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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일반

[단독] 사기당한 ‘MB 자원 외교’…“석유보다 물 더 퍼내”

등록 :2015-01-18 21:30수정 :2015-01-1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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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해양 시추 ‘사비아페루’에 가보니…
페루 대통령도 말렸지만…“3억달러짜리 12억달러에 덥석”

사비아페루

2009년 2월 한국석유공사가 콜롬비아 석유공사와 함께 사들인 페루 석유회사다. 페루 북쪽 서해상에 위치한 해상 광구에서 석유를 생산 및 탐사한다. 석유공사 최초의 외국 석유회사 인수·합병(M&A) 사례다. 누적 투자액 7100억원으로, 서울시 무상급식 예산(1400억원)의 5배다. 석유나 수익을 국내에 전혀 들여오지 못한 채 현재 매각 추진중이다. 2009년 초 알란 가르시아 전 페루 대통령이 “거래하지 말 것”을 요청했으나, 정부와 석유공사는 거래를 강행했다.

지난 7일 오후 페루 북쪽 해안에서 석유 시추선이 사이를 배들이 오가고 있다. 리마에서 탈라라행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찍었다. 탈라라/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지난 7일 오후 페루 북쪽 해안에서 석유 시추선이 사이를 배들이 오가고 있다. 리마에서 탈라라행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찍었다. 탈라라/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사진으로만 봤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막이 끝나는 곳에서 새파란 바다가 시작됐다. 바다에는 큐빅 모양 석유 플랜트가 띄엄띄엄 박혀 있었다. 그 사이를 배들이 오갔고, 바닷가 한켠에는 기름 탱크가 모여 있었다. 종종 죽은 물개가 떠내려온다는 해변에는 현지인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40달러 아래로 떨어진 석유 값처럼, 바다 위 ‘석유 밭’에는 도통 활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기름값은 6개월 전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았다. 손에 잡힐 듯한 바다 위 플랜트에는 예상했던 불기둥 따위가 보이지 않았다.

바다 밑을 통과해 육지에 닿은 운송용 파이프 라인은 얇고 앙상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읍내 역시 풀이 죽어 있었다. 새카만 얼굴의 현지 주민들은 멀리서 찾아온 ‘꼬레아노(한국인) 기자’에게 “사비아가 몇년 째 새 유전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탐사광구에선) 물만 퍼내고 있다”며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지난달 7~8일(현지 시각) 방문한 페루 북쪽 해안의 사막도시 딸라라의 풍경이다.

한국석유공사는 2009년 2월 콜롬비아 석유공사(에코페트롤)와 함께 이곳 딸라라의 석유회사 ‘사비아페루’(사비아)를 인수했다. 탐사광구 10곳에 생산유전 1곳의 사업권을 따내는데 12억달러(약 1조3천억원)를 지불했다. 양쪽이 반반씩 분담했다. 페루 해상 광구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하루 평균 석유 1만여 배럴을 생산하는 중소형 유전이다. 인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2008년부터 본격화 한 석유공사 대형화의 ‘신호탄’이었다. 정부는 자원 수입량 중 우리가 직접 생산하는 비율인 ‘자주개발률’이 0.3%포인트 상승하게 됐다고 홍보했다. 생산량도 2015년까지 지금의 거의 다섯배인 일평균 4만5000배럴로 늘어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외교채널 통한 ‘인수 반대’ 충고 무시
석유공사 막무가내 매입 ‘사기’ 당해
당시 대사 “대통령이 한다는데…”
석유공사 관리 손놔…매각 추진중

지난 7일 탈라라 해변에서 찍은 사비아 페루의 해상 시추선 모습. 탈라라/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지난 7일 탈라라 해변에서 찍은 사비아 페루의 해상 시추선 모습. 탈라라/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6년여가 흐른 지금, 석유공사는 이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사비야 매각을 추진중이다. 생산량은 수년째 1만배럴 그대로이고, 그동안 생산한 석유도 국내로 들여오지 못했다. 지난 5년 동안 1811억원(공사의 지분만큼만 반영)의 당기순이익이 났다고 하지만 모두 재투자되고 있다. 국내엔 한푼도 반입되지 않는 상황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세금·벌금을 둘러싸고 페루 정부 및 매각자와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남미에 기반을 둔 독립언론인 <아이피에스(IPS) 뉴스>의 앙헬 파에즈 기자는 “사비아 매매는 페루 대통령까지 나서서 말린 거래였다. (이런 상황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비아 매매에 대한 심층 분석 기사를 2009~2010년 여러 차례 썼다. 사비아를 공사에 판 미국인 윌리엄 캘롭은 양도세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 거래를 추진했고, 2008년 말 페루 정가를 휩쓴 이른바 ‘오일 스캔들’ 도청의 배후로 지목받았다.

