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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4 14:55 수정 : 2007.10.14 14:55

재판기록 800권 25일 한정출간…한 권은 교황에게 전달

14세기에 이단으로 몰려 화형에 처해진 뒤 세계적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 등의 소재가 됐던 중세 유럽의 템플러 기사단이 700여년만에 누명을 벗고 복권될 전망이다.

AP와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템플러기사단에 대한 중세 교황청의 종교재판 기록이 오는 25일 300쪽 분량의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될 예정이다.

바티칸 비밀문서보관소와 이탈리아의 스크린늄 문화재단이 공동 출간하는 이 책은 권당 5천900유로(8천375달러)의 가격으로 800부만 한정 발간되며, 이중 한 부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전달된다고 바버라 프레일 교수가 밝혔다.

프레일 교수는 2001년 교황청 비밀 문서보관소에서 교황 클레멘트 5세가 주재한 템플러 기사단의 재판기록 원본을 우연히 찾아낸 중세연구가이다.

길이 2m에 폭 50㎝ 크기의 양피지에 빽빽이 적힌 재판기록에는 교황 클레멘트 5세가 당초 기사단의 이단 혐의를 사면해줬다는 내용 등 700여년 동안 감춰져왔던 사실이 담겨있어 중세사 연구자들 사이에 비상한 관심을 모아왔다.

프레일 교수는 "그 양피지는 다른 자료에 잘못 끼어져 분류돼 있었다. 처음 그 양피지를 발견했을때 내 눈을 믿지못했다. 그것은 많은 역사가들이 찾고 있던 템플러 기사단의 재판 기록이었다"고 말했다.

재판기록에는 교황 클레멘트 5세가 기사단 지휘관들의 부도덕한 범죄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종교적 이단행위에 대해서는 처음에 사면을 해준 것으로 나와있다.

하지만 프랑스왕 필립 5세의 압박으로 클레멘트 교황은 1312년에 기존의 결정을 번복하고 기사단을 탄압하게 된다.


결국 기사단의 자크 드 몰레이 단장은 1314년에 그의 참모들과 함께 화형에 처해지고 템플러 기사단은 해체된다.

정식 명칭이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가난한 기사들'인 템플러 기사단은 1차 십자군전쟁 이후 성지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해 1118∼1119년 예루살렘에서 결성됐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최후의 만찬에 쓰였던 전설적인 `성배'의 수호자로 그려져 왔던 템플러 기사단은 막대한 재산을 축적해 유럽의 여러 군주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줬다.

필립 왕도 전쟁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느라 템플러 기사단에 많은 빚을 지고 있었으나 종교재판 후 기사단의 재산까지 모두 몰수해버렸다.

1307년부터 1312년 사이 템플러 기사단의 재판을 클레멘트 교황과 필링 왕 사이의 정치적 분쟁을 드러내 주는 중요한 사건으로 파악하고 있는 프레일 교수는 "클레멘트 교황의 입장은 역사가들에 의해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바티칸 AP.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