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10 18:31
수정 : 2008.08.11 00:06
이웃시설과 목적 비슷·진품 적어 모조품만 잔뜩
자격 갖춘 학예사 1명도 없는 박불관도 상당수
“지역 문화적 전통·문화센터로 활성화 고민해야”
2년새 91개나 늘기도…한해 1조원 들어간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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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 공립 박물관이 225개에 이를 정도로 지방자치단체들의 박물관 건립 열풍이 일고 있지만, 전시품 등 내실은 빈약해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 위부터 경북 영덕 어촌민속박물관, 서울 광진구 고구려역사문화관(조감도), 전북 익산 마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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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북 영덕군은 100억원을 들여서 축산면 일대 3600㎡에 대게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2005년 12월 지정된 영덕대게특구 사업의 하나다. 그러나 감사원은 지난 6월 “대게박물관은 영덕군이 60억원을 들여 2005년 12월에 개관한 어촌민속박물관과 사업목적·시설 및 전시물이 비슷하다”며 “대게박물관이 추진될 경우 시설 중복에 따른 예산 낭비와 시설 관리상의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영덕군의 2007년 재정자립도는 12.6%다.
#2 서울 광진구는 지난 5월 서울 광장동 일대 3만7444㎡에 395억원을 들여 지하1층·지상2층, 전체면적 6137㎡ 규모의 아차산 고구려역사문화관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광진구는 내년 하반기에 건물 공사에 들어가 2011년에 완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고구려역사문화보존회는 “구리시에 추진 중인 ‘고구려역사기념관’과 중복돼 예산 낭비의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구려역사기념관은 고구려보존회가 구리시와 함께 330억원을 들여 아차산 일대 3만3천㎡에 추진하는 사업이다.
#3 전북 익산시가 40억원을 들여서 건립한 마한관은 지난 4월 개관을 하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익산시가 “삼국시대 마한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박물관을 건립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전시된 115점 가운데 76점은 모조품이었다. 나머지 30여점은 가까운 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것이라서 박물관 소유의 진품은 9점뿐이다. 박물관 쪽은 “진품과 모조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박물관을 통한 학습효과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지역색을 살리려는 박물관 건립의 광풍이 불고 있지만, 정작 이들 박물관의 내실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따라붙고 있다. 상당수 박물관이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전시행정’으로 지어져 세금만 축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의 외형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 형식을 채울 내용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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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별 공립 박물관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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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화내빈 박물관 문화체육관광부의 집계를 보면, 지자체가 건립한 공립박물관의 수는 2000년에 30개에서 2007년에 225개로 7배 넘게 늘어났다. 특히 2006년부터 2007년 사이에만 134개에서 225개로 91개가 늘어나 박물관 건립 바람이 갈수록 거세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박물관 하나의 평균 건립비를 100억원으로 잡아도 한 해에 1조 가량의 세금이 드는 ‘성장산업’인 셈이다.
그러나 박물관 수의 증가가 박물관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2006년 12월 자료를 보면, 당시 전국 142개 공립박물관에서 일하는 자격 취득 학예사의 수는 143명으로 나타났다. 박물관 한 곳에 일하는 학예사의 수가 평균 1명 정도인 셈이다. 서울역사박물관처럼 규모가 큰 공립박물관의 학예사 수가 20명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공립박물관 가운데 전문 학예사를 한 명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지방 박물관의 한 학예사는 “지방 박물관 가운데 30% 정도는 자격을 갖춘 학예관을 단 한 명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상당수의 박물관이 지역과 소통하는 문화센터의 역할은 포기한 채, 단순히 유물만 전시하는, 또 하나의 유물로 전락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 일단 짓고 보자] 하계훈 단국대 교수(문화관리학)는 “1998년 이후부터 중앙 정부가 적극적으로 박물관 건립을 지원하고,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업적을 남기는 주요한 수단으로 박물관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박물관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물관학계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다 보니 콘텐츠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건물부터 짓는 경우도 있다”며 “그러다 보니 지역 정체성과 맞지 않는 박물관이 양산되고, 따라서 지역 주민들한테 호응을 받지 못한 채 퇴직 직전 공무원들이 쉬고 가는 공간쯤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보아 추계예술대 교수(박물관학)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무작정 건물만 지을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적인 전통을 고려해서 박물관을 지을지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며 “또 박물관을 지은 다음에도 유물만을 전시하는 기능에만 국한하지 말고, 이를 지역의 문화센터로 활성화하기 위한 장기적인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