실제 <한겨레>가 김제남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당시 3급 비밀문서에는 이런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비아 매매 직전인 2009년 1월20일부터 2월6일까지 외교통상부와 페루 및 콜롬비아 주재 한국대사관이 6차례 주고받은 대외비 문서를 보면, 가르시아 전 페루 대통령은 “(사비아에 대한) 부정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이를 인수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2009년 1월말 한국 쪽에 밝혔다. 벨라운데 전 페루 외교장관도 “이번 인수 계약이 체결되면 양국 관계 발전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시 정부와 석유공사는 이런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병길 전 페루 대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하겠다고 하는데, 일개 대사가 (거래를) 하지 말자는 입장을 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의지가 실린 채 거래는 이뤄졌지만 페루 의회는 사비아 매매 완료 1주일 만인 2009년 2월 중순 사비아 매매의 불법성을 조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1년여 뒤 무려 4억8200만달러의 미납 세금과 벌금 등을 부과했다.

7161억원이 투자된 사비야 인수는 국민들에게 선전한 자원의 확보도, 금전적 수익도, 외교에도 득이 되지 않았다.

지난 9일 호르헤 사코네티 산마르코스국립대학 교수가 한겨레 기자에게 사비아 경영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리마/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지난 9일 호르헤 사코네티 산마르코스국립대학 교수가 한겨레 기자에게 사비아 경영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리마/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지난 9일 오후 페루 리마의 산 마르코스 국립대학에서 호르헤 자코네티 교수(경제학)를 만났다. 남미에서 가장 오래됐고, 페루의 가난한 수재들이 많이 다닌다는 곳이다. 교수는 지난해 사비아 노조 쪽 요청으로 사비아 경영 현황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 바 있다. 경제학자답게 각종 통계 자료를 준비한 채 한국에서 온 기자를 맞았다.

애초 30분으로 예정했던 인터뷰는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노교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칠판에, 딸라라 해상 플랜트의 구조와 사비아 계약의 특징 등을 설명했다. ‘한국이 페루 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비아를 산 것이 잘못된 선택 아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웃으며 “필요하다면 살 수 있다. 그런데 너무 비싸게 샀다. 내가 보기엔 3억달러면 충분했다. 9억달러(최종 12억달러)에 샀으니, 한 마디로 사기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취재를 위해 남미에 출장온 지 일주일 째 급기야 ‘사기’라는 단어를 듣게 됐다.

사비아를 공사에 팔았던 미국인 윌리엄 캘롭은 1993년 ‘20년 동안 74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하고 페루 정부로부터 회사 운영권을 땄다. 그는 16년 뒤인 2009년 초 회사를 한국과 콜롬비아에 12억달러에 팔았다. 게다가 거액의 양도세 납부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세운 지주회사를 매각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특명으로 자원 외교 기치를 내걸고 세계 석유 시장에 뛰어든 ‘풋내기’ 석유공사는 사실상 그의 ‘먹튀’ 행위를 도왔다.

석유공사와 페루 정부가 맺은 계약은 개발 허가권을 뜻하는 라이센스 계약이 아닌 서비스 계약이다. 석유공사는 딸라라 해상 시설을 빌려 기름을 뽑아내는 권리를 지닐 뿐, 시추 시설이나 생산된 기름의 판매 권한은 모두 페루 정부에 있다. 페루 정부가 기름을 생산하는 석유공사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일종의 ‘하도급 계약’인 셈이다. 자코네티 교수가 ‘사기’라고 말하는 근거는 계약의 이런 형태 때문이다. 그는 “계약 특성상 사비아가 쓰는 해상 타워나 배 등은 사실 페루 정부의 것이고, 석유공사는 단지 이를 빌려 쓰는 것”이라며 “실제 그가 판 것은 사실상 서비스 계약서, 즉 종이 한 장”이라고 말했다.

