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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새 대통령(오른쪽)과 부인 미셸이 20일 취임식 뒤 열린 고향 축하 무도회에서 함께 춤을 추며 웃고 있다. 워싱턴/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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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거리두기’ 방점…정부 시장통제 강조
테러와의 전쟁 표현없어…“이슬람세계와 상호존중”
버락 오바마 제44대 미국 대통령은 ‘부시 시대와의 결별’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약속했다.
20일 정오(한국시각 21일 새벽 2시) 무렵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선서를 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부유층만을 위하는 시장의 독주가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줄 번영”을, 군사력을 앞세운 일방주의가 아닌 대화와 협력의 외교를 통해 미국을 개조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과거 정권의 패권주의적 일방주의와 결별하고 국제사회와 공생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약속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가 변화하는 만큼 미국도 변해야 한다”며 새 시대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미국을 재건해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자고 미국 국민에게 호소했다. 새 대통령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노고에 대한 인사말로 취임연설을 시작했지만, 국내외 정책 방향에서 부시와 확실한 단절을 선언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이날 분석했다.
그는 경제위기,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언급하며 “우리가 직면한 도전 과제들은 실제 상황이며, 짧은 시간에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며 희망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취임 첫날 관타나모 기지의 군사재판을 120일간 전면 중단할 것을 군 검찰에 지시해, 미국 일방주의와 수감자 학대로 얼룩진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시장과 평등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이번 경제위기는 감독의 시선이 없으면 시장은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고, 부유한 자들만을 위한다면 국가는 장기간 번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며 시장 만능주의의 위험을 경고했다. 이어, “이제 문제는 우리의 정부가 너무 크냐 작으냐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느냐”라며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선언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0년 취임연설에서 “정부는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라고 선포했던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한 고별선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장이 부의 창출과 자유의 신장이라는 순기능을 지녔지만, 현재의 혼란이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가운데 시장이 독주하면서 비롯됐음을 강조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정부와 경제의 관계 재설정하기가 새 행정부에서 더욱 가속화할 것임을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경제적 성공이란 국내총생산(GDP)의 규모가 아니라, 부가 얼마나 널리 퍼지는지와 의지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줄 능력에 달렸다”며 좀더 평등한 사회를 향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화합과 책임 취임사의 뼈대를 이룬 화두는 ‘화합’과 ‘책임’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안보과 이상 가운데 한 가지만 선택하는 잘못을 거부하겠다”며 안보를 명분 삼아 국제법과 인권을 무시하고 일방주의로 나간 부시 행정부와 뚜렷한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의 힘만으로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는 유산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고 말해 세계와 열린 자세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의 힘은 힘을 신중하게 사용할 때 나온다”며 “다른 나라들과 더 많은 협력과 이해를 통해 안보위협을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에 주권을 넘겨주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렵게 얻은 평화를 지켜내며, 핵 위협을 줄이고 지구온난화를 극복하는 일에 나서겠다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언급했다. 취임사에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슬람 세계와 “상호 이익과 상호 존중에 바탕한 새로운 관계 구축”에 나설 것을 공표했다. 그는 “자신들의 병폐를 서방국가의 탓으로 돌리고, 부정부패와 반대 세력 탄압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지도자들은 역사의 잘못된 쪽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여러분들이 꽉 쥔 주먹을 편다면 미국은 기꺼이 손을 내밀 것”이라고 말했다. 핵문제 등에 대해서도 “오랜 친구와 과거의 적들과 함께 우리는 핵 위협을 감소시키고자 쉼없이 노력할 것”이라며 북한 핵문제도 대화·협력으로 풀겠다는 원칙을 분명히했다. 이란·하마스와의 직접 대화, 북한 특사 파견 등 ‘스마트 외교’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인 것이다. ■위기와 재건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증오와 폭력의 조직에 대항하는 전쟁과 탐욕과 무책임으로 약화된 경제에 직면해 있다”며 “이런 도전은 실제적인 상황”이라고 강조해 청중을 숙연하게 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수습과 경제위기 극복이 새 행정부의 당면 과제임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는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지구상 가장 번영하고 강력한 국가로 남아 있다”며 “떨쳐일어나 미국의 재건을 시작해야 한다”고 밝혀 미국의 세계 지도력 복원에 대한 희망을 피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도전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덕목으로 근면, 정직, 용기, 정정당당함(페어플레이), 관용, 호기심, 충성과 애국심 8가지를 들었다. 그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과 미국, 세계에 대한 책무를 깨닫고 책임감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임사에는 ‘국가’라는 단어가 15번, ‘아메리카’가 9번 등장해 오바마가 미국적 가치를 가장 중시하고 있음을 반영했다. 그의 상징어인 ‘희망’과 ‘변화’는 각각 3번과 2번만 사용돼 취임사가 절제되고 비장하게 작성됐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날 금융위기가 다시 악화하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 다우지수가 4% 급락해 두달 만에 8천선이 무너졌다. 오바마 신임 대통령이 헤쳐가야 할 도전이 만만찮다는 상징이다. 금융권의 천문학적 부실 때문에 ‘2차 금융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이근영, 박민희 기자 kylee@hani.co.kr
