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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음악인들이 시국선언에 나선 시절 / 조은아

등록 :2016-11-03 18:23수정 :2016-11-03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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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0월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예술검열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0월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예술검열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년 전에도 각계각층에서 항의성명이 활활 불타올랐다. 불시에 바뀐 노동법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를 틈타 몰래 국회로 모여든 여당 의원들은 관광버스에서 밤새 대기하다 새벽 5시50분, 근로기준법과 노동쟁의조정법 등을 기습적으로 통과시켰다. 사람들은 이 개정을 개악이라 힐난했다. 파견·변형근로제를 허용한 ‘날치기 노동법’은 바야흐로 비정규직 비극의 어두운 서막을 열고 있었다. 그때도 각계각층의 저항이 들불처럼 잇달았다. 신문 1면의 광고 면까지 항의성명이 게재되었고, 분야를 막론한 수많은 이름들이 빼곡히 동참했다. 당시 음대 학생이었던 나는 명단 속에서 음악계의 서명부터 찾았다. 하나 한 사람도 보이질 않아 헛헛했다. 음악인들은 특히 클래식 음악가들은 그만큼 조심스럽다, 아니 무심하다. 세상의 풍파에 휘둘리지 않는 자발적 고립, 그 안에서 혹독한 자기 수련이 예술적 미덕으로 인정받는 분야인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 들불처럼 시국선언이 번지고 있다. 구중궁궐의 암중비약(暗中飛躍)이 백일천하에 드러난 탓이다. 극작가들이 아연실색할 정도의 막장 드라마가 버젓이 자행되었고, 저녁 공연의 청중을 앗아갈 정도로 자극적인 뉴스가 횡행한다. 국격의 끝 모를 추락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각계각층에서 분연히 일어나는 시국선언을 그저 담 너머 불처럼 바라보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답답함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꾹꾹 눌러 머뭇거리는 음악가 특유의 성정 탓이라 자책도 했다. 그러다 드디어, 문화예술계와 음악인을 각각 대변하는 시국선언문을 만났다. 음악가들이 움직일 정도라니. 국가적 격동이 맞긴 맞았다.

‘문화예술인 시국선언 연명’은 스스로 ‘블랙리스트 예술가’라 자임한다. 그동안 국가문화정책의 슬로건이라 야심차게 내세웠던 ‘문화융성, 창조문화융합’이 사실은 특정 개인의 사익을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분연히 성토한다. 대통령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뼈가 굵은 중견 공직자들을 나쁜 사람이라 낙인붙여 내쫓았다. 오로지 말 타는 한 소녀를 위해서였다. 그뿐만 아니라 문체부 산하의 상당수 기관장들마저 특정 개인의 인맥과 학맥으로 채워졌다. 예산은 부당히 장악되었고 우스꽝스런 부역도 서슴지 않았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문화예술을 암암리에 옥죄어온 검열과 탄압이다. 무려 9473명의 이름을 새긴 ‘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은 청와대의 지시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이렇듯 문화행정은 파탄이 났고, 예술은 부당히 검열되었다. 허탈감을 넘은 격노의 함성이 선언문 곳곳 가득하다.

한편 ‘음악인 시국선언’은 태동부터 대상까지 클래식과 국악, 대중음악계를 총망라하고 있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참여 음악인은 현재 1427명에 이른다. 선언문에 담긴 뼈아픈 각성과 맹렬한 저항은 단지 예술적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세월호 참사,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개성공단 중단,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공권력에 의한 백남기 농민의 사망 등 이 정권에서 일어난 ‘모든 불의와 민주주의·민생 유린의 실상’을 통틀어 고발한다. 정부의 호칭도 눈에 띈다. 박근혜 정부로 호명하는 대신, ‘박근혜 최순실 정부’라 두 사람 이름을 병행해 표기하면서 국정의 황당한 농단을 개탄한다. 그러나 이 시국선언은 분노에만 그치지 않는다. 음악인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성하며 다짐한다. “무너진 나라에서 음악의 역할을 고민하고 항상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음악의 소중한 가치가 이 땅의 아름다움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음악가들조차 분노를 성토해 마지않는 역사의 격동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누군가의 당부처럼 풍랑 속에서는 방법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한 법이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민중이 움직이면 권력은 그제야 눈치를 보고, 정치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민이 자신들의 통제 밖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불안해하지 말고 사건을 만들어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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