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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일반

주교·교사·이장·학생·시인까지…들불처럼 번진 양심선언

등록 :2011-11-2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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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원주대교구장 지학순 주교(맨 왼쪽)가 1974년 7월23일 중앙정보부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뒤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옛 성모병원) 앞마당에서 김수환 추기경(가운데)을 비롯한 성직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천주교 원주대교구장 지학순 주교(맨 왼쪽)가 1974년 7월23일 중앙정보부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뒤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옛 성모병원) 앞마당에서 김수환 추기경(가운데)을 비롯한 성직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첫 시작은 지학순 주교
고위성직자 발표 이례적
유신 공개적 부정도 충격
새 투쟁 영감 불러일으켜

■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

“본인은 1974년 7월23일 오전, 형사 피고인으로 소위 비상군법회의에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받았다. 그러나 본인은 양심과 하느님의 정의가 허용치 않으므로 소환에 불응한다. 본인은 분명히 말해두지만 본인에 대한 소위 비상군법회의의 어떠한 절차가 공포되더라도 그것이 본인이 스스로 출두한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끌려간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 첫째 유신헌법은 무효이고 진리에 반한다, 둘째 유신헌법은 인간의 양심을 파괴할 것이다, 셋째 긴급조치 1·4호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자연법 유린의 하나다, 넷째 내 죄목인 내란선동은 조작된 것이다, 다섯째 비상군법회의는 꼭두각시다. … 이상 기록한 것이 나의 기본적 주장이며 생각이다. 이외에는 어떠한 말이 나오더라도 나의 진정한 뜻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타의에 의한 강박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주기 바란다.”

천주교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이날 원주교구의 신자·신부·수녀들 그리고 외신기자들 앞에서 발표한 양심선언문이다.

지 주교는 앞서 4월 대만에서 열린 주교회의 참석차 출국해 유럽을 돌아보고 귀국한 7월6일 오후 4시50분 김포공항에서 중앙정보부원에게 연행·구인되었다. 7월8일 중앙정보부는 이 사실을 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수환 추기경에게 통고했고, 지 주교는 면회를 온 김 추기경에게 자신에 대한 혐의가 왜곡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즉 자신이 김지하(민청학련)에게 돈을 준 것은 오직 한국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 필요해서이지, 결코 국가변란을 획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7월10일 김 추기경과 대통령의 면담 뒤 지 주교는 극히 제한된 자유를 허용받아 샤르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에 연금되었다. 7월15일부터 중정의 엄격한 감시 아래 당뇨병 치료차 성모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이 양심선언 발표 순간 지 주교의 신병은 연금상태에서 구속으로 바뀌고, 그 죄명에 긴급조치 외에 공무집행 방해 등이 추가되었다. 제의를 입었던 몸에는 오랏줄이 묶였으며, 묵주를 돌리는 손에는 차디찬 수갑이 채워졌다.

지 주교의 양심선언은 국내 언론에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거나 기도회에서 낭독되다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동아일보>(75년 1월4일치) 격려광고란에 ‘암흑 속의 횃불’이란 제목으로 그 전문이 공개되었다.

이는 고위 성직자 이름으로 발표한 형식도 이례적이었을 뿐 아니라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공개적으로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는 점에서도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70·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한번이라도 검경이나 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받았던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진술서와 각서 쓰기가 얼마나 몸서리쳐지는 고역이었으며, 그것을 써주고 나온 뒤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는지를. 그런 만큼 지 주교의 양심선언은 복음이자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서광과도 같았다. 이는 앞으로 전개될 양심선언 운동의 전범이자 새로운 민주화 투쟁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문 ‘암흑 속의 횃불’은 1975년 1월4일치 <동아일보>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이름으로 전문이 공개됐다.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문 ‘암흑 속의 횃불’은 1975년 1월4일치 <동아일보>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이름으로 전문이 공개됐다.
왜 ‘양심선언운동’이었나
유신정권 탄압 집요해져
양심파괴 사태 직면해
스스로 자구책 내놓은 것

■ 민주회복국민회의와 양심선언운동

양심선언 운동을 제창하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려면 당시 민주화 투쟁이 당면한 전후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74년 11월27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2층 소회의실에서 재야인사 71명은 연명으로 ‘민주회복 국민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12월25일에는 명동 와이엠시에이(YMCA)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민주회복국민회의를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그동안 재야 민주화운동의 구심체로 활동해왔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것이다.

국민회의는 ‘11월27일의 국민선언 정신에 따라 민주체제를 재건·확립하기 위한 전국민적 운동을 발전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연합체’라는 규약을 채택하고 상임대표위원에 윤형중, 대표위원에 이병린·이태영·양일동·김철·김영삼·김정한·천관우·강원용·함석헌을, 운영위원에 홍성우(사무국장)·함세웅(대변인)·한승헌·김정례·김병걸·임재경 등을 선임했다. 윤보선·김수환·김대중 등 18명은 고문으로 위촉했다.

상임대표위원은 대표위원 가운데서 호선으로 선출하되 임기는 2개월씩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이는 민주적으로 운영하자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유신정권의 혹심한 탄압 아래서 책임과 고난을 분산하려는 고육책이기도 했다. 사무국이 따로 없던 초기에는 상임대표위원과 대변인 중심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함세웅 신부를 도와 성명서를 작성하고 발표하거나, 내부연락 등의 일을 맡게 되었다.

