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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왜 한국정부는 동해/일본해 ‘병기’를 주장할까요?

등록 :2020-09-20 14:28수정 :2020-09-2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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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길윤형의 알고싶어

한국, 1992년 UN 가입 뒤
‘동해/일본해’ 병기 운동 해와
한-일 외교전 속에 협상 장기화되자
국제수로기구, 이름 대신 숫자 표기 제안
그동안 해 온 병기 운동 방향 전환 필요
‘구글맵의 병기’ 확대 등 선택과 집중해야
‘동해 병기’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동해연구회가 17~19일 강릉에서 26회 국제세미나 ‘디지털 시대의 지명표기’를 진행했다. 이번 회의에선 점점 확산되는 구글맵 등 디지털 지도에 동해 병기를 확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졌다. 강릉/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동해 병기’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동해연구회가 17~19일 강릉에서 26회 국제세미나 ‘디지털 시대의 지명표기’를 진행했다. 이번 회의에선 점점 확산되는 구글맵 등 디지털 지도에 동해 병기를 확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졌다. 강릉/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오늘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금은 들어봤을 ‘동해 표기’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합니다.

먼저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한국 정부가 1992년부터 동해 표기와 관련해 유지하고 있는 일관된 입장은 무엇일까요?

1. 국제적으로 일본해(Sea of Japan)로 되어 있는 동해 표기를 동해(East Sea)로 변경

2. 국제적으로 일본해로 되어 있는 표기를 동해/일본해로 병기

답은 2번입니다.

한국 정부가 국제무대에서 동해 수역의 일본해 ‘단독 표기’에 이의를 제기하며 동해 ‘병기’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28년 전인 1992년 8월 제6차 유엔(UN) 지명표준화회의를 통해서입니다.

한국인들에겐 너무 당연한 동해 표기와 관련해 대응이 이렇게 늦어진 것은 남북 분단이란 가슴 아픈 현대사와 관련이 깊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엄혹한 냉전이 시작되며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의 유엔(UN) 가입은 장기간 현실화될 수 없었습니다.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이 이뤄진 것은 유엔이 출범하고 40여년이 흘러 냉전이 해체된 뒤인 1991년 9월의 일입니다.

외교부 국제표기명칭대사를 지낸 유의상 동아시아평화번영연구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동해 병기 운동이 시작된 직접적인 계기는 유엔 가입 이후 유엔의 여러 기구들이 한국 정부에 보내온 여러 공문서들 때문이었습니다. 이 문서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에 크게 충격 받은 외교부는 1992년 6월 문화부·교육부·공보처·교통부(수로국)·건설부(국립지리원)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쳐 7월 ‘동해명칭의 국제적 통용추진 대책안 건의’라는 문서를 만들게 됩니다. 당시 정부 내에선 한국의 동해와 관련된 주장이 독도를 둘러싼 영토 문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한국이 동해 병기를 내세우면, 일본이 독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에 공격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복잡한 토론 과정을 거쳐 관련 내용이 그해 8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되며 동해 표기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방침이 확정됩니다.

