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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장애인

“시각장애 이겨낸 박사학위 ‘나비효과’ 일으켰으면”

등록 :2020-02-13 18:30수정 :2020-02-14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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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유달장애인지원센터 서미화 소장
서미화 소장. 유달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제공
서미화 소장. 유달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제공

“안 보인다는 것이 한때 삶 전체를 덮어버렸죠. 지금은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남 목포의 유달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소장 서미화(52·1급시각장애인)씨는 12일 “시련을 만나 단단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25일 조선대 대학원에서 논문 ‘시각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가 자립의지에 미치는 영향’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박사 과정에 입학한 지 8년 만이다. 그는 “죽을 거 같고 토할 것 같은 순간이 많았다.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한테 감사한다. 내 소식을 듣고 시각장애인 2명이 포기했던 논문을 다시 쓰기로 했다고 한다. ‘나비효과’가 일어나면 좋겠다”고 했다.

”선행 논문 수십 편을 찾아 피디에프(PDF)를 한글텍스트로 변환하고, 이를 음성프로그램으로 재생해 학습하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전체 내용을 반복적으로 익히고, 참고할 부분을 자판으로 입력해 소리로 들으며 논문을 써야 했기 때문에 다른 이보다 시간이 서너배 더 들었죠.”

센터 일과 학업을 병행한 그는 지난 2년 동안 막바지 작업에 매달리느라 잠자는 시간도 쪼개야만 했다. 홀로 분투하는 그를 위해 대학에서는 박사 과정을 수료한 지원자를 붙여주기도 했다. 다행히 2015년 쓴 소논문 ‘전남지역 예비활동보조인 성교육이 장애인 성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미국 학술지 <공공정책과 행정>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박사가 된 그한테 계획을 묻자 “장애인 차별을 해소하고 장애인이 다양한 영역에서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는 정책개발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당장 3차 전남장애인기본계획 수립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그는 최중증 독거장애인의 돌봄시간이 한 달 858시간(심야·주말 추가시간 포함)에서 120시간으로 줄어드는 제도를 방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온종일 돌봄이 필요한 최중증장애인한테 65살이라고 노인요양제도를 적용해 하루 4시간만 보살피겠다는 발상은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강조했다.

13살 때 시력 잃어 1급 시각장애인
조선대서 25일 사회복지학 박사 받아
44살 때 박사과정 시작해 8년 만에
“소리로 공부하니 서너배 시간 걸려”

시민단체 추대로 목포 시의원 지내
“장애인 정책 개발에 앞장설 터”

20여년 넘게 이어진 그의 장애인 인권운동은 체험에서 출발했다. 교사 집안에서 자란 그는 13살이던 중학교 2학년 때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망막에 색소가 쌓이면서 세포가 손상돼 차츰 시력을 잃는 무서운 병이었다. 그는 “왜 나만 그래야 하는지 슬프고 억울했다”고 회고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중·고를 졸업한 그는 전문대 유아교육과에 들어갔다. 피아노 미술 무용을 배우는 게 쉽지 않았다.

“학력고사를 볼 때 시험지는 약시용인데 답안지는 그대로 인 거예요. 좁디좁은 칸 안에 표시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어요. 예비 교사 때 들은 ‘아이가 계단에서 넘어지는지 물속에 빠지는지 어떻게 알겠느냐’라는 핀잔도 비수처럼 가슴에 꽂혀 잊혀지지 않아요.”

그는 유치원 취업을 포기하고 종교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중도장애여서 점자조차 배우지 못한 그의 입지는 너무도 좁았다. 선택하지 않은 장애를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홀대’에 그는 자꾸만 작아져 갔다.

겨우 버티던 그는 24살 때인 1992년 6월 엎친 데 덮치는 불운을 겪었다. 교통사고로 왼쪽 팔·다리에 심각한 골절상을 입어 통깁스를 한 채 병상에서 5개월을 지냈다. 조력이 없으면 용변조차 해결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침대에선 일을 보지 못했어요. 별의별 생각을 다 했죠. 문득 사고 이전의 상황을 그리워하는 나를 봤어요. 그때는 보이지 않았을 뿐 두 손, 두 발로 뭐든지 할 수 있었는데 늘 불평만 하고 있었잖아요.“

병원을 나선 그는 180도 달려졌다. 오뚝이처럼 세상의 홀대에 맞섰다. 2002년엔 목포대 사회복지학과에 편입원서를 냈다. 나이가 많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분노한 그는 ‘사회복지를 가르칠 자격이 있느냐’고 따졌고 다음해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 그는 사회복지사 청소년상담사 등 자격증을 따고 37살에 졸업장을 받았다. 하지만 오라는 데는 여전히 없었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장애인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당사자 단체를 만들었죠. 상담하다 보니 취업 장벽만큼 성폭력 문제가 심각했어요. 내친김에 전문교육을 받고 장애인성폭력상담소를 열었어요.”

그는 대학 졸업 이후 줄곧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등에서 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다 시민단체의 추대로 2010~2014년 목포시의원을 지냈다. 민주당 비례대표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조례 10여건을 만들었다. 폐차하는 시내버스는 모두 저상버스로 바꾸도록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런 노력으로 목포의 저상버스는 4년 동안 1대에서 13대로 늘어났다. 현실을 바꿀 대안에 갈증을 느낀 그는 44살 때 박사 과정의 문을 두드리는 용기를 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사진 유달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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