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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 김공회

등록 :2016-06-0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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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을 놓고 진보와 보수 간에 갈등이 첨예하다. 지난 4월 재벌의 사내유보금 754조원 중 일부를 환수해 실업 해소 등에 쓰자고 주장하는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가 본격적인 활동을 공표한 데 이어 그로부터 한 달 뒤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사내유보자산이 많은 기업이 투자와 고용에도 적극적”이라며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기거나 이를 환수하자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이러한 대립전선이 고정적이지는 않았다. 먼저, 진보진영이 기업의 사내유보금 축적을 ‘절대악’으로 보는 것 같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바로 그 진보진영 내에서 이윤을 사내유보하는 것은 오히려 장려되곤 했다.

당시는 신자유주의의 위세가 세계적으로 최고조에 달하고 있던 때였고,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 구조조정안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강요받고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곧 주주 이익 극대화를 꾀하는 ‘주주자본주의’와 등치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기업의 이윤은 원칙적으로 사내에 유보되기보다는 배당 등의 형태로 주주에게 분배되어야 한다. 신규투자 수요는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으로 충족하면 되었다. 그러나 이런 투자행태는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에는 ‘독약’이었다. 투자가 단기적인 주주가치 극대화에 종속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진영 일각에서 ‘대안’으로 부각된 게 일본이나 독일에서 발달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모형이었다. 여기서 기업은 이윤을 가능한 한 많이 사내유보해 이를 재원으로 일부 주주가 아닌 공동체 전체에 유익한 발전경로로 나아가리라 기대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재벌의 경영권 방어라는 독특한 의의가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다른 한편 보수진영은 사내유보금 축적을 투자부진의 증거로 삼는 진보진영의 시각이 틀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사내유보금 개념을 자기 입맛대로 쓴 것으로 치면 그들도 만만치는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7년 7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기업의 [사내]유보율 상승은 상대적으로 기업의 투자가 크게 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이는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발표한 게 그 한 예다. 말만 놓고 보면 최근 진보진영의 주장과 판박이인데, 대한상의는 이 진심 어린 ‘우려’를 투자를 위한 규제완화 ‘건의’로 연결시켰다는 게 다르다. 이 건의가 나중에 무리한 서비스산업 ‘선진화’ 계획이나 법인세 인하 조처 등으로 실현되어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건전성을 해치고 있음을 우리는 잘 보고 있다.

그밖에도 경제발전 초기엔 기업의 사내유보금 축적을 위해 그에 대해 다양한 세제혜택을 주기도 했고, 그와 반대로 1936년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엔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내부유보세(undistributed profits tax) 제도가 시행된 일도 있다. 이 제도의 수명은 짧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기업의 힘을 억제하고 소액투자자들의 권익을 신장시킨다는 이유로 민주주의에 부합한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이렇게 사내유보금 축적의 선악을 일반적으로 결정하긴 어렵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모두 다양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사내유보금 축적을 옹호하기도 하고 부정·비난하기도 해왔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솔직한 고찰이다. 이를테면 지난주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국내총투자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저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어쩌면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이윤을 관행대로 그 내부에 남겨두는 게 바람직한지는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g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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