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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25 21:11 수정 : 2007.12.26 17:26

1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신군부 ‘거수기 국회’ 여성계 대표로
보안법등 악법시비 법안 통과시켜
국보위 해체뒤 민정당 전국구 의원

인수위원장 임명 과정에서 논란을 빚은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의 ‘국보위 전력’은 구체적으로는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경력이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1980년 10월27일 전두환 대통령이 국회와 정당을 해산시키고, 국회를 대신해 입법 기능을 담당할 기구로 만든 것이다. 기존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에 입법 기능을 더해 격상시킨 것이다.

국가보위입법회의에는 군부 인사와 경제계·종교계·법조계·학계·문화계 등 각계 대표 81명이 입법의원으로 참여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당시 김정례 여성유권자연맹 회장, 김행자 이화여대 교수, 안목단 군경미망인회 회장 등과 함께 여성계 대표로 참여했다. 안씨를 제외한 3명은 이후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81년 4월10일까지 존속하면서 신군부의 ‘거수기 국회’ 노릇을 했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215건의 안건을 접수해 모두 가결했으며,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국가보안법·노동법·집시법 개정안 등 악법 시비가 일었던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이경숙 위원장은 이런 경력과 관련해, 2006년 4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구색을 갖추기 위해 (신군부에서) 숙명여대와 이화여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한 명씩 데려간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당시 37살이었던 이 위원장은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잠깐 이야기나 하자고 해서 갔더니 임명장을 주는 날이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후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발탁된 데 대해서도 “한창 공부에 불이 붙었는데 별안간 국회의원 하라니까 너무 싫었다. 그때는 국가비상 시기였고, 끝까지 사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국회의원 한 덕으로 만났던 정계, 재계, 관계 인맥이 학교의 해묵은 난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줬다. 국회의원 경험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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