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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살인자’ 속내를 무대에 올린다면 / 김일송

등록 :2016-09-29 18:19수정 :2016-09-2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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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로베르토 쥬코> 한 장면. 사진 국립극단 제공
연극 <로베르토 쥬코> 한 장면. 사진 국립극단 제공
이것은 실화다. 여기 한 사내가 있다. 양친을 살해해 존속살해죄 10년형을 선고받은 이 남자는 형기를 5년 남기고 탈옥을 시도해 성공한다. 이후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며 그는 두 명의 소녀와 의사, 두 명의 경찰을 살해하는 등 살인과 강간, 납치 등을 저지른다. 이런 도주 생활은 2년을 넘기지 못했다. 경찰에 체포된 그는, 그러나 다시 탈옥을 시도한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1981년부터 1988년에 걸쳐 일어났던 일로, 연쇄살인범의 이름은 로베르토 수코다. 당시 그가 탈옥을 시도하던 장면은 유럽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극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는 이 연쇄살인범을 보고 영감을 받아 한 편의 희곡을 완성한다. 수코에서 쥬코로 이름의 철자 하나만 바꾼 <로베르토 쥬코>가 그것이다.

콜테스는 그의 현상수배 포스터를 보고 이 인물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포스터에는 그에 대한 몽타주 4컷이 실려 있었는데, 4컷 안의 인물이 한 인물이 아닌 마치 네 명의 인물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 검색을 하면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말마따나 어떤 사진은 음울한 소년의 인상을 풍기고, 다른 사진은 댄디한 청년, 또 다른 사진은 이탈리아 마피아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그것이 도주를 위해 변장을 했기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의 내부에는 여러 인격체가 존재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는 1981년 처음 기소되었을 때, 조현병을 이유로 정신병동감옥에 투옥되었다.

이런 다양한 사실에 흥미를 느낀 콜테스는 이 인물을 주인공으로 유작 <로베르토 쥬코>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죽음이 임박했음을 예감했던 작가가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해 자신의 모든 것을 집어넣은 작품이다. 덕분에 희극에서 비극까지, 그리스신화에서부터 셰익스피어 작품까지, <로베르토 쥬코>에는 그가 알고 있던,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버무려져 있다. 그렇게 사력(死力)을 다해 작품을 완성했지만, 안타깝게도 작가는 초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로베르토 쥬코>는 이듬해 독일 연출가 페터 슈타인에 의해 베를린에서 초연되었다. 초연과 함께 작품은 전세계 연극인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몇 차례 공연되며 연출자들에게는 한번쯤 도전해 보고픈 작품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열망에 비해 실제 무대화된 횟수가 적은 건, 작품이 가진 난해함 때문일 것이다. 지금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로베르토 쥬코>의 연출을 맡은 스위스 연출가 로랑조 말라게라는 이런 난해함에 대해 “콜테스가 일부러 연출가들을 골탕먹이려고 어렵게 쓴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는 또 다른 이유로 <로베르토 쥬코>가 공연되지 못했다. 프랑스 영화감독 세드리크 칸이 이 이야기를 영화화해 2001년 <로베르토 수코>를 공개했을 때, 프랑스의 샹베리, 알베르빌, 엑스레뱅 지역에서는 영화에 대한 상영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이들 지역에 수코에 의해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유족이 생존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는 여전히 <로베르토 쥬코>에 대한 공연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배경을 의식한 탓일까. 이번 공연의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백석광은 쥬코를 낭만적이거나 영웅적인 인물로 보이지 않게 하려 경계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지금 여기 살인자들 이야기를 무대에서 보는 것이 가능할까 상상했다. 가장 최근의 인물로, 9명을 살해해 사형선고를 받아 복역하다가 탈옥을 감행했던 정두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정두영보다 더 궁금한 인물들이 있다. 세월호 선장 이준석은 배가 침몰하던 순간 어떤 생각으로 도주했던 것일까. 백남기 농민을 향해 물대포를 쐈던 한 경장과 최 경장은 무슨 심정으로 직사 살수했던 것일까. 진심으로 그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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