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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설마 종이신문 보겠어?”

등록 :2020-11-22 14:58수정 :2020-11-23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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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국가적 차원의 비극이다. 종이신문의 최대 장점은 독자가 원치 않거나 싫어하는 뉴스에도 접할 수 있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신문들이 강한 정파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신문들은 수백년간 이어져온 전통에 따라 자신들의 정파성에 반하는 뉴스도 내보낸다. 어떤 일이 있었다는 정도의 보도는 비교적 충실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스마트폰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난 10월 어느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깜짝 놀랐다. “종이신문 보고 그러신 건 아니죠?” “설마 종이신문 보겠어?” 한 출연자가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것에 대해 다른 출연자들이 보인 반응이다.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귀해졌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종이신문을 보는 게 놀림의 대상까지 된다는 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19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를 보면 종이신문 구독률은 6.4%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연령대별 신문기사 이용 매체를 묻는 질문에 신문기사를 종이신문으로 이용한다는 응답이 10대는 3.7%, 20대는 1.4%, 30대는 2.8%, 40대는 2.6%, 50대는 9%, 60대는 18.2%, 70세 이상 세대는 39.8%로 나타났다. 반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신문기사를 이용한다는 응답은 10대의 76.9%, 20대의 66%, 30대의 66.5%, 40대의 72.9%, 50대의 69.5%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이런 통계에 따른다면, 종이신문은 노년층의 매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나는 60대 중반의 나이인 동시에 신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직업을 갖고 있다. 지금은 구독 신문 수를 5개로 줄였지만 한때 다른 지역신문들을 우편으로까지 받아보는 등 수십개의 신문을 구독했던 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한다. 나의 신문 사랑은 가끔 아파트 쓰레기 더미를 들춰보는 것으로 나타나곤 한다. 읽고 나서 내버린 신문이 얼마나 있나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문을 가끔 구경할 수 있었는데, 요즘엔 허탕 치는 일이 많다. 나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코미디의 소재일 것 같다는 생각에 어찌 스스로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자조하면서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은 책을 읽지 않는 국민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세계 최하위권이다. 그럼에도 종이책을 읽는 게 놀림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일부 연예인이 책을 많이 읽는 걸 미담으로 소개하면서 칭찬하는 걸 보더라도 그렇다. 종이신문과 종이책에 각기 다른 대접을 하는 것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지금 그 이야길 다 하려는 건 아니다. 정파성 문제에만 집중해 말해 보련다.

이른바 ‘가짜뉴스’ 논란이 뜨거운 이슈로 불거진 지 오래다. 도대체 가짜뉴스란 무엇인가? 그간 정치권에서 사용된 용법들을 살펴보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내 마음에 들면 진짜뉴스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짜뉴스다.” 물론 이런 정의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런 논란의 한복판에 종이신문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기레기’로 불리는 신문에 대한 적대감의 수위는 매우 높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나의 기레기는 누군가에겐 ‘참언론’이고, 나의 ‘참언론’은 누군가에겐 기레기”라는 사실이다. 즉, 신문은 이런 ‘정파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었고, 그 결과 ‘신문산업’ 전체가 ‘혐오산업’ 비슷하게 돼버렸다는 것이다.

이건 국가적 차원의 비극이다. 종이신문의 최대 장점은 독자가 원치 않거나 싫어하는 뉴스에도 접할 수 있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신문들이 강한 정파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신문들은 수백년간 이어져온 전통에 따라 자신들의 정파성에 반하는 뉴스도 내보낸다. 작게 처리하느냐 크게 처리하느냐, 어떤 ‘양념’을 쓰느냐에 따라 다소 다른 색깔을 띠긴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일이 있었다는 정도의 보도는 비교적 충실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스마트폰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골라 볼 수 있으며, 그렇게 하게끔 부추기는 알고리즘의 서비스가 가세한다. 그런 뉴스 소비 패턴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요구는 이렇다. “우리의 마음에 풍파를 일으키지 마라. 그저 우리가 믿고 있는 바들을 더 많이 보여달라. 그러면 우리는 그 견해를 읽으며 계속해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우리를 결집시킬 내용을 달라. 우리가 환호할 수 있는 사람을 달라!”(비키 쿤켈의 <본능의 경제학>)

물론 수용자들은 스스로 그런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길을 찾았고, 이는 포괄적 서비스를 제공해온 종이신문에 큰 타격이 되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문의 살길은 소통이다. 신뢰와 권위 회복으로 종이책의 위상에라도 접근해야 한다. 그게 종이신문을 놓지 않는 독자들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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