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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24 06:40 수정 : 2009.08.24 06:40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차 남쪽을 방문한 북한 ‘특사 조의방문단’의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북 ‘6·15 선언’ ‘10·4’ 선언 이행필요성 전해
이 대통령 ‘비핵개방 3000’ “풀어서” 설명
‘대화 의지’ 확인 성과…우호적 환경 조성

이 대통령-북 조문단 면담

이명박 대통령과 북쪽 ‘특사 조의방문단’의 23일 면담에서 북쪽이 특사 교환이나 정상회담은 제안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양쪽은 이날 기존 주장을 주고받는 선에서 면담을 마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조문단을 매개로 한 최고 지도자들과의 ‘간접 대화’라는 형식을 빌려, 양쪽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는 진지한 대화의 자리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나름의 뜻은 있다.

일단 북쪽 조문단이 이 대통령에게 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 메시지’에는 파격적인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23일 “정상회담이나 특사 요청은 없었다”며 “그렇게 구체적으로 제안하거나, 그런 메시지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북쪽 조문단은 ‘6·15 공동선언’이나 ‘10·4 정상선언’의 이행 필요성 등을 이 대통령에게 전했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그동안 북한이 ‘남북관계의 헌장’이라고 강조해 온 ‘6·15 공동선언’의 취지와 중요성에 대한 이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과의 면담에 배석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현정은 현대그룹과의 면담에서도 두 선언의 이행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남쪽 정부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남쪽 당국의 대북 구상인 ‘비핵·개방·3000’ 원칙을 풀어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핵을 포함한 모든 이슈가 다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남북 양쪽은 서로 ‘근본 문제’를 놓고 자신들의 주장을 주고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만남인 만큼 접점을 마련하거나 서로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는 힘들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과 북쪽 조문단의 면담을 완전히 평가절하할 수는 없어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북쪽이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며, “진짜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라면 뭔가 대화를 원하고 진전을 원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누가 들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그 자리에 참석한 배석자들한테 들었다”고 밝혔다.

또다른 관계자도 “어찌 됐든 우리도 진정성을 갖고 얘기했고 이게 꼭 김 위원장에게 전달됐으면 한다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양쪽이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의지는 서로 확인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어렵게 마련된 자리에서 직접 서로의 속내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날 면담에선 억류된 800연안호 선원들의 귀환 문제나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 등 구체적인 현안은 다뤄지지 않았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연안호 문제는 북한이 당연히 풀어줘야 하는 문제로, 대통령이 거론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다만 실무적인 수준에서 남쪽이 연안호 문제를 제기했으며, 북쪽이 이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이 대통령과 북쪽 조문단의 면담으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8개월 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풀릴 수 있는 우호적인 환경은 조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이명박 역도’(북쪽)-‘대통령한테 욕하지 마라’(남쪽)라며 감정적 대립으로까지 치닫던 남북관계에 비춰 보면, 낯설기까지 한 풍경이다.

그러나 앞으로 남북관계가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으려면, 많은 난제들이 놓여 있다. 첫째로, 이번 면담 성사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대통령의 의지 이외에도 남쪽 정부 내부에서조차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대북 기류가 일정 정도 정리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남쪽 내부 문제로 남북관계가 좌초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이제 남쪽 정부도 국면에 맞는 방향으로 대북 기조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둘째로 북핵 문제가 순조롭게 풀려야 한다. 한 외교전문가는 “이명박 정부가 북쪽의 비핵화 과정을 남북관계와 연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가 속도를 낼 수도 있고 출렁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황준범 이용인 기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