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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일반

류근일씨, 차라리 당을 만드세요!

등록 :2005-09-06 18:29수정 :2005-09-0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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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9월6일치 칼럼
<조선일보> 9월6일치 칼럼
조선일보 “한나라, 단독집권 포기하고 반김정일연합 나서라”

정치의 계절이 돌아온 것인가. 지난해 탄핵 사태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조선일보>가 다시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5일치 사설에서 이재오·이한구·이상배 의원 등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하야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 중진급의 ‘정치읽기’가 이 수준이라면 한나라당 수준도 알 만하다는 한숨부터 나온다”며 벌써 탄핵의 교훈을 잊었느냐고 준엄히 꾸짖던 조선일보는, 6일치 류근일 칼럼에서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지금부터 ‘국민통합 구국연합’을 구축해 ‘노무현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전략’을 제시했다.

사설이 아닌, 기명 칼럼이라고는 하지만 이 칼럼을 쓴 인사는 ‘언론인’을 자처한 조선일보 간판논객인 류근일씨다. 류씨는 1981년부터 1996년까지 16년을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했고, 2003년 2월 정년퇴임 이후에도 ‘류근일 칼럼’을 써왔던, ‘조선’의 대표 논객이다.

‘언론인을 자처한다’고 표현한 이유는, ‘노무현 이후’라는 류씨의 칼럼이 언론인의 글이라기 보다는 정치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략기획 문건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치 행위자들을 비판·감시하거나 정치 현상을 분석·해석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반노무현 전선으로 총집결하라’(그는 1957년 서울대 재학시절 문리대 신문에 “전체 무산대중은 단결하라”고 썼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이 있다)고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언론인이 아니라 정당인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떳떳하지 않을까.

리어왕·중층자아병은 달리 말하면 “대통령은 미쳤다”?


류씨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리어 왕이 의기소침(depression)과 반발적 허장성세(mania)라는 상반된 병증을 보이는데, 요즘 “대통령 노무현씨가 보이고 있는 일련의 아리송한 언동은 바로 그런 리어 왕식 복합·이상 증세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최근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노 대통령의 뇌에 이상이 있다. 중층자아병, 쉽게 얘기하면 자아균열 현상이 굉장히 강하다”고 주장한 맥락과 같다. 류씨나 공 의원이나 고상한 학술적·문학적 표현을 썼지만, 정말 쉽게 얘기하면 “노 대통령은 미쳤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 식 정치게임에 일일이 대적하기보다는 ‘노무현 이후’를 기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마무리했더라면 그나마 점잖을 뻔했다. “노무현 시대가 생각보다 일찍 말기적 증세에 빠지고 있으니 노무현 이후를 기획해야 한다”는 정도는,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언론인으로서 발언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갑자기 방향이 이상해진다. “2007년 대선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김정일 입맛대로 바꿀 것이냐, 말 것이냐’의 한반도 최후의 결전”이라고 주장한다. “남북 김정일 연합 세력이 한국을 ‘혁명 본사’ 평양에 봉사하는 통일전선 계열사로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소설이나 영화다. 주인공으로는 NL(주사파) 교사들, NL 홍위병, NL 매체, 반미 상업주의 영상물이 등장한다. 류씨는 “집요한 세뇌 공작으로 오늘의 청소년들은 이미 반미 정서에 촉촉이 젖어 있다. 저들이 말하는 ‘반통일 세력’ 또한 조직적이고 자의적인 ‘친일파 낙인 찍기’와 ‘가진 자 때리기’로 마구잡이 인민재판에 내몰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2007년 대선에서 ‘반미·민족·민중’의 쓰나미를 일으켜 (…) 대한민국 건국의 바탕과 정신을 잃게 될 것”이라고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자기 습작노트나 블로그에 썼다면 볼 사람만 찾아보겠지만, 이런 글이 버젓이 ‘대한민국 일등신문’이라고 자랑하는 조선일보에 칼럼이라고 실린다.

