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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코로나19 시대의 전문가

등록 :2020-04-09 17:34수정 :2020-04-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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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ㅣ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중국발 입국 금지, 마스크 착용 권고, 개학 연기 등 코로나19 사태 중 논란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전문가의 말을 들어라”라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 정부는 당연히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코로나19라는 총체적 재난 앞에서 무엇을 전문으로 하는 어떤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전문가들이 각자 코로나19가 자신의 전문 영역이라고 주장할 때 서로 다른 관점과 제안을 취합하고 조정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훗날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복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게 될 몇몇 회의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질본)의 ‘원인불명 감염병 진단분석 태스크포스’는 지난해 12월17일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가족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을 앓기 시작하고 이것이 병원과 직장을 통해 확산되는 시나리오를 놓고 도상훈련을 했다(<한국일보> 보도). 11월 중순부터 중국에서 감염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코로나19 감염증의 원인인 바이러스가 공인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질본의 바이러스 연구원과 역학조사관들이 태스크포스의 이상원 질본 감염병진단관리과장 등과 함께 훈련에 참여했다.

올해 1월10일에는 질본의 ‘감염병 위기관리대책 전문위원회’가 서울 시내에서 회의를 열었다. 질본의 운영규정에 따르면 이 전문위원회에는 ‘감염병의 예방 또는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감염병 관련 의학(감염내과, 호흡기내과, 예방의학 등), 약학, 보건분야, 홍보, 건축 등의 전문가’ 등이 참여하도록 되어 있다. 감염병 공무원과 감염병 관련 전문가들은 아직 코로나19라는 이름을 얻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 퍼지고 있던 집단 폐렴의 국내 유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이에 대비한 진단검사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고 논의했다. 회의 직후 질본은 코로나19 검사법 개발에 들어갔다(<시사인> 보도).

1월27일에는 서울역 회의실에서 질본의 이상원 과장이 진단시약 업체 20여곳의 대표들과 만나 코로나19 진단시약을 빠르게 개발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국내에는 4명의 확진자가 있었다. 이후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긴급사용승인을 받는 시약이 나왔고 곧 여러 업체가 시약과 진단키트를 생산하고 보급하기 시작했다(<뉴시스> 보도). 그 결과 대규모 검사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이 회의들의 공통점은 공무원과 의료인과 과학자가 만나서 상황을 진단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이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때 공무원 혹은 정부는 감염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비전문가가 아니라 비상시 보건행정 조직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또 업계와 시민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에 정통한 전문가로서 참여했다. 바이러스와 몸을 이해하는 전문가, 사람과 조직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만나 각자의 전문성을 교환한 다음, 과학과 의료 전문가는 실험실과 병원으로, 보건행정 전문가는 상황실과 브리핑룸으로 가서 자기 일을 했을 때 비로소 코로나19 대응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막 시작되던 무렵 서울의 회의실 세 곳에서 이루어진 것은 결국 바이러스와 인간, 자연과 사회를 동시에 관리하고 이를 위해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동원하려는 전략의 수립과 실천이었다. 역학자인 서울대 보건대학원 황승식 교수는 이것이 “본질적으로 과학인 동시에 정치”인 방역의 특성이라고 강조한다(<시사인> 인터뷰). 코로나19의 방역에 실패하는 국가가 있다면 그것은 최고 수준의 과학자와 의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당대 최선의 지식을 사회가 견딜 수 있는 속도와 방식으로 구현하는 고도의 정치적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닥친 많은 곤경에는 과학의 문제가 아닌 것이 없지만 과학만의 문제인 것도 없다. ‘과학’ 대신 다른 어떤 전문 분야를 넣어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지식을 모으고 결정을 내리고 행동해야 하는 총체적 문제들이다. 다들 “내가 전문가이니 내 말을 들어라”라는 식으로 나선다면 감염병도 또 그것이 초래할 엄청난 사회적 결과도 막지 못한다.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잘 알고 있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마치 국회 교섭단체처럼 모여 협상하고 합의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때에 비로소 우리는 바이러스의 움직임을 늦추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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