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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젠더적 접근이 필요한 순간

등록 :2020-03-24 18:17수정 :2020-03-25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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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많은 나라에서 급한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다. 미디어 보도 역시 눈앞의 사건 진행에 압도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젠더적 관점에 주의를 환기하는 목소리가 국제 인권운동과 보건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무척 중요한데도 그동안 너무 경시되어온 시각이다.

젠더에 관한 지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사, 간병인, 콜센터 근무자 중 여성이 많은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비정규직, 비공식 부문의 여성들은 경제가 멈추면 당장 막막해진다. 개학이 늦춰지면서 어린이 양육을 많이 책임지는 어머니들의 고충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젠더 시각에서 체계적으로, 분석적으로 다룬 논의는 드물다. 건강과 질병의 문제가 성별에 따라 차등적으로 발현된다는 사실은 기본에 속한다. 아주 분명하고 큰 차이가 난다.

몇 해 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사태가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유독 여성들의 감염률이 높았다.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 결국 사회문화적 젠더의 차이가 삶과 죽음을 가를 정도의 요인이었음이 밝혀졌다. 아픈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 중 여성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현장의 종사자 중에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신에게 영향을 줄 중요한 정책 결정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게다가 역병으로 세상이 흉흉해지고 경제조건이 나빠지면서 가정폭력이 늘었다. 재난 후 가족 내에서 성별에 근거한 폭력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감염병이 도는 화급한 상황이라 해도 단순히 남녀 환자의 숫자만 체크해서는 안 된다. 질병의 1차 효과가 있고, 2차 효과가 있다. 1차 효과는 바이러스가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감염자나 사망자 숫자에서 남녀 차이를 따지는 방식이다. 이런 정보는 쉽게 조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젠더에 관한 한 간접적인 2차 효과도 중요하다. 보건의료 노동력의 젠더화된 성격을 따져보면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세계적으로 보건의료 분야에는 다른 산업 분야보다 여성이 훨씬 더 많다. 종사자의 70% 이상이 여성이다. 바이러스 사태의 한복판에 있었던 중국 후베이성의 경우 그 비율이 무려 90%라고 한다. 우리는 전염병의 최일선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직무를 수행하는 여성 보건의료 종사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학교가 문을 닫은 나라들, 예를 들어 한국, 중국, 홍콩, 이탈리아 등에서는 여성의 자녀양육 부담으로 인해 이미 경제적 여파, 고용, 사회적 기회의 불평등한 상실이 나타나고 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에 많이 있는 지역 내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코로나 사태로 해고, 송금 중단, 출입국 제한, 가족부양 문제 등으로 아주 딱한 상태에 놓이게 됐다고 한다.

의료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격리조치 시에도 남녀 차이를 고려한 접근이 이루어졌는지 젠더 시각으로 봐야 한다. 여성의 특징을 고려한 환경과 서비스, 안전 조치가 제공되었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다. 평소에 공공의료를 줄였던 나라에서는 이번처럼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다른 쪽에서 병상, 의료진, 의료자원을 끌어올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여성들의 일상적인 의료 욕구가 침해받으면서 젠더적 인권침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5년 전 시에라리온에서 모성보호용 의료자원을 에볼라 대책으로 전용하는 바람에 산모 사망, 사산, 영아 사망 등 3600명의 추가 사망이 발생한 적도 있었다.

젠더적 시각이 적은데다 보건의료계에서 여성 리더들이 아직도 소수이기 때문에 문제가 잘 안 풀리기도 한다. 최근 ‘글로벌헬스 50/50’이라는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보건의료 관련 기관의 대표급으로 남성이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런 추세를 적극적으로 시정하지 않으면 몇십년이 지나도 현실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은 사회적으로 돌봄 역할을 많이 수행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전염병 상황을 누구보다 더 빨리 포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환자 발생이나 미묘한 변화의 조짐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은 전문가들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일반 여성 시민들이다. 이렇게 본다면 젠더적 접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인구집단 모두에게 득이 되는 현명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여성, 여성건강에 관한 이슈가 국내외에서 큰 화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올해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를 시작한 지 5년, ‘유엔 여성’(UN Women)을 창설한 지 10년, 유엔 안보리에서 여성·평화·안보에 관한 획기적인 결의안이 나온 지 20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선언이 나온 지 25년이 되는 해다. 특히 베이징 선언 이후 젠더 불평등이 여성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많이 밝혀진 상태이므로 그간의 성과 위에서 새로운 모색을 할 때가 되었다.

여성건강에 있어 젠더적 분석방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건강, 여성인권, 젠더 평등, 젠더 규범성, 젠더 편견, 여성 리더십 등의 차원을 따져보면서 젠더적 요소가 계급, 빈곤, 인종, 민족, 성적 지향 등 구조화된 사회 불평등 현실과 어떻게 교차하고 변형되고 심화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국의 여성건강에 대해 조금 알아보자. 2003년 보건복지부에서 한국 여성의 건강통계를 처음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최근 2016년 질병관리본부에서 <수치로 보는 여성건강>을 펴내면서 기본 실태가 알려졌다. 여성 노인 중 빈곤한 사람이 거의 절반이라는 놀라운 사실도 그때 밝혀졌다.

19살에서 64살 사이 성인 여성 중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의 자가평가 건강수준이 아주 낮았고, 65살 이상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65살 이상 여성으로서 교육수준이 낮으면 활동제한율이 매우 높게 나왔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중요한 변수로 확인된 것이다. 65살 이상 여성 중 고혈압과 당뇨의 유병률이 남성보다 높게 나왔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전체 범죄 중 성폭력과 폭행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 것은 사회적으로 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여성의 불안장애와 우울증도 높게 나왔다. 우울의 이유로서 35살 미만은 취업과 육아를, 35~64살은 직무 스트레스와 신체기능 변화를, 65살 이상은 신체기능 약화와 사회경제적 불안을 꼽았다. 거의 모두 사회적 불평등과 연결되는 문제다.

여성건강권 활동가들은 모든 보건의료 이슈에 젠더적 분석을 기본값으로 적용하라고 요구한다. 지금이라도 코로나19 대처에서 젠더적 접근에 나서야 한다. 빠를수록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볼 것이다.

조효제 ㅣ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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