낯뜨거운 훈수 “박근혜·이명박·손학규·고건 반김정일노선 연합하라”

물론 이같은 시나리오에 근거는 등장하지 않는다. 인과 관계도 없다. 남북 김정일 연합세력이 이런 시나리오를 갖고 있으니 그저 믿으라는 얘기다. 어쨌든 피아간의 구분이 확실한 류씨는, 적군의 시나리오에 맞서는 아군의 전략을 내놓는다. 이름하여 ‘국민 통합 구국연합’을 구축하라는 것이다. 그는 “한나라당이 단독 집권, 독식 정권의 자만과 과욕을 흔쾌히 털어버려야 한다. (중략) 한나라당이 먼저 제로 베이스에서 독식정권 포기 용의를 밝히고, 모든 정파들이 구국연합정권의 대헌장에 합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류씨의 충고에는 비장감마저 감돈다. 너무 비장해서 오버한 것일까. 아예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들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한다. 한나라당의 박근혜·이명박·손학규씨, 민주당 지도부, 고건씨 등 주요 당사자들이 허심탄회한 역사적 대타협을 하라고. 그런데 너무 깊숙이 발을 담궜다 싶은지, 구국연합의 선봉에 서서 명령을 내리다가 글 마무리에서는 다시 제3자인양 꼬리를 내린다. “그것(역사적 대타협)을 이끌어낼 ‘의병’의 출현을 대망한다”고. 이 ‘칼럼’을 읽고 나서, 왜 김종필씨와 자민련, 중부권신당은 빠졌을까도 궁금했지만, 류근일씨는 자신이 그런 의병이 될 것이지, 왜 의병의 출현을 대망하기만 할까 더욱 궁금했다.

보수언론 깃발 걸고 정치세력 결집시키는 ‘정치투쟁 선봉대’ 노릇

언론 활동이라기 보다는 정치 행위에 가까운 이런 행태에 대해 조희연 교수(성공회대 사회학과)는 ‘보수언론의 기능 변화’로 진단했다. 조 교수는 “보수 정치 세력의 비호 아래서 성장한 보수언론이 이제는 정치적·사회적 보수세력을 결집시키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능동적 행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류근일씨의 칼럼이나 탄핵 정국, 그리고 최근 연정론 정국에서 조선일보 등의 보도를 보면, 보수 정치세력 이상으로 정치적 선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 <류근일은 누구인가>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에서 지은 <조선일보 사람들>은 류근일씨를 김대중씨와 더불어 조선일보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소개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람들> ‘김대중의 데스크-류근일’ 편에 실린 류씨의 청년사는 이렇다.

“류근일은 대학 시절부터 신문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1957년 서울대 정치학과 2학년 때 그는 문리대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전체 무산대중은 단결하라”고 썼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4·19 후에는 민족통일연맹 임원으로 남북 학생회담을 추진했고, 5·16 후인 1961년 9월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7년 3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온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또다시 연루돼 8개월 간 복역했다.”

청년 류근일과 노년 류근일이 같은 사람인지 의아할 정도다. 그런데 그의 사진과 함께 실린 사진설명이 참 희한했다. “청년시절 진보적 학생운동을 이끌다 감옥살이를 한 류근일은 김대중과 함께 조선일보의 대표적인 논객이 됐다”고 쓰여 있다. 지금의 류씨의 시각으로 보자면, “‘남북 김일성 연합세력’의 핵심으로 활동하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전향한 조선일보의 대표 논객”이라고 소개해야 하지 않을까. 참 이상하다. 누가 하면 빨갱이 활동이고, 누가 하면 진보적 학생운동인가.

류씨의 부친과 중앙일보 회장 홍진기가 가깝게 지낸 사이였고, 그 인연으로 류씨는 1968년 출옥 후 중앙일보에 들어가 논설위원을 지냈다. 1981년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입사한 뒤 1988년부터 ‘언론인 김대중’과 함께 기명 칼럼을 썼다. 2002년 김대중 주필의 뒤를 이어 주필을 맡았으며 2003년 2월 정년퇴임한 후에도 계속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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