7천억 넘게 투자해놓고
현지에 한국인 상주 직원 1명도 없어
시설물 대부분 ‘소유’ 아닌 ‘임대’에
국내에 석유 반입 못해 ‘자주개발’과도 무관

사비야의 수익성을 장담했던 석유공사는 지금 사비아 매각을 추진 중이다. 김명훈 석유공사 홍보실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비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려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자원개발 사업을 하는 한 사업가는 “사비아가 시장에 나왔지만, 회사 구조가 좋지 않고 인프라도 나쁘다”며 “시장의 관심이 낮다”고 말했다. 수익은 둘째치고 당초 투자금보다 적은 돈을 받고서 팔 수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매입 과정에서 실제보다 많은 돈을 치르는 문제는 사비아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다른 사업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캐나다 하베스트사의 경우 실제 가치보다 수천억원 높은 가격에 인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고, 영국 석유 탐사업체인 다나를 인수할 때도 고가 매입 논란이 일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상과제로 제시한 자주개발률을 높일 수 있는 물량만 있다면 계약의 형태나 가격을 따지지 않은 채 무리하게 계약을 추진한 탓이다.

그러나 사비아는 계약상 석유 확보도 하지 못하는 구조다. 사비아에서 생산하는 원유의 처분권은 한국이 아닌 페루 정부에 있다. 석유공사는 애당초 석유가 아닌 돈을 받는 계약을 맺고서는, 생산량을 자신들의 지분율(50%) 만큼 반영해 이를 석유 자주개발률에 포함시켰다. 이는 국민을 속인 것이나 다름없다.

사비아는 해상에서 뽑은 기름을 파이프라인로 육지에 보내고 있지만 기름 처분권은 페루 정부에 있다. 탈라라/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사비아는 해상에서 뽑은 기름을 파이프라인로 육지에 보내고 있지만 기름 처분권은 페루 정부에 있다. 탈라라/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7일 오후 퇴약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딸라라의 사비아 현지 사무소를 찾았다. 기자가 ‘한국인 직원을 만나고 싶다’고 했으나, 경비원들은 “이곳엔 없고, 리마에 있다”고 답했다. 현지인 직원 700여명이 일하고 있고, 해마다 탐사 광구에 수백억원의 돈이 투입되는 딸라라 사무소에 단 한 명의 한국인 직원도 상주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7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놓고 관리엔 소홀한 것이다. 딸라라에서 만난 한 사비아 직원은 “한국인은 어쩌다 한 명 왔다가 금방 되돌아간다”며 “공동 경영진인 콜롬비아 쪽은 그나마 몇 명이 상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한 주민은 “사비아는 콜롬비아가 단독 운영하는 회사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행태는 비단 석유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광물자원공사는 멕시코에서 벌인 볼레오 동광 사업에 지금까지 1조1534억원을 투자했으나 한동안 단 1명의 상주 직원만을 보내,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 관리 감독을 못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당시 광물공사의 사외이사로 일한 남효응 전 이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2012년 볼레오 현장에 갔더니 한국인 직원이 딱 1명 있었다”며 “막대한 돈을 투자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관리하는지, 공기업이 진짜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6년여 동안 석유공사가 투자한 사비아 탐사광구 10곳 중에 성공한 곳이 한 곳도 없다는 사실도 이런 경영 공백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사비아에서 30년 넘게 일하다 최근 퇴직해 택시 운전을 한다는 한 시민은 “기계를 산다고 돈을 받고서는 실제로는 중고 기계를 사거나, 일을 절반만 하고는 다 했다는 식으로 돈을 빼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20여년 동안 사비아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한 직원은 “경영진인 한국과 콜럼비아 쪽 사이에 문제가 있다. 콜롬비아 쪽이 돈을 떼 먹고 있지만 한국은 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하는 게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사실을 빨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페루 리마의 사비아 사무소에 이런 사실에 대한 의견을 물으려고 찾아갔으나, 이들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리마·딸라라/최현준, 임인택 김정필 기자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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