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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돈의 맛’과 한국 문학

등록 :2012-06-01 19:48수정 :2012-06-0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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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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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은 영화에 패배했다
‘문학적 자본론’은 불가능한가
작가들이여, 당대로 돌아오라
“<돈의 맛>은 임상수판 <자본론>.”(씨네21) 조금 과장되었지만 예리한 지적이다. 영화는 한국 천민자본주의의 내면을 예리하게 조명한다. 돈의 맛에 길들여진 최상류층 ‘왕족’들이 펼치는 권력, 애욕, 집착, 파멸, 구원의 스펙터클. 각 인물들은 돈에 매혹되고, 압도되고, 결국에는 돈에 모욕당한다. 모두가 돈의 노예이고 하녀이다.

돈에 매수된 권력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이 암시하듯 누군가는 돈의 모욕을 벗어나길 꿈꾼다. 인물들은 한국 자본주의 최상류층의 삶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개인들이자 동시에 각 계급의 속성을 드러내는 전형성을 지닌다. 각 인물의 개성이 좀더 생생하게 부각되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특히 주영작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장편소설이 아닌 영화에서 이 정도의 ‘전형성’을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돈의 주인이자 하녀인 백금옥(윤여정 분)과 돈의 맛에 휘둘리다가 파멸하는 윤 회장(백윤식 분)의 형상화는 인상적이다. 미장센도 뛰어나다. 카메라는 고가의 미술작품과 세련된 복식으로 치장된 돈의 왕국 사람들의 화려하지만 공허하고 외로운 내면을 유려하게 포착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특정 인물이 아니다. 자본이다. 돈이다. 자본은 모든 것을 자기 앞에 무릎 꿇린다. 그래서 ‘자본’주의이다. 재벌 3세 윤철은 영작에게 자기 앞에 경의를 표하고 무릎 꿇으라고 비웃지만, 그 역시 자본의 노예다.

이 영화는 내가 한국 문학에 대해 품고 있는 어떤 불만을 상기시켰다. 조심스러운 진단이지만, 한국 문학은 한국 사회의 리얼리티를 그리는 재현 경쟁에서 영화에 패배했다. 어떤 평자들은 몇몇 작품의 성취를 상찬한다. 그러나 그런 작품들조차 모성, 폭력, 가진 자들, 몫 없는 자들, 이주자들 등 한국 사회의 면모를 포착하는 데 있어서 한국 영화의 깊이에는 못 미친다. 소설 등의 서사문학은 인물과 인물의 관계를 탐색하면서 세계의 리얼리티를 드러낸다. 그러나 인물의 관계는 언제나 계급적, 인종적, 성적, 세대적 관계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문학은 전형성을 잃고 협소한 내면성의 외딴 방, 지금, 이곳의 현실이 아니라 후일담의 세계, 관념과 언어조작의 세계에 갇혀 있다. 그러나 문학적 “기념비는 과거에 일어난 어떤 사건을 기념하거나 축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건에 신체성을 부여하는 지속적인 감각들을 미래의 귀에 들려주는 것이다.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인간의 고통, 다시 시작되는 인간의 항거, 가차 없이 재개되는 투쟁을.”(들뢰즈)

지금 한국 문학에는 고통과 항거와 투쟁의 사건에 신체성을 부여하는 생생한 감각이 태부족하다. 작가들은 당대와의 정면승부를 회피한다.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나 김이설의 <환영> 같은 예외가 있지만, 극히 드물다. <객지>와 <난쏘공>을 읽으면서 한 시대를 온몸의 감각으로 느끼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난쏘공>의 시대가 아니다. 달라진 현실은 달라진 재현의 방법을 요구한다. 어떤 대상을 택하고, 기법을 사용하든, 그건 작가의 자유이다. 요는 작가들이 그들만의 문학적 <자본론>을 쓰는 것. 부탁한다. 작가들이여, 당대로 돌아오라!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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