험 적용 등이다. 임승준 정의당 정책위원은 “일정기간 성실하게 일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영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해 안정적 신분으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가 다섯 명의 주요 정당 후보에 보낸 <8대 인권 의제 질의> 중 ‘이주노동자 권리 보호’에 관한 3개의 질문이 있었다. △사업장 변경을 이유로 비자 연장·갱신을 제한받는 고용허가 개정 △농축산업 부문 노동자에 근로시간 및 휴식 기준을 예외로 한 근로기준법 63조 폐지 △강제노동 금지, 단결권 보호, 단체교섭권 적용 등 국제노동기구(ILO) 4대 핵심 협약 비준 등이다. 돌아온 답변은 후보와 정당에 따라 뚜렷이 갈렸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3개 과제를 모두 ‘추진’하겠다고 답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모두 ‘추진 불가’ 입장을 내놨다. 바른정당은 ‘추진’ 또는 ‘일부 추진’이었고, 국민의당은 ‘일부 추진’ 또는 ‘무응답’이었다.

국제 노동자의 날(5월1일, 메이 데이)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노동 3권과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요구하며 집회를 한 뒤 거리행진에 나서고 있다.
국제 노동자의 날(5월1일, 메이 데이)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노동 3권과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요구하며 집회를 한 뒤 거리행진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외국인 체류 정책의 최우선 목적은 ‘정주화 방지’이며, 노동력 수요 충원도 ‘단기순환’ 원칙에 맞춰져 있다. 2003년 제정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이듬해부터 실시된 ‘고용 허가제’가 뼈대다. 정부는 매년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를 결정하며, 고용허가를 받고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최장 4년 10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다. 한국 정부로부터 ‘성실 근로자’ 인정을 받으면 비자 만료 뒤 출국했다가 3개월 뒤에 재입국할 수 있다. 그러나 ‘성실 근로자’ 제도는 이주노동자가 되레 고용주의 횡포에도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또 길게는 9년 8개월에 이르는 체류 기간 동안 가족 동반 체류는 허용되지 않는다.

충남 천안에서 온 네팔 출신의 오자 머두수던(35)은 2년 4개월 새 열악한 작업환경과 고용주의 횡포로 두 차례나 작업장을 옮겼다. 본국에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있다는 그는 “한국이 경제 선진국이지만 이주노동자들에 언제 관심을 가질지 궁금하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가난한 시절에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던 것처럼, 우리도 경제가 어려워 한국에 왔다. 우리는 착취당하기 위해, 자살하기 위해, 욕설을 듣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경기 안산에서 온 방글라데시 출신의 한 노동자는 연단에 올라 “우리는 검정 소나 기계가 아닙니다. 노동자는 사람이고 다 귀한 자식입니다”라며 “협박과 노동 강요를 멈추라”고 외쳤다.

집회 참가자들은 노동자 투쟁가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단속·추방, 숙식비 강제징수, 나쁜 사장, 폭언·폭행·성희롱’ 등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들과 인권침해 현실을 고발하는 글귀를 적은 현수막을 함께 찢는 퍼포먼스를 한 뒤 거리행진을 벌였다. ‘까치 설날’처럼 하루 이른 노동절 집회를 마치고 다시 작업장이 있는 삶터로 돌아간 그들에게 이번 대선 이후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글·사진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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