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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과 Z사이] 방구석에서 만난 예술 / 권도연

등록 :2020-04-01 18:38수정 :2020-04-02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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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연 ㅣ 샌드박스네트워크 크리에이터 파트너십 매니저

어렸을 적 서점엔 만화로 된 위인전이 참 많았다. 재미와 학습을 동시에 잡을 수 있었기에 꼭 필요한 책만 고르라는 부모님과 좋은 타협점이 되었다. 만화 주인공이 된 인물들은 각종 고난과 위기를 맞닥뜨리지만 곧 극복하고 위인으로 탄생했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도 성공했고,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을 겪었다. 물론 실재한 이야기지만 어린 마음에 용기보다는 두려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예술가의 서사는 주로 고통을 중심으로 쓰인다. 위기 속에서 예술은 꽃피운다는 말이 있듯, 거대한 고난은 예술 작품의 재료가 됐다. 여행 스타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지인은 “맞아,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라며 내 엉뚱한 주장에 공감을 해주었다. 미술관보다 자연경관을 선호하는 서로의 취향을 해석하며 도달한 결론이었다. 예술에 대한 거리감의 시작은 인생의 고통을 알기엔 어린 나이에 접해버린 예술가의 서사 때문일지 모른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예술은 늘 아름답고도 먼 존재로 느껴졌다. 강렬한 작품을 감상할 때 기절을 하거나 호흡 곤란을 느낀다는 ‘스탕달 증후군’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땐 벽이 더욱 높아졌다. 다양한 작품과 예술가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나의 부족한 공감력 쪽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저 삶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요소라는 점을 머리로는 알았다. 하지만 어쩐지 공연장의 무게는 무거워 보였고, 미술관에 서 있는 내 모습은 어색하기만 했다.

코로나19의 위기가 세계를 뒤덮은 지금, 예술은 의외의 공간에서 대중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한 이탈리아 도시의 발코니에서는 외출이 제한된 시민들의 음악이 연주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누군가는 오페라를 열창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바이올린을 켰다. 흔히 생각하는 프로페셔널한 연주는 아니었다.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를 위로하기 위한 발코니 합주는 영상을 통해 세계 곳곳의 집 안에서 연주되었다. 많은 이들의 마음을 동하게 하였으니, 이 연주는 인간다움에서 본질을 찾는 예술 그 자체의 감정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오프라인으로 이뤄지는 많은 곳에 큰 어려움을 선사했다. 특히 생동감이 관객과 직결되는 예술계에 더 큰 타격이 가해졌다. 크고 작은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예술계는 고립보다 공감을 선택했다. 온라인이라는 공간과 동영상이라는 무기가 곧 무대나 전시 공간이 됐다. 최근 조성진, 예브게니 키신과 같은 세계 최정상 피아니스트들은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온라인 무료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무대 위에 올랐던 피아니스트들은 편한 실내복을 입고 각자의 방 안에서 세계인들을 향해 섬세한 연주를 건넸다.

방구석이 관객석이 되는 경험은 장르를 넘나들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을 비롯한 음악 공연계와 대중문화계는 물론 오르세미술관, 루브르박물관과 같은 미술계까지 함께 동참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개막이 미뤄진 전시를 온라인 영상으로 공개해 집에서 만나는 미술관을 소개하기도 했다. 영상 속에 등장한 큐레이터는 화면 너머의 관객들에게 한국 근현대 서예전을 순서대로 차근히 설명해주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오’(O) 쇼는 주최사인 ‘태양의 서커스단’의 아이디어로 무료 온라인 공연을 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말이 점점 더 공감되는 요즘이다. 내가 가졌던 예술과의 거리감이 무색할 만큼, 보란 듯이 예술은 인간의 관계를 틈틈이 메우고 있다. 물론 급증하는 동영상 트래픽과 기술이 뒷받침해준 덕이긴 하지만 말이다. 집에서 발 뻗고 시청하는 방구석 콘서트 덕에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해소하고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견뎌내고 있다.

먼 훗날에는 오늘의 위기가 또 하나의 ‘옛이야기'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루빨리 오늘의 어려움이 종식되어 온라인 예술 공연들이 비 온 뒤 무지개처럼 더 만끽될 수 있기를 바란다. 위기 속에서 수많은 꽃이 피었듯, 고난 속에서 예술이 존재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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