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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간 억울한 옥살이…“우린 살인범 아니다”

등록 :2019-04-23 15:12수정 :2019-04-2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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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낙동강 살인사건 범인 몰린 장동익·최인철씨
옥살이 뒤 2013년 출소…고문 피해자 입증 안간힘
“당시 변호한 문재인 변호사 영치금 넣어주며 격려”
최근 검찰 과거사위 “경찰이 고문 범인 조작” 결정
부산고법에서 5월23일 재심 결정 뒤 첫 심문 개시
고문 피해자인 장동익(왼쪽)과 최인철씨가 2017년 부산고법에 재심을 신청한 뒤 법원을 나오고 있다. 최인철씨 제공.
고문 피해자인 장동익(왼쪽)과 최인철씨가 2017년 부산고법에 재심을 신청한 뒤 법원을 나오고 있다. 최인철씨 제공.

1991년 11월8일. 장동익(61·당시 32살)씨는 부산 강서구 명지동 집에서 두 살배기 딸을 돌보며 아내가 차려줄 저녁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관문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나갔다가 곧바로 경찰에 연행됐다. 영문도 모른 채 사하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던 그는 11일 중부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다. 그곳엔 직장 동료 최인철(58·당시 29살)씨도 연행돼 있었다. 당시 최씨는 사하구 을숙도에서 자연보호 명예 감시관으로 활동했는데, 같은달 6일 을숙도 빈터에서 무면허 운전교육을 하던 강사로부터 현금 3만원을 받았다며 공무원 사칭 혐의로 입건돼 있었다. 공범이 누구냐는 경찰의 추궁에 당황한 최씨는 동료인 “장동익씨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얼떨결에 말했다. 장씨는 그렇게 연행됐다. 중부서에서 처음 만난 한 경찰관이 대뜸 “1989년 12월 이들한테 내가 차량 강도를 당했다”고 말했다. 이 얘길 들은 다른 경찰관은 2인조 차량 강도 19건 목록을 내민 뒤 범행을 실토하라고 윽박질렀다. 최씨가 “장씨는 시각장애 1급 장애인인데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리냐”고 항의했다. 경찰관이 최씨를 발로 찼다.

사건은 점점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조사 몇 시간 뒤 경찰은 느닷없이 이들에게 ‘낙동강변 살인사건’을 실토하라고 했다. 1990년 1월4일 낙동강변에 차를 타고 있던 여성이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사건으로 증거 없는 장기 미제사건이었다. 경찰은 범행을 부인하는 최씨를 하단파출소에, 장씨를 사하서 유치장에 다시 가뒀다. 연행된 다음날(12일)부터 경찰의 구타와 고문이 시작됐다.

2016년 10월1일에 방송된 <에스비에스>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부산 낙동강변 살인사건 변호를 맡았던 때를 회고하는 모습. 에스비에스 방송 화면 갈무리.
2016년 10월1일에 방송된 <에스비에스>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부산 낙동강변 살인사건 변호를 맡았던 때를 회고하는 모습. 에스비에스 방송 화면 갈무리.
“경찰관이 손목에 수갑을 채운 다음에 ‘쪼그려 앉으라’고 했어요. 팔로 무릎을 감싸라고 하더니 오금에 쇠파이프를 끼우고 들어 올려 책상에 걸쳤어요. 통닭구이죠. 그리고 얼굴에 수건을 덮고 물을 부었어요.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가슴이 터질 듯 아파요. 견디다 못해 기절했고, 깨어나면 다시 반복됐습니다.”

경찰 고문을 받기는 최씨도 마찬가지였다. 최씨는 “겨자를 못 먹는다. 물고문 때 겨자를 넣기도 했는데 끔찍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같은달 14일까지 홍OO, 김OO, 박OO, 허OO 등 경찰관 4명한테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살아야겠다’ ‘법원에 가서 진실을 밝히면 된다’고 생각해 경찰관이 불러주는 대로 썼다. 장씨와 최씨는 15~16일 낙동강변 살인사건 현장검증을 했다. 장씨는 현장검증 첫날(15일)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가 또 고문을 당했다. 경찰은 “최씨가 각목으로, 장씨가 돌로 여성을 때려 숨지게 했다”고 이들의 자술서를 작성했다.

경찰은 같은달 18일 낙동강 살인사건 피의자로 이들을 검찰에 넘겼고, 검찰도 기소 뒤 사형을 구형했다. 이들이 법정에서 ‘살인범이 아니다’ ‘고문으로 자술서를 썼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변호인으로 이들의 2·3심을 맡았다. 최씨는 “꼼꼼하게 살펴보고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변호했다.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편지도 썼고, 영치금도 보내줬다. 하지만 1993년 대법원의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후에도 2~3차례 교도소에 찾아와 격려해줬다. (재심)기회가 오면 다시 사건을 맡겠다고 해 고마웠다”고 기억했다.

이후 장씨는 폐결핵 치료를 받으러 온 최씨와 경남 진주교도소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는 곧바로 최씨에게 주먹을 날렸다. 자신을 끌어들인 최씨에 대한 분풀이였다. 이후 장씨와 최씨는 2013년 4·6월 각각 옥살이를 끝내고 출소했다. 21년 만이었다. 최씨와 장씨는 살인 누명을 벗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서로를 찾았다. 장씨는 출소한 그 해 강서구 명지동에 있던 최씨 친척의 음식점에서 최씨를 만났다. 장씨는 최씨를 보자마자 또 때렸다. 살인 누명에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는 원망 때문이었다. 장씨는 “두 살배기 딸이 성인이 됐다. 딸한테 할 말이 없었다. 힘든 사춘기를 보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났다. 덩치가 큰 최씨가 계속 맞으면서 진실을 함께 밝히자고 달랬다”고 말했다.

이들은 부산인권사무소, 법률구조공단, 변호사 사무실 등을 찾아다녔다. “확정판결이 났고, 오래된 사건이라 도울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2016년 3월 이들은 한 기자의 도움으로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다. 박 변호사는 노숙소녀 살인사건, 삼례나라슈펴 강도사건 등 사회적 약자의 재심을 끌어냈다. 박 변호사는 장씨와 최씨의 자술서 내용, 경찰관 강도사건 미신고 등 검·경의 기소 내용에 모순점이 많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박 변호사는 “재심을 청구해 진실을 밝히자”고 했다. 이들은 박 변호사와 고문·허위자백에 대한 증거를 찾아 2017년 부산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 17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이 경찰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범인이 조작됐다고 결론냈다. 부산고법도 이들의 재심 심문기일 지정 요청 의견을 받아들여 다음달 23일 첫 심문을 열기로 했다.

최씨는 “출소 뒤 가족, 친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직장도 다니고 있는데, 사장이 내 이야기를 듣고 격려를 많이 해줬다. 재심으로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우리가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동안 고문 경찰, 사형 구형 검사 등은 잘살고 있다. 바로잡는 판결이 나면, 국가공권력에 의한 살인·고문 등 중대 인권침해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변호사는 “재심 당사자인 검찰이 잘못을 인정해 의미가 크다. 경찰은 물론, 검찰·법원도 이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하루빨리 장씨와 최씨가 살인 누명을 벗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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