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02 07:24
수정 : 2009.06.02 09:16
‘이 대통령 유감표명’ 요구에 격한 거부감
인적쇄신도 등떠밀려 가기는 싫은 모양새
청와대는 1일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요구하는 한나라당 쇄신특위의 주장에 대해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야당에 이어 여권에서 제기되는 주장의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해법을 고심하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의 핵심 참모는 “쇄신특위의 의견이라는 게 당에서 확정된 것도 아니고,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된 것도 아니다”라며 “지금은 여권 내부 단합에 신경을 쓸 때지, 내부에서 흔들어댈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4월 재·보선 참패와 노 전 대통령 서거, 북핵 위협 등으로 여권이 위기에 처한 만큼 서로 힘을 합쳐야 할 판에 청와대와 당 지도부를 겨냥하는 당내 소장파들에 대한 불만이 깔린 발언이다. 이 참모는 “쇄신특위의 주장대로 한다면 지금까지의 (박연차 관련) 검찰수사도 모두 무시하라는 것 아니냐”며 “당에서 그런 요구가 들어온다 해도 그대로 다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고개를 저었다.
청와대는 특히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이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라는 주장에 극도로 거부감을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왜 이 대통령이 담화문을 내라는 거냐”고 되물었다. 쇠고기 촛불 정국에서 이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 수차례 고개를 숙여 ‘대국민 사과’를 했던 지난해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국정기조 전환 요구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 지난해부터 국정기조 전환 요구가 터져나올 때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공약들을 내걸고 당선됐는데 모두 뒤엎으란 말이냐”는 반응을 보여왔다.
이 대통령은 이날 방송된 라디오 연설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이제 우리 모두 슬픔을 딛고 떠나간 분의 뜻을 잘 받들어 나갔으면 한다”고만 말했다. 책임 문제나 국정기조 재조정 여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물밑으로는 당내에서 제기되는 주장에 나름대로 귀를 기울이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핵심 관계자는 “우리가 당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한다는 것은 아니다. 당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청와대와 내각의 인적쇄신은 청와대도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대목이다. 6월 국회를 마친 뒤 대대적 개편을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들이 청와대 안팎에서 나온다. 또 검찰총장 인사가 그에 앞서 단행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이런 인적쇄신이 당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청와대가 잘못을 시인하는 모양새로 비치는 방식으로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전언이다. 핵심 관계자는 “인사는 대통령 고유권한이다. 당 요구와 상관없이 대통령께서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유감 표명을 할 것인지, 그 방식으로서 ‘대국민담화’가 적절한지 등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당내 논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쇄신특위에서 제기된 의견들이 오는 4일 당 의원연찬회에서 최종적으로 어떻게 결론나는지 지켜봐야 한다”며 “당 전체의 공식적 의견으로 전달될 경우 청와대도 본격 검토에 들어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