그 내용이란

1. 동해의 영문 표기를 East Sea로 하고

2. 국제적으로 Sea of Japan과 병용되는 것을 목표로

각종 국제회의에서 우리 입장을 제시 및 홍보해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한국 정부의 ‘동해 병기’ 운동은 크게 두가지 갈래로 추진돼 왔습니다. 첫째는 2017년 국제지명표준화회의·UNCSGN와 통합된 국제지명전문가그룹(UNGEGN)입니다. 한국은 1992년 8월 제6차회의를 시작으로 유엔 무대에서 꾸준히 동해 병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오랫동안 동해 병기를 추진했던 국제수로기구의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3판(1953년). 동해를 일본해(Japan Sea)로 단독 표기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오랫동안 동해 병기를 추진했던 국제수로기구의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3판(1953년). 동해를 일본해(Japan Sea)로 단독 표기하고 있다.
두번째는 국제수로기구(IHO)를 통한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이 중요했던 것은 국제수로기구가 1929년 발간한 해도제작 지침서인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1929년에 제작된 이 문서는 동해를 일본해(Japan Sea)로 단독 표기하고 있었고, 이 내용이 이후 2판(1937년), 3판(1953년)으로 계승됩니다. S-23의 4판 발행 때는 Japan Sea의 명칭을 ‘반드시’ East Sea/Japan Sea로 병기하게끔 만든다! 외교부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동해 병기 운동은 이를 당면 과제로 내세워 꾸준히 국제적인 캠페인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한국의 병기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습니다. 한-일 양국 정부는 2000년대 중반 3차례 직접 협상을 시도했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독도를 두고 일본과 치열하게 대치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당시 아베 신조 총리에게 동해를 ‘평화의 바다’ 또는 ‘우의의 바다’로 부르자는 즉석 제안까지 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이 제안을 그 자리에서 거절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를 보여주듯 일본 외무성의 공식 홍보자료인 <일본해-국제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널리 사용되어 온 유일한 명칭>을 보면, “일본해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유일한 호칭이며 분쟁의 소지가 될 여지는 없다.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 국제수로기구 등의 국제회의의 장에서 한국 등이 이 같은 주장을 할 경우에 일본은 단호히 반대할 것”이라며 결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한-일 간에 치열한 대립이 장기화되다 보니, 국제수로기구의 입장이 난처해지게 됩니다. 이 기구는 1953년 이후 반세기 넘는 시대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S-23의 4차 개정판을 만들기 원했지만, 동해 명칭 표기가 걸림돌이 되며 회원국 간 최종 합의가 좀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국제수로기구는 2002년 완성한 4차 개정판의 최종 초안에 동해 부분을 백지로 남겨둡니다. 그 이후 15년 넘게 한-일 간에 같은 얘기가 반복되자 국제수로기구는 2017년 4월 총회에서 동해 표기와 관련된 3대 당사국인 남·북·일 3자가 따로 모며 비공식 협의를 해 결론을 내라고 의결했습니다. 그에 따라 2019년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3자 대화가 이뤄졌지만, 일본은 끝내 한국의 병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최근 국제수로기구가 이 끝없는 논쟁을 끝낼 하나의 결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됩니다. 한-일 양국에 최근 수역을 지칭하는 숫자로 된 체계(a system of unique numerical identifier)의 도입을 제안한 것입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국제수로기구 차원에선 각각의 바다 이름은 사라지고 각 수역엔 숫자로 된 코드가 붙게 됩니다. S-23 4차 개정판에서 동해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를 둘러싼 한-일의 치열한 외교전이 길어지자, 바다 이름을 숫자로 바꾸자며 갈등의 소지를 없애버린 셈입니다. 이 안건은 애초 4월에서 11월로 연기된 국제수로기구 총회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동해/일본해 병기를 주장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홍보 자료 <동해>(2014).
동해/일본해 병기를 주장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홍보 자료 <동해>(2014).
1994년부터 동해 병기를 위해 노력해 온 비영리 단체인 동해연구회는 17일부터 19일까지 2박3일 동안 강릉에서 26번째 국제세미나 ‘디지털시대의 지명표기’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주성재 회장(경희대 교수)은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지명을 과연 숫자로 대체할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S-23에 동해를 싣고자 노력해 온 한국 정부도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끝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S-23에 동해를 병기한다는 운동 목표가 사라지게 됐으니, 이후 운동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제안이었습니다.

물론, S-23 4차 개정판을 둘러싼 논란이 마무리된다 해서 동해 병기 문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S-23은 동해를 둘러싼 수많은 현안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실제, 지난 30년 가까운 한국 사회의 노력으로 세계 종이 지도에 나타난 동해/일본해 병기 비율은 40%에 달합니다. 최근 들어 병기 운동은 지도의 디지털화에 적응하는 문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도는 단연 ‘구글맵’입니다. 미국에서 영어로 구글맵에 접속하면 초기화면에 동해 수역은 일본해로 표기됩니다. 동아시아 쪽으로 지역을 좁혀 세 번 축척을 늘여가야 비로소 동해/일본해 병기가 등장합니다. 유의상 소장은 이번 세미나에서 “지명관련 국제기구에서 동해 명칭에 대한 회원국간 피로감이 커져 있는 게 사실”이라며 “향후 운동은 구글 지도, 미국, 유엔(UN)을 3대 교섭 대상으로 삼아 설득력 있게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병기를 확산시켜나가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 국내적으로도 우리 주장이 일본해를 동해 단독 표기로 바꾸는 국수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한-일 양국의 입장을 공히 존중하는 ‘병기’라는 점을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세미나에 참가한 한 일본 기자는 강릉의 경포 앞바다를 바라보며 “저 바다를 일본해라 부르길 원하는 일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도쿄 특파원 시절 일본 도야마나 교토 해안에서 일본인과 대화할 때 “이쪽에서 보는 동해가 아름답네요”라는 말은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 바다는 한국인에게 동해인 것이고, 일본인에겐 일본해인 것입니다.(일본인에게 동해는 서쪽에 있는 바다입니다) 한국의 병기 주장엔 한-일이 서로 차이를 인정하며 공존해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일본 정부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협상에 응해야 합니다.

강릉/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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