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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 사회] 국민청원과 1호 신소 / 김성경

등록 :2018-06-27 18:24수정 :2018-06-2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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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국과 멕시코의 월드컵 조별 리그 경기 이후 화가 난 축구팬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 몰려가 선수와 감독 처벌을 요구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평창겨울올림픽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를 보여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의 선수자격 박탈 청원은 무려 6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아무리 경기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선수 개인의 ‘처벌’ 요청을 대통령에게 ‘직접’ 한다는 것은 징후적이다. 왜냐하면 게시판을 빼곡히 채운 청원 이면에는 권력자가 직접 나선다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법과 정부 위의 대통령과 그의 절대적 힘을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것과 같다.

지난 보수정권 동안 국민들은 자신의 입장과 요구를 표출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공적 담론을 생산하면서도 권력을 견제해야 했던 언론은 무기력했으며, 정부와 기득권은 공공성보다는 자신의 권력 유지와 이익 관철에 혈안이었다. 법과 정의를 실현해야 할 사법부는 권력 눈치 보기 바빴고, 공권력은 무고한 시민들에게 더 잔인했다.

오랫동안 외면당해 분노한 국민들이 나서 대통령을 탄핵했고, 촛불을 들어 지금껏 한국 사회를 ‘운영’했던 기득권과 기존 체제, 언론, 지식인 등 그 모든 군림하는 것들에 반기를 들었다. 어쩌면 촛불혁명의 기운으로 권력을 잡은 문재인 정권이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한 이유는 국가를 운영해온 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북한에서도 ‘직접 소통’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수령과 인민의 관계를 구축한 바 있다. 국가 건설 초기부터 김일성은 신소(伸訴)를 강조했는데, 이는 인민들의 억울한 사연을 권력자에게 직접 고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다. 특히 ‘중앙당 1호 신소’ 제도는 북한의 인민이라면 누구든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각자의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했다.

당 간부들의 관료주의를 배격하고자 했던 김일성은 인민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강조했으며, 그가 신소 사연을 해결해준 사례 등은 수령의 권위를 선전하는 데 십분 활용되었다. 하지만 인민의 뜻을 적극 반영할 목적으로 시행된 신소 제도는 경제난과 국가 체계 붕괴 등을 경험하면서 변질되고 만다. 인민들은 법이나 체계보다 힘을 가진 권력자의 ‘한마디’로 자신의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지도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으며, 그 밑의 법과 제도는 한낱 종이 쪼가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권력자와 국민의 ‘직접 소통’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술의 발전이 쌍방의 직접적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해도 국가 운영을 위해서는 기관과 제도의 체계 구축이 요구된다. 국민과의 소통 또한 언론과 정부 및 민간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유기적으로 운영되어야만 한다. 지금 대통령과 청와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청원 게시판에 답변을 달고 편지를 보내 자신들의 선의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국가 체계와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일 게다.

국민의 마음을 보듬는 것은 통치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나서 국민 모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법과 제도가 공정하게 작동한다는 믿음 회복이 선행될 때 소외된 국민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권력자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꿈꿨던 ‘나라다운 나라’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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