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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왜냐면

[왜냐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만 돕겠다는 ‘항공 기간산업기금’ / 수열

등록 :2020-06-29 18:32수정 :2020-06-30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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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열 ㅣ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됐을 때를 상상해보자. 천신만고 끝에 백신을 개발했지만 생산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선별 지급해야 할 상황이다. 온 나라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와중에 누군가 이런 기준을 제안한다면 어떨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이 중요하니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재벌과 대기업 오너에게 먼저 지급하자.’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은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사망할 확률이 높으니 제외하자.’

아마 시쳇말로 ‘가루가 되게 까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어이없는 상상이 현실에서 비슷하게 펼쳐지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국가 기간산업을 지원한다며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만들었다. 총 40조원의 기금을 조성해 기업을 지원하고, 고용안정을 도모하겠다고 한다. 항공과 해운업이 첫 지원 대상으로 꼽혔는데, 대상 기업 선정 기준이 이상하다.

첫째, 기업의 총 차입금이 5천억원 이상, 근로자 수는 300인 이상이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 ‘빚 많은 대기업’만 지원한다는 뜻이다. 차입금 규모를 충족하지 못해 저비용항공사(LCC)와 하청업체는 모두 제외된다. 항공운송 관련 기업 중 위 기준을 충족하는 곳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뿐이다. 항공사-지상조업사-하청업체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빅2 항공사다. 그런데 일자리 위기는 다단계 구조의 하층에서 훨씬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청소와 수화물을 담당하는 하청업체 케이오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당한 지 한달이 넘었다. 수많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몇달째 무급휴직을 계속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자 항공사들이 계약을 해지하면서 지상조업사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고용안정을 위해 마련된 기금이라면서 일자리 위기의 진앙에서 가장 먼 곳에만 쏟아붓겠다는 꼴이다.

둘째, 코로나19 이전에 위기에 빠진 기업은 대상에서 제외한다. 본래 문제(기저질환)가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19 위기 지원이 아니라 종래의 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난 4월 초 산업은행이 이스타항공의 구제금융 요청을 거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풀이된다.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기준으로 항공사들을 구분하기는 힘들다. 국제선 중심으로 공급과잉과 노선중복이 심각한데다 최근 한-중, 한-일 갈등 등 주요 노선 수요가 급감하며 국적사들의 실적은 크게 악화됐다. 결국 지난해 국내 9개 항공사는 모두 적자(별도 기준)를 기록했다. 대한항공의 2019년 당기순손실은 5708억원, 아시아나항공은 7629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부채총액(부채비율)은 각각 22조8142억원(810%)과 11조3799억원(1795%)에 이른다. 이에 비하면 저비용항공사들의 손실은 우스울 정도다. 코로나19 이전의 위기를 문제 삼는다면 지원 가능한 항공사는 없다.

인명 구조나 구호 상황에 적용하는 ‘노약자 우선 구조’와 ‘중상자 우선 가료’라는 원리가 있다. 스스로 구호하기 힘든 아이와 노인 등 노약자를 우선해야 전체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고, 심각한 상태의 사람을 먼저 치료해야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난파선에서 아이와 노인을 먼저 구조선에 태우는 건 단지 측은지심의 발로가 아니라 그게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재난 구호뿐 아니라 사회 일반에서 널리 통용되는 이 원리가 유독 경제 위기라는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는 거꾸로 돌아간다. 생계 위기에 처한 노동자보다는 기업이, 작은 기업보다는 큰 기업이 우선된다.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은 벌써 5개월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이들은 회사가 4대 보험을 체납해 대출조차 받을 수 없는 상태라며,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에서조차 배제된 저비용항공사, 지상조업사, 협력업체의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항공산업은 직접 일자리만 26만5천개, 연관 산업을 포함해 83만8천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항공산업의 일자리 위기는 관련 업종으로 확산되어 경제 전반과 전체 고용의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일자리 지키기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핵심이라는 대통령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면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지원 기준과 쓰임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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