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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오름과 삶, 그리고 길 / 윤태웅

등록 :2015-08-26 18:34수정 :2015-08-2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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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작은 산을 제주어로 오름이라 합니다. 사람들은 오름 자락에 집을 짓고 밭을 일구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신을 섬기며 척박한 환경과 맞섰지요. 오름 길이 저는 좋습니다. 능선에 다다르면 굼부리(분화구)가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장쾌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앞뒤로는 푸른 바다와 한라산이, 그리고 그 사이엔 또 다른 오름들이 여기저기 기묘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걷고 또 걷습니다. 꼭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길을 가는 과정도 소중합니다. 뚜벅뚜벅 다니다 보면 갈림길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잘 살피지 않으면 보통은 크고 넓은 길로 접어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오름 유람에선 그게 목장까지만 이어진 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생겨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다시 돌아와 다른 길로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가야 할 길처럼 보였던 게 내 길이 아님을 깨닫는 성과도 거둡니다. 그렇게 헤매는 편이 전체 윤곽을 파악하는 데 더 도움이 되기도 하지요.

좌보미오름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 손지오름, 그리고 용눈이오름. 사진 윤태웅 제공
좌보미오름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 손지오름, 그리고 용눈이오름. 사진 윤태웅 제공

길은 여러모로 삶처럼 보입니다. 목장으로 통하는 큰 길이 오름에 오르려는 이들에겐 막다른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길이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많은 탐험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듯싶습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면 다양한 시도와 탐구가 필요하겠지요. 기성세대도 그렇겠지만, 특히 세상으로 나갈 학생들에겐 이런 탐색이 더 소중한 체험이 될 것입니다.

수학 문제조차 늘 답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문제는 답이 아예 없습니다. 그럴 땐 답이 없다는 사실을 추론하는 게 문제를 제대로 푸는 과정입니다. 답이 여럿 있는 문제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해 서로 다른 정답에 이를 수 있음을 뜻합니다. 답 없는 문제의 답을 찾으려 하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을 테고, 또 제각기 다른 정답을 찾아놓고 상대방의 답이 틀렸다고 우기는 것만큼 민망한 일도 없겠지요. 막다른 길처럼 답이 없거나 한 곳에서 만나는 갈림길처럼 답이 여럿 있는 상황을 겪어보는 건 그래서 중요한 경험입니다.

흔히들 가는 길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따라나서면 곤란합니다. 때로는 갔던 길을 되돌아와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한국의 경쟁 체제가 시행착오를 잘 허용하지 않고, 과정보단 결과로 일렬 순위를 매기기 때문입니다. 1등을 향한 소모적인 경쟁은 모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다양한 탐색 없이 외길로만 달려와 1등을 차지한 학생도 진정한 의미의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는진 의문입니다.

미래를 내다보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기계에 불과한 컴퓨터와 로봇이 머지않아 사람 수준에 근접하는 지능을 갖추게 되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중국의 검색엔진 회사인 바이두는 최근 영상인식 오차가 5.98%에 불과한 컴퓨터를 개발하였다 합니다. 인공지능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없어질 직업이 새로 만들어질 일자리보다 더 많으리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단순노동뿐 아니라 사무직은 물론이고 트럭 운전 같은 직업이 사라질 날이 올 수도 있답니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하나의 길에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선 안 될 것입니다. 학생들이 여러 길을 탐험해봐야,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세상의 낯선 길을 기꺼이 선택하며 도전에 나설 수 있겠지요. 새로운 걸 학습하는 능력은 필수 덕목입니다. 학습 결과를 쌓아두는 일은 컴퓨터한테 맡기고, 학교에선 미래세대의 학습능력을 키우는 문제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그게 기성세대의 책무라 여깁니다. 함께 가야 할 길입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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