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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역의사가 보는 ‘지역의사제’의 문제 / 양창모

등록 :2020-08-23 16:40수정 :2020-08-2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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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인턴, 레지던트 등 종합병원에서 수련하는 전공의들이 순차적으로 파업에 돌입하는 2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앞에서 서울대 의대 3학년 학생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이날 인턴과 4년차 레지던트를 시작으로 22일 3년차 레지던트, 23일 1년차와 2년차 레지던트가 업무에서 손을 뗀다. 2020.8.21 연합뉴스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인턴, 레지던트 등 종합병원에서 수련하는 전공의들이 순차적으로 파업에 돌입하는 2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앞에서 서울대 의대 3학년 학생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이날 인턴과 4년차 레지던트를 시작으로 22일 3년차 레지던트, 23일 1년차와 2년차 레지던트가 업무에서 손을 뗀다. 2020.8.21 연합뉴스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춘천에는 고탄이라는 마을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춘천시이지만 시내에서 차로 40분은 가야 하는 곳이다. 그 마을에 왕진을 가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은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오랜 기간 침대 생활을 했다. 발가락과 손가락 관절이 뒤틀려서 걷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연히 차를 운전하지 못한다.

이분은 진료를 어떻게 볼까? 한국에서는 이런 분들조차 의사를 만나려면 병원에 가야 한다. 의사가 이분들을 찾아오는 일은 없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 일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왕진은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병원 진료가 예약된 날은 아침 일찍 콜밴을 부르고 요양보호사가 오면 나갈 준비를 한다. 할머니를 업고 콜밴으로 옮겨 태운다. 할머니의 뼈는 귀한 도자기나 다름없다. 옮기다가 조금이라도 부딪히면 바로 골절된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오죽하면 다리를 주물러드리고 싶어도 뼈가 부러질까 봐 주물러드리지 못한다고 요양보호사가 얘기할까. 대학병원에 도착하면 이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휠체어로 옮겨 탄다. 순환기내과에 갔다가 3분 진료, 내분비내과에 가서 또 한참을 기다려 3분, 다시 정형외과에 가서 또 3분, 그렇게 몇분짜리 진료를 보기 위해 하루를 다 쓴다.

고탄 마을의 다른 노인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근처에 병원은 고사하고 보건지소도 없어서 의사를 만나려면 차를 타고 춘천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 오랜 농사로 허리 통증과 무릎 관절염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노인들이 아픈 허리와 다리를 끌고 버스를 타고 다시 택시를 갈아타며 의사를 찾아간다. 그 버스마저도 고작 하루 한두 번 다닌다. 그걸 놓치지 않으려 기를 쓰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것이다.

공공의료의 결여가 누군가에게는 추상적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구체적인 고통이다. 그 고통의 장소에 와보지 않고 고통의 대안을 얘기하는 것은 결국 지금 이곳에서 필요한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정책이 수립될 가능성을 높인다. 고통의 현장에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람으로서 나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지난 3개월 동안 왕진을 가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들을 대표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대신할 수 없다. 지난 수년 동안 할머니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최근의 나를 제외하고) 딱 두 사람뿐이었다. 요양보호사와 이상한 사람(병원 브로커가 의심되는 그는 원하지도 않는 한의원 진료를 보게 해서 할머니를 화나게 만들었다). 행정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여기에 와서 현장을 보는 일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골집에 갇혀 누워 있는 분들의 목소리는 결코 복지 공무원의 책상머리까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공론화되고 있는 ‘지역의사제’란 이름은 수정되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은 지역에 머물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공공의료에 머물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소위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춘천 시내의 의사들은 차고 넘친다. 내가 일하던 병원만 해도 지난 5년 동안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새로운 의원이 다섯 군데가 더 생겼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고탄 마을까지 오지 않는다. 잇속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의사의 책무를 얘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고탄 마을의 힘겨움은 춘천 시내 의사들의 이기심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다. 이 일은 명백히 공공의료의 책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역의사제가 아니라 공공의사제이며 십년 뒤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부터 당장 시작되어야 한다. 돈을 더 들여서라도 병원에 가기 힘든 시골 동네에 왕진 갈 의사를 뽑고 마을회관에서라도 진료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지역의사제가 자리를 잡는 데 필요한 십년, 이십년 뒤는 기다리면 되는 시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을의 어르신들 중 상당수가 그때에는 이미 돌아가시고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창모 ㅣ 호호방문진료 센터장·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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