그때가 동아일보 기자들의 ‘10·24 언론자유실천선언’ 와중이어서 그나마 국민회의의 활동이 조금씩 언론에 알려질 수 있었다. 백지광고 사태 이후 75년 3월15일 150명 대량 해직 사태 이전까지 짧은 기간이나마 기자들이 국민회의 활동을 적극 보도한 덕분이었다. 함 신부가 맡고 있던 응암동성당에서 밤새워 성명서를 쓰고 타자를 쳐서 등사하면, 아침에는 안국동에 있던 신민당사에 나가 게시판에 붙이거나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어렵게나마 이렇게 국민회의가 민주회복운동의 중심체로 자리를 잡아 나가자 서울은 물론 각 지역에서도 민주회복운동 조직이 자생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출범 한달도 채 안 된 75년 1월 중순에 산하 지역 조직이 50여개에 이르렀다. 그에 따라 유신정권의 탄압도 더욱 집요해졌다.

물론 정권은 국민선언 때부터 문교부를 통해 김병걸 교수(경기공업전문대)는 권고사직, 백낙청 교수(서울대)는 파면을 시키도록 압박하는 등 곳곳에서 정치보복이 이루어졌다. 선언 서명자 또는 운영위원을 연행한 뒤 강박과 공작을 통해 탈퇴 또는 사퇴서를 쓰게 하고, 그것을 국민회의로 우송한 적도 있었다. 함석헌·천관우·계훈제·이태영 등 관련 인사들의 가택연금·연행·강제임의동행은 다반사였다. 홍 사무국장을 비롯해 김정례·김병걸 등 그들의 요구에 굴하지 않는 사람은 장기간의 구류에 처분하거나 협박해 조직 자체를 와해시키려 했다.

다른 한편으로 정권은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획책하고 있었다. 국민회의를 비롯한 광범위한 국민 저항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구속 인사에 대한 인권문제로 국제여론도 악화되자 궁지에 몰린 박정희는 75년 1월22일 대통령 담화를 통해 2월12일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반대의사 표시는 허용하지 않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마지막 수단이 갖는 호소력
구속은 물론 생명도 걸어야
선언한 사람만의 것이 아닌
같은시대 모든 사람의 선언

1974년 12월25일 출범한 민주회복국민회의는 이듬해 2월3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거부와 양심선언 운동을 발표하는 장면(<동아일보>). 상임대표위원인 윤형중 신부(오른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변인 함세웅 신부가 필자(김정남)의 초안을 바탕으로 작성된 선언문을 읽고 있다.
1974년 12월25일 출범한 민주회복국민회의는 이듬해 2월3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거부와 양심선언 운동을 발표하는 장면(<동아일보>). 상임대표위원인 윤형중 신부(오른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변인 함세웅 신부가 필자(김정남)의 초안을 바탕으로 작성된 선언문을 읽고 있다.
양심선언 운동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국민회의가 국민투표 반대와 함께, 민주화 투쟁 탄압에 맞서는 자구책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2월3일 기자회견을 통해 ‘양심선언 운동을 전개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했는 그 초안은 내가 썼다.

“우리는 왜 양심선언 운동을 전개하는가. 최근 당국은 민주인사에 대한 불법적인 연행과 정치보복을 자행, 강제로 민주인사들을 정보수사기관에 끌고 가 그들로 하여금 본인의 자유의사와는 관계없이 기관원이 불러주는 대로 각서와 진술서를 강요했다. 그것을 빌미로 압력을 가중시키고 각서나 진술서대로 이행을 위협하는 등 인권유린은 물론, 그 괴롭히는 방식이 날로 치열·간교해지고 있다. 연행되어 각서를 쓰고 나올 때까지의 그 정신적·육체적 고문행위는 경험한 사람이면 누구나 몸서리를 치고 있다. … 이와 같은 양심파괴 사태에 직면하여 스스로의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양심선언 운동을 벌인다.”

성명에는 양심선언 운동이 폭압정보정치에 맞선 비폭력·무저항 투쟁이자 방어 수단이라는 것, 이를 통해 민주인사들 사이의 신뢰와 동지 의식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임을 명시했다. 양심선언 운동의 구체적 방법으로는 정보수사기관에 끌려가기 전후 녹음이나 문서로 양심선언문을 작성해 가능한 한 널리 공지하되 그렇지 못한 때는 교회나 성당, 성직자나 신뢰할 수 있는 인사에게 맡기도록 했다.

호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의 초등학교 교사 허헌구는 양심선언을 통해 2·12 국민투표를 앞두고 교육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투표 획책 과정과 대리투표 사실을 폭로했다. 공화당원 김진환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27명분의 투표용지로 대리투표한 사실을 고백했다. 또다른 공화당원 김무길도 부정투표의 실상을 폭로했다. 2월20일에는 충남지역의 이장 한 사람이 “민주공화당의 면 관리장이 이장단 회의에서 투표율과 찬성률이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권자 투표통지표를 회수할 것을 지시”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4월11일 서울농대생 김상진은 농대생들의 시위 현장에서 양심선언을 발표하면서 할복했다. 생명을 건 양심선언이었다. 그때 그의 결의와 목소리는 비장하기 짝이 없었다. 이어 8월에는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을 보낸다”로 시작되는 김지하의 양심선언이 일본의 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를 통해 한글·영문·일문으로 발표되었다. 이는 국내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범세계적인 김지하 구명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양심선언은 이후 민주화 투쟁의 전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졌다. 양심선언은 폭압의 시대, 불의에 짓밟히면서도 어디 호소할 데조차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저항수단으로서, 어둠 속에 갇힌 진실을 빛 속에 드러내는 방편으로서, 저 깊은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나와 우리들의 양심을 밝히는 시대의 메시지로 그때마다 중요한 구실을 했다.

양심선언은 구속은 물론, 생명까지도 걸어야 하는 그 비장성과 엄숙성 때문에 엄청난 생명력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양심선언 내용이 곧 진실임을 확신했고, 그에 지지와 성원으로 응답했으며, 그의 수난에 동참했다. 그리하여 선언은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닌, 같은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의 양심선언이 될 수 있었다.

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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